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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이라는 이름의 공허

by 참지않긔

여러분, 그런 경험 있지 않으셨나요?

사람들의 감상평을 미리 접한 뒤 '적어도 나쁘진 않겠지', '최소한 실망은 하지 않겠지'

그런 묘한 안도와 기대 사이에서 극장에 들어선 적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저 역시 그런 상태로 이 영화를 맞이했습니다.


<슈퍼맨 리턴즈>요?

상당히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이전까지의 슈퍼맨 영화들 거의 대부분을 꽤나 재밌게 본 쪽입니다.

그랬기에 저는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가 본 모든 슈퍼맨 영화 중에서 이 작품은 단연코 ‘최악’이었습니다.


물론 오락영화로서 완전히 실패한 영화는 아닙니다.

돈 내고 볼 만한 가치는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슈퍼맨 영화’라는 전제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제게 있어 가장 처참한 선택지였습니다.


왜일까요?

어쩌면 저는 ‘슈퍼맨’이라는 존재에 아직도 낭만을 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가진 절대적인 힘, 그럼에도 변치 않는 선의, 그 불가능한 조화를 저는 믿었거든요.


제임스 건 감독이 연출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

저도 참 좋아합니다.

유머, 정서, 캐릭터.

모두 감탄할 만했죠.

그런데, 그 감탄은 ‘팀’에 대한 이야기였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슈퍼맨은 그가 ‘팀’이 아니라 ‘신화’이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론 접근할 수 없습니다.


이번 영화에서의 슈퍼맨은 그저 흔한 히어로1에 불과했습니다.

어벤져스 유니버스의 초창기 히어로들처럼 매력은 없고 영향력은 흐릿한.


적어도 캡틴 아메리카가 보여준 선의와 리더십, 그 인격의 중량감은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슈퍼맨은 그 어떤 서사적 설득도, 연출적 매력도 가지지 못한 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버티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영화는 이렇게 보였습니다.

“슈퍼맨이... 바보처럼 느껴진다.”





슈퍼맨이 절대적인 선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에게는 그에 걸맞은 절대적인 힘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 힘이 그를 오만하게 만들지 않았고 그 선함이 그를 신처럼 만들었습니다.

그건 그만이 할 수 있는 균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의 슈퍼맨은 메타휴먼조차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맞고, 휘둘리고, 갇히고 그리고 늘 누군가에게 구원받기만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도무지 그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를 따르는 시민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를 경외하는 서사의 구조를 받아들일 수 없었죠.


결정적으로 영화의 절정에서조차 문제를 해결한 건 슈퍼맨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히어로였죠.


그 순간,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이 사실상 슈퍼맨이 아니었다는 것을 관객 스스로 자각하게 됩니다.


전투 막판.

그 많던 적들을 단번에 쓰러뜨리는 슈퍼맨의 모습.


멋졌냐고요?

아뇨.

제겐 오히려 실소가 나왔습니다.


“그 속도로 싸울 수 있는 놈이 왜 두 시간 내내 그렇게 처맞았던 거야?”


이런 감정은 영화가 쌓아올린 개연성과 신뢰를 단숨에 무너뜨립니다.


그가 그렇게 강했다면 그 전투의 대부분은 의미 없는 고통과 방황의 연속이었던 거겠죠.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루터는 마치 주술사처럼 모든 상황을 조율합니다.


영화라는 매체는 허구와 설득 사이의 경계를 줄타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경계를 무너뜨린 채 그저 감독의 의도만을 관객에게 주입합니다.


“왜 슈퍼맨이 마지막에만 세졌는가?”

“왜 그토록 무력하게 당했는가?”

“왜 연출은 그 능력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이유는 간단합니다.

루터가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설정은 관객을 설득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킵니다.


엑스맨 시리즈의 퀵실버가 보여준 초월적 능력의 시네마틱 표현은 이미 관객에게 익숙합니다.

