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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포도향이 순식간에 익어 노오란 옥수수가 되어버려

루피시아 6527. 혼야마 가마이리 신차 코쥬 2025

by 미듐레어

루피시아에서 여름의 온라인 그랑마르쉐를 오픈하면서 일본차 할인 행사를 동시에 진행했었는데 기회다 싶어 이것저것 한 봉지씩 담아서 구매를 해보았다. 특히나 코쥬같은 경우 예전에 마셔보았던 코준과 헷갈려서 같은 건 줄 알고 놓쳤던 차였는데 이번에 잘 담아서 구매에 성공했다. 듣기로는 포도향이 폴폴 나는 신기한 녹차라고. 이름조차 향수라고 하니 이건 무조건 마셔봐야 하지 않겠나. 물론 물 수 자가 아니라 목숨수이긴 한데 향기로운 목숨이라니 아무튼 신조사사게오 느낌도 나는 것이 이런저런 핑계로 담아보았다. 할인기간이라 25g 봉입으로 1620엔에 구입. 이런저런 사정으로 1봉만 담았다. 일단은 맛만 보려구.

코우쥬

시즈오카의 혼야마 지역은 시즈오카 차의 발상지라고도 하는 것 같은데 메이지 시대에 초창기 와코차 개발 시절에 들여온 많은 외래 품종들도 들어와서 이후 와코차 개발이 시들해진 틈에 이런저런 자생하는 외래종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품종 간 자연 교배되어 새로 탄생하게 된 종들도 생겨났다고 하는데 바로 이 코쥬가 그런 케이스로 일본 품종과 아쌈계 외래품종의 자연교배종일 것이라고 추측되는 야생 품종이라고 한다.

시즈오카・혼야마노 다카하시 다쓰지상가 츠쿠루 카마이리신차. 세카이데모 루이오 미나이, 미즈미즈시이 부도노 요우나 카오리가 톡쵸우데스.
시즈오카 혼야마의 다카하시 다쓰지 씨가 만든 가마에서 덖은 신차. 세계에서도 드물게, 신선한 포도를 연상시키는 향이 특징입니다.

다카하시 선생님께서 볶아주신 차. 신종인 데다 아직 외부로 나간 적이 없는 종이라 세계에서도 드물 것이라는 이야기. 실로 기대가 된다.

꼬들나물

봉투를 열고 향을 맡아보면 고소함과 덖음차 특유의 건초 같은 향과 달달하면서도 약간의 상큼한 향이 나는데 포도껍질 말린듯한 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상큼함이 조금 덜 느껴질 땐 살짝 구수하면서 달달한 느낌이기도 하다. 시래기 말린 듯 마른풀향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서 약간은 헷갈리기도 한다. 건엽을 덜어보면 우롱차에 가깝게 비벼서 말아진 건엽들이 쏟아져 나온다. 네이버 이웃이신 Jermy님에게 듣기로는 일본의 가마이리차가 우롱차를 타겟으로 개발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시던데 아닌 게 아니라 홈페이지 설명에도 대만에서 강사를 초빙하여 일광위조를 개발했고 위조 후 곧장 솥에 덖어내어 향을 마무리한다고 한다. 그러니 아무래도 우롱차같이 생기는 게 당연한 게 아닐까. 고카세라던지 다카치호 같은 지역의 차들도 그러하더니 시즈오카의 혼야마도 마찬가지의 제법이 발달하는 모양이다.

깔끔한 포도

예열한 다구에 3g가량의 찻잎을 넣고 100도 조금 안 되는 물을 100ml가량 부어 45초 우려낸다. 정말 신기하게 생물 포도를 손으로 짜낸 것 같은 향이 난다. 어느 정도냐고 하면 올여름 마신 포도우롱의 느낌과 견주어도 딱히 모자라지 않을 정도. 은은하게 달달한 맛도 우마미보단 실제 단맛에 더 가깝게 느껴지고 시즈오카 녹차치곤 물질감도 꽤나 느껴진다. 포도사탕 같은 느낌이 강하다. 두 번까지 딱 좋게 마실 수 있고 아무래도 세 번째 우렸을땐 많이 맹물에 가까워진다. 내포성은 그저 평범한 수준이라고 한다면 상미기한에 있어서는 특별히 주의가 필요해 보이는데 포도의 상큼한 향이 금방 날아가버린다. 그럼 어떻게 되냐면 옥수수향으로 변신. 약 2주에 걸쳐서 마셨는데 개봉 후 열흘쯤 지나니 포도가 아닌 옥수수차가 되어버렸다. 일단 뜨거운 팟에 넣고 흔들면 옥수수 찐 향이 확 난다. 찻물의 향은 그러한 곡물 우린 향이 지배적인데 막상 마셔보면 또 다른 향이 된다. 이렇게 되면 조금 길게 우려 줘야 포도를 조금이라도 더 뽑아낼 수 있긴 한데 그러다 보면 홍차를 쭈룩 흘린듯한 짙은 수색이 되고 만다. 붉은기가 좀 돈다고 할까. 이렇게 되면 또 재밌는 게 옥수수향에서 포도향으로 향이 변하는 길이 스펙트럼으로 느껴지는데 그게 이어지는 향이라는 게 신기하다.

우롱우롱

비쌀까 봐 품목당 2000엔을 넘기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어 보이고 워낙 빠르게 향미가 변하니 소포장으로 판매하는 세심함도 보여서 다시 한번 신뢰가 갔던 패키지였다. 최근에도 이미 했던 이야기지만 루피시아가 세계최고의 차품이라 산지 차들마저 루피시아에서 구매를 하는 게 아니다. 이런 사소한 배려들이 느껴지니까 마음이 편히 찍먹을 막 해보는 거 아니겠는가. 그리고 일단 실패확률도 굉장히 적고. 사실 코쥬는 다른 곳에서도 판매하는 걸 종종 봤고 최근 예평에서 했았던 시음행사에서도 구매할 기회가 있었다. 구매에 다양한 루트가 있는데 차품은 동일하다고 알고 있으니 선호하는 방법으로 한번 접해봤으면 싶단 이야기. 다만 소분해서 밀봉을 꽉 해두거나 빠르게 마시는 걸 추천한다. 포도가 옥수수로 변하는 일은 나 혼자만 겪어도 충분하니까. 옥수수맛도 나쁘진 않았지만 그래도 포도였을 때가 훨씬 아름다웠던 것 같다. 포도맛 사탕은 내년에 다시 맛보기로 다짐하면서 혼야마 코쥬,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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