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시아 8832. 와생강호지차
2025년 새로운 발견을 하나 꼽자면 줄기차 계열의 여러 가지 바리에이션이겠다. 시즈오카 줄기차와 그걸 볶은 봉호지차가 너무 맛있어서 추가 주문도 했었고, 겨울이 되어 마시게 된 이 와생강호지차는 넉넉하게 샀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추가 주문을 또 해버렸다. 앞으로도 줄기차 계열의 차들은 종종 대용량으로 사서 마시게 될 것 같다. 시음기를 작성하는 지금은 이미 200g을 모두 소진한 상태. 눈 깜짝할 사이에 또 다 마셔버렸다. 50g 봉입 840엔으로 상미기한은 제조일로부터 1년이다. 계절 한정인데 시즌 시작과 끝이 매년 좀 일정하지 않은 느낌이고 조기 종료되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다.
호지차답게 큰 봉투에 담겨 있고 부피가 굉장히 크다. 공기 충전이 필요해서 큰 봉투를 쓴 게 아니고 진짜 부피가 큰 느낌. 아무래도 봉호지차니까.
코-치켄산노 쇼-가오 탓푸리 쿠와에타 조-시츠나 쿠키호-지차. 와쇼-가나라데와노 아마미니, 미모 코코로모 아타타마리마스.
고치현산 생강을 듬뿍 더한, 고급스러운 줄기 호지차. 일본 생강 특유의 은은한 단맛이 몸과 마음도 따뜻하게 해줍니다.
재밌는 게 호지차인데 밀크티 추천 라벨이 붙어 있다. 호지차 밀크티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아무래도 차를 진하게 밀크티로 마실 정도로 주는 경우가 적고 그렇게 만들기도 불리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너무 흐릿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밀크티 추천 라벨이 붙었다니. 한번 시도해 볼 가치가 있겠지.
봉투를 열면 생강이 많이 들어간 하얀 센베이 향이 확 퍼진다. 호지차의 향은 끝 어딘가에서 나는 것도 같은데, 그냥 생강에 달달한 향이 더해져 너무나도 하얀 생강 센베이 향이라서 이거야말로 추억의 향기 아니겠냐고. 파삭하지 않고 적당히 진득하게 물어지는 식감까지 떠오를 정도다. 건엽을 덜어내어 보면 갈색빛 줄기차 사이사이에 자잘한 생강 조각들이 박혀 있다. 건엽의 구성 자체는 호지차와 생강 조각 딱 두 가지뿐인 깔끔한 구성이다.
우선 기본적인 호지차 자체로 따뜻하게 마셔본다. 6g의 호지차에 300ml의 끓는 물을 부어 1.5분 우려낸다. 줄기차라 차 자체가 많이 물 위로 뜨기 때문에 프렌치프레스 따위로 찻잎을 좀 눌러주면서 우려 주는 것도 방법. 사실 큰 차이는 없는데 그냥 찻잎들을 푹 담그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좀 집착하는 편이다. 우려낸 차를 따라내면 생강의 씁쓸한 진액 느낌이 제거되어 있다. 그렇다고 서양식의 진저와는 또 다른 인상으로, 수정과 같은 블랜드하면서도 숨길 수 없는 느낌의 생강 향이 난다. 아마 호지차의 구수한 향과 비벼지면서 그런 느낌이 된 것 같은데, 초밥 먹을 때 초생강 좋은 거 쓰는 집에서 느껴지는 좋은 생강 향에 가깝지 않았을까 싶다. 건엽에선 생강 센베이의 향이어서 그다지 깊은 향까진 기대하고 있지 않았는데, 한 모금 마셔보니 입에서의 물질감은 깔끔하게 유지하면서도 생강 생물이 느껴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생강의 깊은 향도 느껴져서 진저티로도 너무나 만족스럽다. 호지차의 향이 건엽에서는 좀 눌려 있었지만 우려내고 나면 당연하게도 빵빵한 호지차가 된다. 마시다 보면 기존 호지차에 불의 기운이 살짝 추가된 느낌이 드는데 불의 향이 아니라 기운이 추가되어서 좀 더 화끈한 느낌이 든다. 순수 호지차의 비어 있는 공명부에 생강의 맵쌀한 기운이 부드럽게 채워진다. 이 차를 추가 주문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인데, 그 생강의 느낌이 자극적이지 않을 정도까지만 매콤한데 은은하게 달달한 끝맛이 함께 돌아서 입안이 즐겁다. 감칠맛 없이 감칠맛이 주는 느낌을 재현했다고 할까.
앞서 이야기한 대로 호지차 자체가 주는 바디감은 밀크티로는 살짝 부족한데 그걸 생강이 채워주고 있다 보니 밀크티로 만들었을 때 굉장히 재미있는 맛이 났다. 생강의 단맛과 매운 향이 짜이같이 우유에 어우러지면서 마일드하고 구수한 호지차 베이스가 실키하네 부드럽네 하는 정도로는 표현할 수 없는 크리미한 느낌. 인도의 짜이가 가진 그 스파이시한 따스함이 일본식으로 은은하게 재해석된 느낌이랄까. 추운 겨울날 손을 녹이며 마시기에 이만한 차가 없다.
겨울철 따뜻한 호지차는 워낙 한국 입맛에 잘 맞는 선택인 것 같다. 여기에 깔끔한 생강의 맵달한 맛이 얹어져도 그리 이국적인 느낌 없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걸로 보아 한국과 일본에서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맛의 지향이지 않나 싶다. 생강차를 약용처럼 맛과 관계없이 여러 차례 달여 먹는 사례들이 한국에선 종종 있다 보니 인식적으로 생강차는 별로라고 생각하는 경우들도 많이 보았는데 부디 시작을 이런 맛있는 생강차로 시작해서 그런 안 좋은 선입견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강차가 맛없는 게 아니고 니가 먹은 그게 맛없는 무엇이었던 거야. 제발 한번 마셔봐. 불의 기운을 담은 따스함, 와생강호지차,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