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시아 8240. 우메 베르
루피시아의 매실가향은 대표적으로 후쿠우메나 우메노카 등의 지역한정들이 있겠는데 앞쪽이 홍차 뒤쪽이 녹차버전으로 순수 매실토핑이나 매실가향만 들어간 건 아니고 페퍼라던지 자스민이 함께 블랜딩 되어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마시는 우메 베르야말로 정통 매실차라고 하겠는데 일본녹차에 동결건조 매실이 들어간 순수 매실과 차의 조합이다. 내가 기억하기론 이것의 홍차버전이 분명 있었는데, 그러니까 매실토핑에 매실가향, 홍차만 들어간 것이 마셔봤단 기억만 나고 흔적은 찾을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루피시아 홈페이지가 제품의 단종과 함께 제품 페이지 자체를 삭제해 버리기 때문에 검색에 나오지 않아도 옛날에는 있었던 경우가 있어 도통 내가 잘못 기억하는 건지 단종이 된 건지 확신을 하기가 어렵다. 아무튼, 의외로 부실해져 가는 루피시아 매실계열의 적통인 우메 베르를 마셔본다. 사실 구매는 작년 12월 초에 간지차 사면서 같이 했고 본격적으로 마신건 2월에 마셨으나 사쿠라 시리즈에 치이고 여기저기 치이다가 이제서야 작성하게 되었다. 계절 한정으로 판매가 종료된 지도 두어 달이 된 것 같은데 적어둔 게 아까워서 마무리하기로. 아무튼 50g 봉입으로 630엔이고 상미기한은 제조 1년인 듯.
매실이고 매화시즌에 나오는 차이니 딱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냐만 그래도 차분히 읽어보자.
아마즛빠이 우메노 카오리가 훈와리 타다요우 닛폰 료쿠챠니, 우메노 카니쿠오 부렌도시마시타.
새콤달콤한 매실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일본 녹차에 매실 과육을 블렌딩 했습니다.
약간은 새삼스러운 내용되겠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아무래도 매실 과육이 들어갔다는 점이 아닐까. 내 기억이 맞다면 이제 매실 과육이 직접 토핑 되는 차는 우메 베르밖에 남지 않았다. 옛날엔 뭔가.. 뭔가 더 있었던 거 같은데!
봉투를 개봉하면 루피시아의 '그' 휘발성 가향취와 함께 상큼 달달한 향이 올라온다. 매실주스 졸이는듯한 달달한 향이다. 이대로 사탕을 만들면 좋을 것 같은데. 대체당의 달달함에서 무거움이 느껴지는 것과 반대로 우메 베르의 달달함은 설탕보다도 훨씬 가벼워서 투명하고 농밀하게 달달하다는 느낌을 준다. 루피시아의 매실 가향이 이렇게나 뛰어난데 말이야. 건엽을 덜어내어 보면 제법 두툼해 보이는 센차들 사이로 매실 과육들이 꽤나 들어있다. 이제는 익숙한 루피시아의 매실가향에 더해서 어떤 맛을 내줄지가 궁금해지는 과육들이다.
3g의 찻잎을 한 김 식힌 물 약 100ml에서 1분가량 우려내었다. 사진에 맞춰 다포법으로 마신 레시피를 적었으나 평소처럼 6g의 찻잎을 한 김 식혀서 90℃ 이상인 물 300ml에서 1.5분 우려내는 것도 좋다. 한잔 따라내 보니 상큼달달한 매실의 향이 슬그머니 퍼져나간다. 찻물의 온도가 90℃ 조금 안되게 내려가면 오히려 녹진하니 농밀해지는 향이 난다. 그런 경우엔 약간은 구워낸 듯한 향도 살짝 느껴진다. 하지만 온도를 올려서 가볍게 우려내면 상쾌하니 밝고 기분 좋은 향이 난다. 내 취향은 온도를 조금 올리는 편. 가볍게 한 모금 마셔보면 매실 특유의 새콤한 맛이 차를 마시면서도 침이 고이는듯한 느낌을 준다. 실제 맛에서 강한 산미가 느껴진다기보다는 향에서 오는 일종의 착각인데 제법 실감 나게 다가온다. 녹차는 꽤나 푸릇한 느낌으로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맑고 상쾌한쪽에 가까운데 아무래도 이쪽이 매실에는 확실히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다. 깔끔하고 정갈한 느낌이 강한 차로 은은하게 단맛과 상큼한 향이 입안을 개운하게 해 준다. 그러고 보면 이 차의 단점은 자꾸 입으로 뭐가 들어간다는 것. 다식이 끝도 없이 들어가게 해주는 맛이다. 약간 낮은 온도에서는 향에서 예상하듯 조금 더 매끈한 녹차의 맛이 강조되고 매실의 새콤한 맛은 줄어든다. 극명한 차이냐고 하면 그 정도까지는 아닌 약간의 벨런스 차이인지라 앞서 이야기한 다포법에서도 어지간해서는 밝은 톤으로 우려내진다.
냉침 아이스티로도 그 깔끔한 맛이 잘 살아나서 좋았지만 우메 베르 역시 오차즈케로 초강력 추천이다. 그저 우메 베르를 부어주는 것만으로도 밥에 우메보시 하나 올리고 녹차 깔끔하게 부어준 오차즈케를 먹는 느낌을 주면서 고급진 느낌을 완성해 준다. 물론 우메보시에 대한 호불호는 좀 고려해야겠지만. 사쿠라 베르와 함께 올봄에 오차즈케로 추천하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놓치다 보니 이제야 뒤늦게 올리게 되었다. 내년을 기약하시라.
루피시아의 가향 녹차를 마실 때면 늘 달아두는 사족인 것 같은데 가격대비 괜찮은 차품의 녹차를 사용하기 때문에 언제부턴가 가향 녹차는 믿고 구입하는 일이 많다. 내 기억으로는 그래도 홍차가 메인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변한 부분이다. 세월은 흐르고 많은 것이 변하고 그래도 여전히 맛이 있는 루피시아의 매실에 밥이나 말아먹으면서 흘러가는 세월을 기록해 둔다. 더 열심히, 더 즐겁게 마셔댈걸 하고 생각하는 날들이 많다. 후회라기보단 미련에 가까운데 글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해 보이는 시음기가 잘 써지지 않을 때마다 그 미련이 어떻게든 일단 쓰고 보자는 마음을 먹게 한다. 배 아프고 입맛 없을 때 기운을 주는 매실처럼 우메 베르에 휘뚜루마뚜루 밥 말아먹듯 대충이라도 밀린 시음기들을 완성하고 기운을 차려야겠다. 푸릇하고 상큼하고 기운을 주었던 우메 베르,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