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uchon - Mélange Fauchon
일본에서 포숑 매장에 방문하고 벌써 계절이 한바퀴가 돌았다. 그립구만. 여행기념으로 사무실에 돌린 선물이 포숑 티백과 과자였는데 남은 티백 중에는 멜랑쥬포숑도 있었다. 여름이었나 하나 까먹어보고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시음기를 써본다. 그래봐야 티백 네다섯 개 마셔본 게 다라서 이것은 짧은 글로.
아래에 영어로도 딱 써있지만 멜랑쥬 포숑, 포숑 블랜드란 뜻으로 포숑의 이름을 건 블랜딩이니 일단 기대가 된다. 시트러스 과일과 바닐라 가향차라고 하는 거 같은데 과연 어떤 맛일지. 바닐라 가향은 보통 크리미하다는 느낌과 거기서 좀 안 좋은 쪽으로 나가면 텁텁하고 답답하다는 느낌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어서 그 사이 어딘가 겠구나 싶은 예상이 된다. 하지만 시트러스는 종류도 워낙 많고 향도 다양해서 과연 어느 쪽 일지, 그리고 바닐라와의 합이 얼마나 어떻게 잘 맞을지 그런 걸 생각해 보게 된다. 아무튼 개봉.
아니 여기 은침 들었다고 왜 아무도 안 알려줬어요? 그냥 내가 몰랐던 거긴 하지만. 사진을 찍은 티백은 은침이 좀 작은 편이지만 다른 티백은 정말 티백 길이만 한 길쭉한 은침이 든 것도 있어서 흠칫 놀라게 된다. 은침이 여러개도 아니고 딱 하나가 크게 들어있으니까 뭐 다른 게 들어간 것처럼 보여서.
150ml의 100도씨 물을 준비하고 티백을 넣어준다. 봉투에는 90도, 4분이라고 되어있지만 무시하고 2분. 티백을 조심스럽게 흔들어주고 얌전히 물이 빠지도록 건져준다. 바닐라향이 익스트렉트처럼 치고 올라오는 게 아니라 크림처럼 차분하게 깔린다. 약간의 스파이시한 향도 언듯 지나친다. 한 모금 마셔보니 본격적인 바닐라향이 제법 묵직하게 느껴지고 오렌지필 느낌의 시트러스향이 약간은 매콤하게 정향류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얼핏 크리스마스티의 느낌도 드는 본격 가을가을차. 가을 내지는 겨울에 정말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밀크티도 반드시 괜찮겠지. 티백 두 개를 100ml의 끓는 물을 부어 우려내고 스팀밀크를 부어주었다. 포숑으로 밀크티를 만들면 항상 맛이 향을 이기지 못한다는 인상이 있는데 이번에도 역시. 스트레이트에서 시트러스와 정향느낌이 공존했다면 이제는 연하게 스파이시함 위주로만 향이 남고 바닐라의 묵직함도 한층 편하게 느껴진다. 다만 차맛이 우유에 쉽게 밀리는 느낌이다. 조금만 더 펑 하고 터져주면 좋겠는데.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지만 좋은 맛이다. 설탕을 넣지 않고 밀크티를 마신 지 좀 되었는데 아마 설탕의 빈자리인가 싶기도 하다.
잎차와 티백의 차엽이 얼마나 다른지는 모르겠으나 보기에는 잎차 그대로 티백에 넣은 느낌이다. 만족스러웠던 티백이었다. 동경의 대상인 포숑선배의 이름을 건 포숑 블랜드인 만큼 나름 진지하게 마셨는데 너무 힘주고 마셔서 그렇지 기온이 떨어질 때 편하게 데일리로도 참 좋겠다 싶었다. 포숑의 멜랑쥬 포숑,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