즉, 못해서 안 한 것이 아니라 감독의 선택으로 안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패착이었습니다.


잭 스나이더의 슈퍼맨이 인명 경시로 비판받았을 때 이번 슈퍼맨은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다 ‘선한 존재’로 묘사될 거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또 한 번 산산이 부서집니다.


거대 도시가 두 동강 나고 고층 빌딩 수십 채가 잇따라 무너지는 동안 슈퍼맨은 자동차 한 대에 갇힌 사람 한 명, 혹은 다람쥐 한 마리를 구합니다.


그 장면에서 저는 분노가 일었습니다.

“이게 인간적인 감동이라고 생각한 걸까?”

“이게 따뜻한 디테일이라고 여긴 걸까?”


오히려 그 시간에 슈퍼맨이라면 광속으로 모든 건물 속 인명을 구해내야 했습니다.


그게 ‘슈퍼맨’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존재의 이유죠.

하지만 이 영화는 그마저도 놓칩니다.


도시는 붕괴되고 수많은 이들이 건물 잔해에 깔려 죽어가는 동안 슈퍼맨은 조용히 균열을 막고 있죠.

심지어 감정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슬픔도, 분노도, 절박함도 없어요.


그건 초인이 아니라 냉소적인 무능력자에 가까웠습니다.





렉스 루터는 항상 ‘인간’으로서 슈퍼맨이라는 초인의 반대편에 존재해 왔습니다.

힘 없는 자가 머리로 강자를 견제한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윤리적 긴장을 유발하죠.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의 루터는 시작부터 모든 상황을 내려다보는 전지적 존재처럼 그려집니다.

그의 지능은 빛나지만 그걸 뒷받침하는 개연성은 전혀 없습니다.


원격으로 ‘해머’를 조종해 슈퍼맨의 동선을 계산하고 공격 타이밍을 실시간으로 조율하며 심지어 슈퍼맨의 의도까지 간파합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에 대해 영화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냥 '루터니까요.'입니다.


그 결과, 슈퍼맨은 루터가 디자인한 세트장에서 그저 유린당하는 배우1에 불과하게 되죠.


무엇 하나 스스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맞고, 갇히고, 당하고, 휘둘리고, 심지어 마지막 반전마저 다른 이들의 손에서 완성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았을까요?

슈퍼맨 영화라 믿고 들어왔는데 정작 슈퍼맨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영화였습니다.


가장 절망스러웠던 순간은 그가 한 번도 주도권을 잡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습니다.


관객은 점점 혼란에 빠지죠.

“도대체 이 인물의 강점은 무엇이지?”

“그런데 왜 시민들은 그를 따른다고 설정되어 있지?”


그 질문은 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단 한 번도 설득되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단독 슈퍼맨 영화이면서도 동시에 저스티스 리그의 예고편처럼 움직입니다.


미스터 테리픽, 메타모포, 호크걸, 그린랜턴, 슈퍼걸...

등장 인물은 많고 설정은 복잡하며 그들의 행동은 능동적입니다.


문제는 그들의 존재감이 슈퍼맨을 압도한다는 데 있습니다.


관객이 기억하는 장면은 대부분 슈퍼맨이 아닌 이름조차 생소한 사이드킥들의 액션입니다.


슈퍼맨은 그들 사이에서 그저 존재하는 배경처럼 보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구경꾼'처럼 보입니다.


이 영화에서 슈퍼맨은 신도, 영웅도, 인간도 아닙니다.

그는 그냥, 어정쩡한 중간자에 머뭅니다.


그러다 보니 그가 지닌 윤리적 상징성도, 그가 추구하는 철학도 모두가 허공에 붕 떠 있습니다.


슈퍼맨이 왜 ‘슈퍼’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그는 단지 허약하고, 감정적이며, 수동적인 존재로 남습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에서 제게 가장 긍정적으로 다가온 부분은 여주인공 로이스 레인의 외모였습니다.


