주여, 주의 백성을 드시옵소서

시편 28편을 묵상하며

by 참지않긔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내가 주의 1)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악인과 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나를 끌어내지 마옵소서 그들은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들의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

그들이 하는 일과 그들의 행위가 악한 대로 갚으시며 그들의 손이 지은 대로 그들에게 갚아 그 마땅히 받을 것으로 그들에게 갚으소서

그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괴하고 건설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


시편 28편을 들으며







시편 28편은 말 없는 기다림 속에서 건져 올린 기도입니다.

한 편의 시편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는 그 시를 쓰게 된 시인의 내면을 여는 창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이 시를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라는 절박한 음성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기도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앞서 그는 한 사람의 생명이 간신히 붙잡은 마지막 줄과 같이 외마디를 하나님께 던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은 이 기도가 얼마나 위태로운 자리에서 시작되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이 구절은 신학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깊은 떨림을 전해줍니다.

‘반석’이신 하나님, 결코 흔들리지 않으시는 그분께 ‘귀를 막지 말아 달라’고 청하는 것은 듣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라는 두려움이 얼마나 가까이에서 시인을 짓누르고 있었는지를 드러내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무너지지 않으시지만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는 일은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이 모순은 모든 기도자의 내면을 가만히 건드리는 통찰이기도 합니다.

들리지 않는다는 것, 듣고 계신지조차 알 수 없다는 것, 응답을 기대하면서도 응답이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시간 속에서 기도란 과연 무엇일까요.




이 시편은 단지 간구의 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처절하게 묻는 고백의 언어입니다.

다윗은 “주께서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무덤, 다시는 소리가 닿지 않는 곳, 되돌릴 수 없는 침묵의 공간.

다윗은 자신의 기도가 무덤을 향해 떨어지지 않기를 그 절벽 끝에서 한 손으로 붙잡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눈으로 읽힌다기보다 가슴으로 느껴지는 고백입니다.

그는 단순히 문제의 해결을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응답 그 자체가 끊어지는 단절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의 태도는 오늘날의 기도와 비교해 보았을 때 더욱 또렷하게 대비됩니다.

우리는 응답을 중심으로 기도를 계산하고 효과를 기대하며 말의 형태를 다듬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지금 기도 그 자체가 허공에 부서지지 않기를, 그 간절함만으로도 하나님의 마음에 닿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는 해결보다 존재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성소를 향해 손을 든다는 이 행위는 단지 전통적 제의의 동작이 아니라 방향을 선언하는 몸짓입니다.

시인은 손을 들어 올림으로써 자신의 전 존재가 지금 하나님만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외로움 속에서도 그는 성소를 기억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던 그 장소를 떠올리며 그 방향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기도란 결국 어디를 바라보며 드리는가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말보다, 눈보다, 결과보다 앞서는 것은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손을 들고, 마음을 들고 침묵 속에서도 방향을 고수합니다.

응답이 들리지 않을 때에도, 그 방향이 바르다면 기도는 이미 깊은 울림을 가진 신앙의 언어가 된다고 믿습니다.




이 기도의 시작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겪고 있는 외적인 현실보다 내면의 경계선이 훨씬 더 날카롭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단지 외부의 악인들을 향해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구별되어야 할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고 있습니다.

“악인들과 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나를 끌어내지 마옵소서.”

이 기도는 불의에 대한 분노라기보다는 불의에 동화되지 않기를 원하는 내면의 절절한 간구에 가깝습니다.

그는 자신이 정의롭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거짓된 이들과 함께 심판당하지 않기를 하나님의 판단이 자신을 올바로 보아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님, 저도 그런 기도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제 마음이 무리 속에 휩쓸리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다수가 그렇다고 해서 제 내면의 방향까지 거기로 끌려가지 않기를.

오직 당신의 시선 안에서 제가 바르게 서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다윗의 기도는 그 자리를 향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그는 악인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그들은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 마음에는 악이 있나이다.”

