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시아 8570. 나타데코코
루피시아의 그랑마르쉐는 시기를 맞춰서 일본 현지에 참석해야 한다는 어려움으로 인해 언제나 가보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실제 가보지는 못했었다. 그러다 보니 늘 그랑마르쉐 한정차가 부럽기만 했었지. 작년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올해는 그랑마르쉐 일정이 공지되면서 온라인 그랑마르쉐라는 것을 오픈했다. 오프라인 행사장만큼은 아니지만 그중 일부를 온라인으로도 구매할 수 있게 된 것. 이때는 기회다, 기회가 이땐가 정신을 놓고 두 번에 나눠 개인통관을 꽉꽉 채워 주문을 했다. 그게 벌써 반년전이네. 꽤나 많은 그랑마르쉐 한정차가 밀크티 아니면 아이스티 추천이 붙어있어서 올해는 연초부터 여름, 가을차들을 잔뜩 쟁여놓게 되었다. 이제 여름이 되었으니 하나하나 공개해 보는 그랑마르쉐 한정차. 오늘은 아이스티 추천 중에 가장 좋았던 나타데코코의 시음기이다. 나타데코코는 필리핀에서 코코넛을 젤리화해서 만든 게 오리지널로 보통 음료에 넣거나 토핑으로 많이 쓰는데 우리에게도 코코팜 같은 음료로 많이 친숙한 재료이다. 공차에서 우롱차 당도제로에 코코넛 젤리 넣은 게 최애음료인데 거기에 들어간 코코넛 젤리도 마찬가지로 나타데코코. 여기까지만 들어도 이제 다들 어떤 맛일지 대충 기대하시는 바가 있으리라. 누가 봐도 확신의 아이스티인 나타데코코, 50g 봉입에 750엔으로 상미기한은 1년이다. 두봉을 샀다가 오사카 가서 한 봉지 더 사 와서 총 세 봉지 구입. 가격은 내가 알던 것보단 조금 오른 것 같은데 정규가 아니다 보니 가격조정도 매년 쉬운 편인 것 같다.
공차 최애음료가 우롱차에 나타데코코 조합이었는데 이쪽도 우롱차 베이스다. 다만 공차의 경우는 농향 우롱이 베이스고 이쪽은 아마도 청향이겠지.
코코낫츠노 카쥬우카라 츠쿠루 아지안테이스토노 데자아토오 이메에지시타 타아완 우우롱챠. 아이스티이니모 오스스메.
코코넛 과즙으로 만든 아시안테이스트의 디저트를 이미지 한 대만 우롱차. 아이스티로도 추천.
루피시아의 과일우롱이야 여름 냉침차로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그야말로 탄탄한 입지인데 그쪽과 결을 같이하는 코코넛 젤리 아이스티라는 설명이겠지. 과연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지.
봉투를 열어 향을 맡아보니 가벼운 가향이 포도향에 가깝게 퐁퐁 솟아오른다. 폴라포스러운 머스킷머스킷향이 아니고 은은한 머스킷향인데 가만 생각해 보면 나타데코코에서는 코코넛 과육의 향이라기보다는 항상 이렇게 포도 같은 단향이 났던 것 같다. 좀 더 쉬운 향으로 설명하려다 보니 오히려 더 혼란스러운 설명이 되는 듯한데 정확히 얘기하면 나타데코코의 그 향이 맞다. 건엽을 덜어내 보면 단단히 포유 되어있는 우롱차와 금평당이 쏟아져 나온다. 흰색과 녹색의 금평당이 마치 녹색의 우롱차에 잔뜩 떠다니는 나타데코코 같은 느낌이다. 보아하니 늘 사용하는 그 우롱차가 맞는 듯. 얼마나 달달한 느낌을 내려고 금평당까지 넣었는지 어디 한번 마셔보자.
예의상 개완에 따듯하게도 마셔보았는데 평범한 머스킷향 우롱에 아주 은은하게 코코넛스러운 향이 감도는 느낌이다. 두세 번은 마셔도 은은하게 단 느낌이 계속 유지되는 청향우롱. 아무래도 뜨거운 음료에 나타데코코는 어색할 수밖에 없으니 아이스로 빨리 갈 수밖에 없다. 급랭으로 시도해 보니 빵빵한 우롱차에 약간의 달달함이 맛으로도 향으로도 느껴진다. 급랭하면서 맡아봤는데 뜨거운 엽저에서는 청향우롱 특유의 비린내가 살짝 스쳐가기도 한다. 사실 급랭으로 두어 번 마신 이유는 다름 아닌 엽저 사진을 위해서였다. 냉침에서는 아무래도 포유 된 차가 쫙쫙 펴지진 않으니까. 하지만 누구라도 예상하듯이 이 차의 진짜 매력은 냉침에서 나온다.
5g의 찻잎을 400ml에 하룻밤 냉침했다. 비로소 은은하면서 단단하게 느껴지는 청향우롱에 투명하게 입혀지는 달달한 향이 느껴진다. 끈적한 느낌 없이 매끈하게 느껴지는 가벼운 젤리 같은 맛이 깔끔한 우롱차의 맛과 함께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룬다. 밋밋하거나 밍밍하거나 심지어는 닝닝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쉬운 잘못될 여지도 꽤나 많은 방향성인데 깔끔하면서도 맛도 정확하게 느껴지는 편안한 아이스티다. 대여섯 시간까지만 가도 더 이상 우려지지는 않은 충분한 추출시간인데 하룻밤 냉침을 했던 이유는 매일매일 퇴근 무렵 두병씩 냉침을 해놓고 집에 갔기 때문이다. 매일아침 땀나는 출근길을 지나서 회사에서 느끼는 청춘의 맛. 아침마다 냉침을 거의 1리터씩 마시는 게 양이 꽤 많은데도 불구하고 편안하게 들어가는 차다. 냉침 한 번으로 끝나는 내포성은 아니고 두 병치를 모아서 다시 냉침을 해도 나타데코코의 가향까지 그대로 살아있는 냉침이 한번 더 나오곤 하는데 보통 거기까진 하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150g이나 있었거든. 잎차를 한번 마시고 팍팍 버리는 어른이 되었다니.. 어렸을 땐 상상하지 못했을 광경. 보고 있니 어린 시절의 나. 이천 년 전의 너에게...
나타데코코도 그랑마르쉐에 처음 등장한 지 몇 년이 된 걸로 기억하는데 아직까진 정규편입이 되진 않은 걸로 봐서는 어딘가 아쉬운 부분이 있는 거겠지. 확실한 건 마셨을 때의 단점이 문제가 된다기보다는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한 아쉬운 부분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을 거란 점이다. 예를 들면 퀸즈머스켓우롱과 약간은 겹치는 포지션이라던지. 하지만 가격적인 측면도 무시할 순 없고 인상의 차이도 꽤나 있기 때문에 차별성이 없다고 하기엔 그도 애매하지 않은가 싶다. 어제부터 다시 시작된 여름 온라인 그랑마르쉐에서 주문을 해볼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면 이 더운 여름에 자신 있게 추천 가능한 냉침용 우롱차로 나타데코코를 주문해 보는 것도 좋겠다. 그랑마르쉐 한정의 아이스티 나타데코코,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