<리턴즈>에서도 로이스는 아름다웠지만 이번 작품에선 확실히 스나이더 시리즈에 비해 훨씬 매력적인 비주얼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게 유일한 ‘장점’이라면 말 다한 거겠죠.


이번 작품에서 가장 큰 충격 중 하나는 슈퍼맨의 부모에 대한 재해석이었습니다.


코믹스 설정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해석이 이 캐릭터의 윤리적 뿌리를 뽑아냈다는 데 있습니다.


슈퍼맨의 선함은 친부모에게서 물려받은천성적 선함과 양부모의 사랑 속에서 자라난 지구적 가치의 총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선 그 설정이 희미해지고 오히려 그의 친부모의 폭력성과 강압성이 부각됩니다.


그 결과, 슈퍼맨의 ‘선의’는 더 이상 내면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니라 강요된 선택처럼 보이게 됩니다.





사실, 슈퍼맨은 말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는 그 자체로 상징이며, 프레임이고, 실루엣입니다.


헨리 카빌의 슈퍼맨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는 걸어 나오는 장면 하나만으로 공기를 바꾸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번 영화의 슈퍼맨은 어땠나요?


키는 큽니다.

그런데, 그게 다입니다.


피지컬의 조화도, 얼굴의 상징성도 걷는 모션조차도 슈퍼하지 않습니다.


홍보용 포스터에서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저는 솔직히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건 그 캐릭터의 실패입니다.

단순히 연기력이 아니라 존재감의 부재입니다.


<슈퍼맨 리턴즈>는 슈퍼맨의 ‘선의’를 조용하고도 깊게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맨 오브 스틸>은 그의 ‘강함’을 압도적으로 시각화한 작품이었고요.


이번 영화는...

어느 쪽도 아닙니다.

그는 약했고, 선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액션도 존재하지 않았고 상징도 사라졌습니다.

그가 싸운 것은 ‘악’이 아니라 자기 무력감이었습니다.


그 무력함은 설계된 것입니다.

제임스 건 감독의 의도였죠.

그는 아마도 이 ‘너프된 슈퍼맨’ 위에 균형 있는 DC 세계관을 만들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슈퍼맨을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추는 것, 그건 마치 시를 쓰기 위해 시인을 침묵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 저는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제임스 건이 만든 이 세계관의 슈퍼맨, 앞으로도 계속 봐야 할까?”


아마도 저는 보긴 보겠죠.

하지만 극장에 갈야 하는지 조금 고민을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영화가 준 실망은 단순히 한 편의 슈퍼히어로 무비에 대한 감상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던 슈퍼맨’이라는 존재가 사라졌다는 상실감이었습니다.


그게 크고 깊었습니다.


관객은 둘로 나뉠 것입니다.


저처럼 '슈퍼맨이 왜 슈퍼하지 않은가'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기존과는 다른, 인간적인 슈퍼맨이 신선하다'고 느낀 사람들.


이 둘 중 누가 많으냐에 따라 흥행 성적은 결정되겠죠.


잭 스나이더는 <맨 오브 스틸>로 대성공,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중박, <저스티스 리그>까지 세 편을 끌고 갔습니다.


과연, 제임스 건의 슈퍼맨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그건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첫 편은 ‘슈퍼맨을 잃은 이야기’로 남을 것입니다.


이 영화는 잘 만든 오락영화입니다.

기술력도, 시각효과도, 분량도 탄탄합니다.

돈을 아깝게 만들진 않죠.


하지만 ‘슈퍼맨 영화’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는 강해야 하고, 선해야 하며, 혼자서라도 구해내야 합니다.


이번 영화의 슈퍼맨은 그 어떤 것도 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는 존재했지만, 행동하지 않았고, 보여졌지만 기억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는 ‘슈퍼맨’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프랜차이즈가 안겨준 이름만을 겨우겨우 붙들고 있던 남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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