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시아 7490. 갓 볶은 봉 호지차
줄기차하면 또 빠질 수가 없는 게 호지차 아닐까. 물론 줄기 없이 찻잎만 사용한 호지차가 메인이지 무슨 소리냐 할 수 있겠지만 줄기차 카테고리에서 호지차의 비중이 꽤나 높다는 접근으로 생각해 보면 꽤나 그럴듯한 이야기. 얼마 전 올렸던 루피시아의 시즈오카 쿠키차 역시 이걸 그대로 볶아내어 만든 호지차 상품이 있으니 바로 상품번호 하나 차이가 나는 7490 봉 호지차다. 역시나 그랑마르쉐 한정으로 제품의 상세 페이지도 보기 어려운 상품이다. 봉 호지차에서 기억이 났는데 시즈오카 쿠키차나 봉 호지차 같은 경우엔 레귤러 상품에서 그랑마르쉐로 옮겨간 상품으로 기억한다. 레귤러 시절엔 판매순위가 꽤 높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시즈오카 쿠키차의 판매순위가 높았던 것도 레귤러 시절의 발표였던 걸로 기억한다. 워낙 옛날 기억이라 (아마 코로나 이전인 것 같다) 정말 까먹고 있다가 갑자기 기억이 팟, 하고 나버렸다. 아무튼 2월에 있었던 온라인 그랑마르쉐 덕에 집에서 편하게 직구로 구입. 100g에 700엔으로 상미기한이 25년 8월까지인데 작년에 만들어놨지 싶은, 그래서 아마도 제조 1년이 상미기한일 것 같은 느낌.
우선은 봉투가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에 깜놀. MS+라는 규격인 거 같은데 봉투 규격 코드는 아직 신경 써서 구분해보진 않았기 때문에 잘은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까지 마셔본 루피시아 은박 봉투 중에 가장 컸던 건 확실. 이리타테봉호지차라고 읽는 것 같은데 갓 볶은 봉 호지차 정도로 해석하면 되는 것 같다.
시즈오카켄산노 이치반챠노 쿠키다케오 아츠메테 바이센시타, 코우바시이 카오리토 아마미탓푸리노 죠우시키칸 아루 호우지챠데스.
시즈오카현산 첫물차의 줄기만을 모아 볶아낸, 고소한 향기와 풍부한 단맛을 지닌 고급스러운 호지차입니다.
왜 때 무네 그랑마르쉐 전용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는 설명이다. 아무튼 잘 나가던 그 친구 맞는 거겠지.
봉투를 열면 신선하게 볶은 차 향기가 풍성하게 피어난다. 김가루처럼 고소한 이 향기. 누룽지처럼 구수하고 마른 향이 정말 짙다. 건엽을 덜어내어 보면 시즈오카 쿠키차가 갈변한듯한 동일한 모양이다. 볶는 과정에서 가루가 좀 많이 생긴 것 같은데 우릴 때 바닥에 좀 가라앉겠구나 싶다. 깔끔하게 마시고 싶다면 다시 백을 쓰는 게 좋을지도.
8g의 차를 예열해 둔 티팟에 90℃ 이상 되는 물을 부어 1분 안되게 우려내었다. 시즈오카 쿠키차와 마찬가지로 꽤나 가벼운지 드립커피에 처음 물 부을 때처럼 모카빵이 부풀어 오르고 구운 해조류 같은 향에 저온들기름 한 방울 떨군듯한 고소한 향이 물을 부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강하게 피어난다. 한 모금 마셔보면 강하게 볶은 보리차나 아주 연하게 우려낸 원두스쳐간 커피 같은 느낌의 찻물이 맛있다. 너무 편하고 쉽게 잘 넘어가는 맛인데 계속 들어가는 맛. 호지차 하면 보통 아이스로도 제법 잘 어울릴 거라 생각하지만 딱히 아이스로 마시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따뜻한 느낌의 이 호지차가 주는 깔끔함이 너무 좋다. 호지차에서 종종 느껴지는 느끼함이 있는데 원료인 시즈오카 줄기차의 깔끔함을 이어받는 건지 전혀 그런 느낌이 없고 오히려 입이 개운해진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 아무래도 아이스로 가면 느끼하다고 느껴질 법한 맛들이 살아날까 좀 두렵기도 하다. 지난 한 달 남들은 벌써부터 에어컨 너무 춥다고 난리 치던 아침마다 따뜻하게 한잔 두 잔씩 마시다 보니 금방 동이 나버렸다. 루피시아의 대표적인 호지차인 도깨비가 볶았나 싶은 호지차라던지 여타 다른 호지차들과는 추구하는 톤이 약간 다른 느낌인데 피아노로 치자면 기존의 호지차들이 스타인웨이 같은 그랜드그랜드한 느낌이라면 갓 볶은 봉 호지차는 좀 더 야마하 같은 음색이라고 할까. 더 맞는 설명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
원래라면 100g이니 넉넉하게 아이스도 급랭, 냉침 마셔보고 밥에도 말아보고 했어야 할 호지차인데 홀랑홀랑 마시다 보니 핫티로 모두 소진하고 말았다. 그만큼 매력적이었단 이야기이고 너무 시음기에 신경 쓰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냥 좀 마시고 싶은 차였다. 봉 호지차는 봉 마르쉐 봉 호지차도 많이 사 왔으니 다음번에 이것저것 또 해 먹어 보면 될 것 같다. 다 마셔버리고 뒤늦게 작성하느라 내용이 좀 디테일하진 않지만 날이 더워지기 전 휴식 같은 차였으니 쉽게 쉽게 좀 써보는 것도 좋겠지. 소싯적 인기순위를 다투다가 이제는 특별 행사장에서만 만날 수 있게 된 갓 볶은 봉 호지차,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