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시아 8244. 벳삥상
보부상님의 행낭에서 꺼낸 오사카 한정. 벳핑상을 마셔보았다. 엔저 사랑해요. 올 6월에 전달받은 행낭의 마지막 시음기. (원글 작성 순서는 다르지만)
벳핑상은 녹차 베이스의 베르가못 블랜딩이다. 오사카의 건강하고 귀여운 벳핑상 같은 차라고 하는데 벳핑상은 한자로 읽자면 별품씨, 그러니까 미인이나 값진 상품님 정도로 번역하면 된다. 핑크페퍼, 별사탕 이런 게 들어있다. 일단 그렇구요. 얼그레이의 인기가 워낙 높다 보니 이런 녹차 베이스의 베르가못 블랜딩이 여기저기서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녹차에 베르가못이 잘 어울리는 건지 늘 의문이긴 한데.
개봉하자마자 베르가못향이 코를 뽝 찌른다. 오렌지향이 좀 강한 베르가못이다. 정신이 없어서 건엽사진도 빼먹었다. 잎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면 일본녹차의 그것인데 엄청나게 빠스러져 있다. 흩날리는 가루가루. 그리고 베르가못이 너무 강해서 녹차의 향은 코를 대고 킁킁거려도 찾기가 어렵다. 이걸 어떡하지 싶은 고민이 먼저 들었는데 결론은 물은 살짝 식혀서 80도쯤 언저리에서 2분 우리는 걸로. 그리고 엑.
도넛이랑 같이 먹었다. 아니, 차를 마시고 나니 도넛이 먹고 싶어 졌어. 얼그레이나 레이디그레이 같은 그런 베르가못이 아니고 이건 그냥 베르가못 탕이다. 녹차 없음. 그냥 베르가못. 첫 잔이라 그런가 싶어서 기다려가며 두 번째 세 번째 잔을 먹은 뒤 알게 되었지. 이건 뭔가 단단히 잘못 됐어.
도넛으로 차를 지워가며 마셔본다. 녹차의 맛을 느껴보자니 처음에 치고 들어오는 베르가못 맛에 이어 연하게 녹차의 맛과 수렴성이 아주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데 정말 너무 순식간이다. 처음에 치고 들어갔던 베르가못의 맛이 뒤에 확 올라오는 향과 합쳐지면서 그냥 베에에에에에에에에르가못이다. 미쳐버린 베르가못. 그리고 잔에 이끼마냥 녹색 얼룩이 남아버렸어. 이건 수색이 좀 탁할 때부터 알아봤는데 지금 보니 녹즙이다. 말차냐고.
녹차니까 왠지 그렇잖아, 개완으로 마셔보고 싶은 느낌. 어찌나 가루가 지는지 미역국 마시는 줄 알았구요, 개완 안쪽이 초록색으로 바로 물들어버렸다.
이게 웃기는 게 어느 온도에서나 차는 사라지고 베르가못 물이 되어버린다. 온도, 물 양, 시간 다 바꿔봐도 저는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선생님들. 그 과정에서 순식간에 15g은 쓴 것 같은데 거기에 급랭까지 시도해 보았으나 실패. 마지막으로 냉침까지 해보았으나 그것도 실패. 솔직히 차 맛이 1도 없어서 냉침이 의미가 있을까 싶은데.. 우연히 알았는데 아몬드를 곁들이면 화장품 내지는 향수탕의 느낌이 약간은 줄어든다. 애초에 그냥 얼그레이를 마시지 왜 이걸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네.
이번 시즌 가장 속을 썩인 차인데 결국 차 맛을 끄집어내는 것에 성공하긴 했다. 뚜껑 없이 다시백에 넣어서 1.5분 뜨겁게 우리고 다시백 바로 건졌더니 그나마. 다시백은 털거나 짜지 않기. 차 맛을 끄집어내긴 했지만 베르가못과 녹차의 벨런스는 여전히 좋지 않았고 애초에 녹차랑 베르가못이 잘 맞는지를 진짜 난 모르겠다. 계속 적다 보니 또 화나는데 대략 20그람 남기고 뱃핑상은 안녕.
유부남인 탓일까. 오사카의 미인이 도통 매력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