말과 마음이 다르다는 것, 언어와 태도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

그는 외형이 아닌 내면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 자들과 함께 묶이지 않기를 그 속에서 구별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행한 그대로 갚아 달라고 그들의 행위에 합당한 결과가 주어지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단호하지만 분노에 매몰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는 그들의 죄를 하나님께 맡깁니다.

스스로 심판하지 않습니다.

정의를 바라지만 그 정의의 실행자는 자신이 아닙니다.

그는 고백하고, 간구하며, 기다립니다.

이 정직한 기도는 오히려 가장 깊은 신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내가 행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다는 확신, 나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이 마지막이라는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 신뢰 위에 서서 그는 마침내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이 전환은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닙니다.

긴 침묵을 뚫고 천천히 다가온 응답의 기미.

실제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설명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시인의 마음이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들으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믿음이 기쁨이 되고 그 기쁨이 곧 찬양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다윗은 말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이 고백은 갑작스레 쏟아지는 위로의 언어가 아니라긴 기다림 끝에 자신 안에 형성된 깊은 확신에서 비롯된 말처럼 들립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간구를 들으셨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 고백이 이루어지는 시점에 실제로 외적인 변화가 있었는지는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기도가 반드시 어떤 외적 사건을 통해 응답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시편은 조용히 들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다윗의 확신은,그의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시선이 바뀌었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이 한 문장은 시편 28편의 전체 구조 가운데 중심을 이룹니다.

그는 도움을 구했고, 응답을 체험했으며, 그 체험은 곧 찬양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찬양은 감정의 반사 작용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삶의 무게를 감당해 온 이가 마침내 꺼내는 신뢰의 목소리입니다.




하나님, 저 역시 그런 믿음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눈앞의 결과보다 앞서서 당신을 향한 시선을 놓지 않을 수 있는 믿음.

모든 것이 여전히 어지럽고 불분명하더라도 당신이 저의 방패이심을 믿고 삶의 중심을 지켜낼 수 있는 담대한 신뢰 말입니다.




다윗의 기쁨은 조용합니다.

그는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의 기쁨은 외침보다는 인내의 결과처럼 느껴집니다.

기도가 찬양으로 전환되는 지점에서는 이미 다윗의 내면이 한 겹 깊어졌음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설명이 아니라 신뢰이며 그 신뢰는 어느 날 문득 터져 나오는 노래로 완성됩니다.




찬양은 응답의 결과이기보다 응답을 기다리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던 이의 특권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 찬양을 자기 안에만 간직하지 않습니다.

이 시편의 마지막 구절에서 그는 기도의 방향을 공동체로 향하게 합니다.




“주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시로다.”

여기서 ‘그들’은 다윗이 속한 공동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과 함께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든 모든 이들을 함께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힘이시다’는 고백은 기도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공동체를 위한 축복의 통로가 되는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저도 그 기도의 흐름 안에 있고 싶습니다.

제가 받은 은혜를 조용히 간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은혜를 다른 이들에게도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기도가 깊어질수록 시야가 넓어지고 그 넓어진 시야는 결국 타인을 위한 간구로 확장되는 것임을 다윗의 기도를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다윗은 이어서 말합니다.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그들을 목자같이 인도하시며, 영원토록 그들을 드시옵소서.”

그는 단순히 구원만을 구하지 않습니다.

복을 요청하고, 인도를 간구하며, 그 인도하심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일시적인 구원자가 아니라 시간 전체를 책임지시는 목자이십니다.

목자처럼 인도하신다는 이 표현은 당신의 돌보심이 단발적인 개입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속되는 은혜임을 조용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다윗의 이 마지막 기도는 그의 첫 고백과 멀어 보이지만 사실은 동일한 마음의 다른 모습입니다.

처음에는 들리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사람이, 이제는 들으심을 확신하며 찬양을 드리고 그 찬양을 백성을 위한 기도로 바꾸고 있습니다.




기도의 시작은 흔들림이었지만 그 끝은 견고함으로 마무리됩니다.

들리지 않음에서 출발했던 말들이 마침내 들으심에 대한 확신으로 변모하고 그 확신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으로 스며들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시편 28편의 마지막은 깊은 고요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평안과도 같습니다.

