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시아 5812. 츠키니사쿠
여름의 늦더위가 지쳐갈 무렵이면 가장 먼저 가을을 기다리게 만드는 꽃이 바로 계화인데 다른 말로는 금목서라고도 부르는 꽃이다. 놀랍게도 2년 전인가부터 이 이야기를 했던 거 같은데 아직도 실제 금목서를 만나보지는 못했고 항상 이렇게 블랜딩 재료로만 만나보고 있다. 아무튼 9월이 되면 슬슬 여기저기서 금목서 블랜딩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사실 한여름보단 살짝 서늘한 공기가 있어야 느낌이 잘 사는 맛이란 생각이다. 올해는 처서매직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작년보단 양호하게 밤공기가 시원해지는 시기가 찾아왔고 빠르게 금목서 홍차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여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사람이라 가을맞이 차는 매년 챙겨마시게 되는데 올해는 일러스트도 잘 뽑힌 것 같아 일러스트 캔으로 구매했다. 츠키니사쿠 한정 디자인캔입 40g에 1170엔. 왜 캔입은 양이 살짝 줄어드는지 좀 서운하긴 한데 매년 마시는 차라 맛만 보고 넘어가도 크게 상관은 없어서 봐줬다. 상미기한은 2년. 50g에 980엔이니까 가격이 몇백 원 오른 건가?
츠키니사쿠 일러스트는 금박이 많이 들어가서 기본적으로 늘 예뻐 보이는 경향이 있긴 한데 올해의 일러가 작년 재작년에 비해 예뻐 보인다. 막상 캔 안쪽에 있는 내지는 좀 성의 없어진 게 아닌가 싶은 민무늬. 내용은 2년 전과 동일한 내용이다.
아데야카 나 킨목세이 노 하나비라오 코차 니 타뿌리 또 부랜도. 아마쿠 카구와시 카오리 또 노소 요인.
화려한 금목서 꽃잎을 홍차에 듬뿍 블렌딩 합니다. 달콤하고 향기로운 향과 그 여운.
봉투를 열어 향을 맡아보면 비릿하면서도 아찔한 들큰한 금목서향이 난다. 비릿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은박수지의 미묘한 향과 홍차향이 금목서향에 아주 얇게 끼어들면서 그런 느낌을 주는 것 같은데 금목서향이 비릿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가끔 봤던 것 같아서 나만 그런 게 아닐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아무튼 늘 맡던 그 향입니다. 올해 배치도 작년과 다름없음. 건엽을 덜어내어 봐도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익숙한 그 모습이다.
달과 계화니까 아무래도 밤차로 마시게 되는데 솔직히 그냥 핑계고 언제 마셔도 분위기가 참 좋다. 홍차에 계화를 섞으면 홍차 특유의 향과 마른 계화의 향이 중첩되듯 공명하는 부분이 있어서 홍차향이었다가 계화향이었다가 하는 부분이 있는데 적다 보니 양자역학도 아니고 이거 참. 아무튼 오묘하게 얽혀 들어가는 부분이 있어서 마실 때마다 참 즐겁다. 밤하늘과 달이 떠오르는 제목이라서 그런지 마실 때마다 천문학적인 기분이 드는 차. 계화가 달달 구수한 느낌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좀 더 베이스로서 깊고 그윽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가을밤에 참 잘 어울린다. 개인적으로는 쇼팽콩쿨 실황을 함께 하고 싶은 차 1위. 다만 좀 식으면 약간의 산미가 이게 산미인가 싶을 정도로 살짝 치고 올라오는 경향이 있으니 식기 전에 마시는 게 좋겠다. 애초에 급랭 아이스로도 종종 마시기는 하는데 이때는 좀 더 경쾌한 느낌이 되어서 편하게 쭉쭉 들이키기에 좋다. 워낙 부드러운 차에 금목서가 좀 더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경향이 있어서 급랭에서도 실키한 느낌이 든다.
그러고 보니 앵콜요청금지는 이전 차품에 비해 이렇게 저렇게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만들었는데 처음 마시는 것처럼 써버렸네. 별 차이 모르겠고 언제나 맛있습니다. 그냥 이 한마디를 길게도 썼다. 밤마나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맞바람이 치면 가을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온도가 떨어지니 제정신도 좀 드는 거 같고 이제 열심히 차를 마시고 떠드는 모드로 다시 돌아갈 시간. 달과 금목서와 차와 있는 시간 츠키니사쿠,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