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소리에 무너지는 자리

시편 29편을 묵상하며

by 참지않긔

하나님을 모시는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권능을 주님께 돌려드리고 또 돌려드려라.

그 이름에 어울리는 영광을 주님께 돌려드려라. 거룩한 옷을 입고 주님 앞에 꿇어 엎드려라.

주님의 목소리가 물 위로 울려 퍼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로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큰 물을 치신다.

주님의 목소리는 힘이 있고, 주님의 목소리는 위엄이 넘친다.

주님께서 목소리로 백향목을 쩌개고, 레바논의 백향목을 쩌개신다.

레바논 산맥을 송아지처럼 뛰놀게 하시고, 시룐 산을 들송아지처럼 날뛰게 하신다.

주님의 목소리에 불꽃이 튀긴다.

주님의 목소리가 광야를 흔드시고, 주님께서 가데스 광야를 뒤흔드신다.

주님의 목소리가, 암사슴을 놀래켜 낙태하게 하고, 우거진 숲조차 벌거숭이로 만드시니, 그분의 성전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영광!" 하고 외치는구나.

주님께서 범람하는 홍수를 정복하신다. 주님께서 영원토록 왕으로 다스리신다.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백성에게 힘을 주신다.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백성에게 평화의 복을 내리신다.


시편 29편을 들으며








어느 날 갑자기, 특별한 이유도 없이 마음이 거칠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명확한 자극이나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마치 내면에 갑작스런 바람이 불어닥친 듯이 고요함이 흐트러지는 때가 있습니다.

외부의 잡음보다 내 안의 묵직한 느낌이 더 크게 다가오고 수많은 세상의 뉴스보다 단지 한 단어가 깊숙이 파고들어 떠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시편 29편이 제게 다가왔던 날은 그런 날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영광과 능력을 돌리라는 익숙한 문구가 그날 따라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돌리라’는 이 평범한 명령어가 가슴 깊이 파고들어 제가 살아온 삶과 그동안 습관처럼 했던 말들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돌린다’는 표현을 기도 때마다 너무 쉽게 말해왔던 것 같았습니다.

과연 저는 하나님께 돌릴 영광이나 능력을 실제로 손에 가지고 있었던가 하는 의문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돌릴 수 있는 무엇인가를 가진 자만이 이 명령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제 마음에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아무것도 돌릴 것이 없는 사람의 부끄러움과 침묵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부끄러움과 무력감을 덮으려 다시 펼쳐든 성경은 오히려 저의 마음을 더 깊이 흔들었습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여호와의 소리'라는 문구가 마치 저를 직접 겨냥한 듯 제 안에 있던 모든 안이함과 자만심을 뿌리째 흔들었습니다.

백향목을 꺾으신다는 말씀은 비유적 표현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자라 단단히 굳어진 저의 교만과 자기 확신이 마치 백향목과 같이 꺾여 내려앉는 느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소리는 폭풍과 같았습니다.

부드럽고 자애로운 하나님만을 생각했던 저에게 존재의 가장 깊은 곳을 뒤흔들고 제가 지켜온 모든 원칙과 신념, 심지어 고요하다고 여겼던 불신마저 흔들어 깨우시는 그분의 모습은 당혹스러웠습니다.

시인이 표현한 그 ‘소리’는 제게도 실제로 경험되는 두려움과 떨림이었고 그것은 위엄이나 경외를 넘어 존재 그 자체를 해체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묵상하면서 제 안에 있었던 여러 허위적인 모습들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치장한 위선, 인내라는 가면 뒤에 숨은 두려움, 하나님을 위한 것처럼 포장된 나 자신의 욕망들이 하나님의 소리 앞에 하나씩 부서져갔습니다.

산이 뛰고 광야가 진동한다는 말씀이 제게 준 충격은 깊었습니다.

제가 인생에서 가장 확실하고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여겼던 원칙이나 인간관계마저도 그분 앞에서는 결코 견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흔드신다는 것은 인간이 쌓아온 모든 논리와 자존심, 그리고 타협점을 무너뜨리고 온전한 순종으로 우리를 이끄신다는 의미였습니다.

이 모든 흔들림을 거쳐야만 비로소 진정한 평강이 찾아온다는 것을 마지막 구절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주시는 힘과 평강은 인간의 기대나 노력과는 상관없는, 오직 그분의 뜻 안에서만 허락되는 특별한 선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진정으로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하는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다양한 소리로 가득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그 소리들 속에 묻혀 있기도 하고 때로는 모든 소리를 압도하는 천둥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시편 29편은 그런 음성을 글자 너머의 체험으로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 음성 앞에 서면 우리의 모든 이해와 논리는 잠시 멈추고 존재의 깊은 흔들림만 남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강력한 방식으로 말씀하셔야 했는지에 대한 질문도 제 마음을 계속 맴돌았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왜 이토록 위협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우리를 흔들어 놓으셔야 하는지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묵상을 거듭할수록 그 이유는 분명해졌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잘못된 길을 멈추게 하시고 우리의 폐쇄된 마음과 얼어붙은 믿음을 깨우시기 위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결국 심판이 아니라 회복의 시작이라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무너지고 깨지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힘과 평강을 주시는 그분의 깊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때로는 두려움을 통해, 때로는 침묵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시편 29편을 통해 배운 것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의 온전한 침묵과 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 앞에서 침묵하는 자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분의 음성을 들은 자는 삶이 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삶의 자세, 사람을 대하는 태도,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분명한 흔적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그 흔적을 따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순종하는 길을 걸어가려 합니다.

무너짐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무너짐 속에서 새롭게 피어날 평강을 기대하며 말입니다.

그렇게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하나님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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