기도는 마침내 그 목적지에 이르게 되었으며 그 끝에는 다윗 한 사람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모두가 함께 서게 됩니다.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그들을 목자같이 인도하시며, 영원토록 그들을 드시옵소서.”

이 고백은 마치 기도의 최종 형식과도 같아서 그가 받은 응답의 은혜를 자기 안에 머물게 하지 않고 공동체 전체를 위한 간구로 전환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 기도가 성숙해질수록 자기 자신을 벗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이 구절에서 배우게 됩니다.

기도는 처음에는 나의 울부짖음에서 시작되지만 그 마지막에는 반드시 ‘우리’가 있어야 함을 느낍니다.

그 ‘우리’를 품을 수 있을 때 기도는 더 이상 무너지지 않게 됩니다.




다윗은 이곳에서 세 가지를 간청합니다.

구원, 복, 그리고 인도.

이 세 단어는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관계 전체를 요약한 고백처럼 다가옵니다.




그는 구원을 요청합니다.

단순히 위험에서 벗어나는 구출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 안으로 돌아가는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구원은 외적인 회복뿐 아니라 존재 전체가 하나님과 다시 연결되는 복원임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복도 구하고 있습니다.

복은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되는 풍요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관계의 은총입니다.

그 복은 주의 산업, 곧 주님의 소유로 불리는 백성에게 주어지는 절대적인 호의이자 신실하신 약속의 증거로 읽힙니다.




그리고 그는 인도를 청합니다.

목자가 양을 이끄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한순간도 놓지 않으시고 그들의 걸음을 밝히시며 인도하시기를 구합니다.

삶 전체를 감싸는 보호의 서약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영원토록 그들을 드시옵소서.”

이 표현은 조용하게 들리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참으로 깊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을 ‘드시다’ 그 손 안에 두신다는 고백은 임시적인 도움이나 간헐적인 개입이 아닙니다.

그것은 완전한 소유이자 절대적인 책임의 고백입니다.




하나님, 저는 이 고백 앞에서 마음을 천천히 가다듬게 되었습니다.

이 기도는 신학적인 언어이기 이전에 기도자가 드릴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 정직한 의탁의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주여, 저희를 드시옵소서.”

그저 이 한마디로 충분하다는 듯 다윗은 자신의 기도를 내려놓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탄식으로 시작되었으며 간절한 부르짖음으로 깊어졌고 하나님의 들으심에 대한 확신을 통해 방향을 잡게 되었으며 마침내 조용한 신뢰의 언어로 기도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들으시는지를 묻던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께서 백성을 품고 계시다는 사실을 신뢰하게 되었고 더 이상 묻지 않으며 대신 의탁하고 있습니다.

이 전환은 감정의 변화가 아니라 믿음의 성숙으로 이해됩니다.




하나님, 저도 이와 같은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의 시작은 불안하고 어지러울 수 있으나 그 마지막은 평안 속에서 머물게 하소서.

제가 가진 모든 것들을 설명하려 애쓰기보다 “주여, 저희를 드시옵소서”라는 이 한마디면 족하다는 묵직한 신뢰로 기도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 손이 저를 놓지 않으시고 그 품이 저를 감싸주시며 그 인도하심이 저의 삶을 이끄실 것을 믿사오며 오늘의 기도를 조심스럽게 올려드립니다.




하나님, 시편 28편을 따라 걸으며 기도는 응답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당신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다리라는 사실을 다시금 배우게 되었습니다.


침묵 가운데서도 당신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 분노와 탄식을 숨기지 않고 드릴 수 있는 정직함, 그 모든 것을 지나 마침내 당신의 이름을 높일 수 있는 찬양까지—이 시편은 한 사람의 기도가 도달할 수 있는 깊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자기 자신을 넘어 공동체를 위한 기도로 확장되는 모습을 통해 신앙이란 결국 ‘나’에서 ‘우리’로 이어지는 은혜의 궤적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제가 그 여정 가운데 늘 머물 수 있도록 날마다 말씀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하는 자의 자리에서 끝내 고백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주의 백성을 드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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