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죄’를 대하는 태도를 되돌아볼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는 너그럽고 타인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는 않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동성애에 대한 강경한 반대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정작 교회 내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부정직함, 가족 간 갈등, 성적인 타락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교회들은 부서 내 부정직한 관리나 금전적 문제를 ‘한 번 실수’로 치부하면서도 특정 죄에 대해서는 거칠게 비판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때 우리 스스로에게 던질 질문은 이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가?”
또한 대형 교회의 경우 주차장 문제로 지역 주민에게 불편을 끼치고도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예배날마다 교인들이 도로와 인도까지 차지하며 주차를 하여 주민들의 통행에 어려움을 주는 상황에서도 문제의식 없이 이를 지속한다면 이는 과연 ‘이웃 사랑’의 정신에 부합하는 태도일까요?
교회가 지역사회에 불편을 주고도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은 불신자들에게는 위선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말과 행동을 할 때 더 신중하고 겸손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흔히 동성애를 큰 죄로 치부하면서 음욕이나 미움 혹은 작은 거짓말에는 너그러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남의 죄를 지적하며 스스로의 ‘깨끗함’을 확인하고 안심하는 듯한 심리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동성애를 누구나 쉽게 빠질 수 있는 흔한 잘못으로 이해한다면 지금처럼 강경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나도 내일 범할지 모르는 죄인데?
나와는 절대적으로 상관이 없는 죄이기 때문에 쉽게 정죄할 수 있고 더 강경하게 대응할 수 있는 죄에 대해 차별적인 태도를 가져오게 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려던 무리에게 하신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라는 말씀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자리에 간음한 여자가 아닌 동성애자가 있었다면 예수님께서는 동일하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러니 지금 우리는 쉽게 저지르지 않을 죄에는 엄격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해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입니다.
타인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일이 더 쉬운 반면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는 일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어떤 이들은 동성애가 교회의 근간을 흔드는 죄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교회의 뿌리를 흔드는 것은 동성애가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교만과 자만입니다.
남을 쉽게 정죄하고 자신은 늘 옳다고 여기려는 교만이야말로 우리의 신앙을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끌고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가 이러한 죄에 대해 동성애만큼 엄격하고 진지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교회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위선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진정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고자 한다면 모든 죄에 대해 공정한 잣대를 들이대고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기에 앞서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겸손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특정 죄에만 지나치게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지나치게 관대한 태도를 유지한다면 예수님의 사랑과 공의는 왜곡되어 전달될 위험이 큽니다.
기독교가 진정으로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사랑을 베푸는 종교’로 비춰지려면 우리는 남을 쉽게 정죄하기보다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품으려는 따뜻한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동성애에 대해 강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 자신이 흔히 빠질 수 있는 잘못들에 대해 돌아보며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가 진정 사랑과 용서의 종교로 자리 잡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남을 판단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더 엄격해지고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서만 우리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참된 그리스도인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