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시아 3416. 사시마 홍차 이즈미 2025
작년 여름 끝물이었나 루피시아에서 와코차를 또 한번 우르르 쏟아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함께 나왔었던 사시마 와코차 이즈미 2025를 마셔봤다. 2025가 붙은 건 퀄리티 시즌이라 붙은 것 같고 연도 표시가 붙지 않은 상품번호가 다른 사시마 이즈미가 있는데 그건 여름차라고 한다. 퀄리티라고 생각되는 2025 붙은 건 봄차. 이즈미는 베니호마레 품종의 실생으로 자연적인 교배를 통한 신품종이라고 하겠는데 20세기 초에 한참 일본에서 홍차 개발을 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품종이라고 한다. 품종 등록이 1960년대에 되었다고 하는데 어지간히 애매한 품종이었나 보다. 최근 발굴되어 소개되는 마이너한 일본차 품종들이 대부분 저런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어쨌든 개발해 두면 나중에라도 이렇게 써먹을 데가 있구나 싶은 지점. 사시마(猿島) 지역은 이바라키현 고가시, 반도시, 조소시와 야치요정, 사카이정으로 이루어진 차 산지로, 도네강 유역의 비옥한 대지와 한난차가 큰 기후 덕에 농후한 맛과 향의 차가 재배된다. 에도 시대부터 명차로 알려져 있었고, 요코하마 개항 후 일본에서 처음으로 미국에 수출된 차로도 유명하다. 라고 한다. 뜬금없는 짤막 상식. 20g 봉입만 해도 2400엔으로 수량 한정에 통신 판매 한정이다. 애초에 많이 팔 수량도 안 될 것 같은데 가격 때문인지 그래도 세 달 정도는 떠 있다가 품절된 것으로 기억한다. 상미기한은 제조일로부터 2년.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나름 스페셜하게 특집 페이지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일본차 살리기 프로젝트처럼 암튼 이런 식으로 힘을 실어주는 페이지들이 언젠가부터 종종 보인다. 일본차 품종으로는 드문 달콤한 향이 있어 그 향에 매료된 요시다 다원의 요시다 마사히로 씨가 10년의 세월을 거쳐 부활시킨 이즈미 품종이라고 하고 모품종인 베니호마레가 홍차 품종이기에 이즈미도 홍차에 어울리지 않을까 연구를 거듭해, 이즈미의 매력을 십분 발휘한 향기로운 홍차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그런 거 보면 아쌈종이 기원인 베니후우키와 비슷한 것도 같고.
야마유리오 오모와세루 하나야카나 코-키토 토-메이칸노 아루 슨다 아지와이. 겐다이 니혼오 다이효-스루 와코-차노 메-엔니 요루 하루즈미 코-차.
산백합을 떠올리게 하는 화사한 향기와 투명감 있는 맑고 깨끗한 맛.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와코차 명원이 만든 봄 수확 홍차.
산백합 같은 화사한 향기라니 이거 참 기대감이 크다. 일본어 특유의 화려한 수사법일지 아니면 정말 객관적으로 엄청난 향일지 궁금해진다. 일단 비싼 차니까 기대를 안 하는 게 이상하지.
봉투를 열어 건엽의 향을 맡아보면 그냥 묵은 나물의 느낌으로 큰 기대감은 들지 않는다. 어찌 보면 에잉 이게 뭐야 싶을 정도. 진짜 무청 말린 듯한 나물의 향기이지 낙엽스러운 향은 절대 아니다. 뭐라도 스페셜한 거 없나 싶어서 건엽을 덜어내어 본다. 겉모습도 그냥 일반적인 동아시아의 홍차 느낌. 꼬여 있는 갈색빛 찻잎들이 특별히 화려하거나 하지는 않다. 이러면 나가린데 이거.
6g의 찻잎을 덜어 300ml 100도의 물에 2분 우려낸다. 라벨에 나와 있는 레시피는 서양식 홍차 우리는 방식으로 나와 있지만 개완으로 다포법 레시피도 어딘가에서 소개가 되어 있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좀 더 작은 사이즈의 개완으로 천천히 여러 번 뽑아서 마시는 것도 좋다. 우선은 서양식으로 한번에 뽑는 방식으로 정리한다. 다포법으로 마시게 되더라도 1~3, 4번째 탕을 모두 섞어서 한번에 마신다고 생각하면서 서양식으로 마셨을 때를 떠올리면 합쳐서를 생각해 보는 것도 가능하고 이게 쌓이면 반대로도 가능하게 된다. 동양차가 특히 이런 부분들이 재밌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 차를 종합적으로 생각했을 때 가장 비슷한 맛을 찾으라고 한다면 역시 닐기리 윈터프로스트. 다만 이 차에서는 그 꽃향기가 폭발적으로 잔 밖으로 뿜어져 나온다. 적당히 도는 단맛은 회감 쪽이라기보단 좀 더 직관적으로 단맛이 바로 느껴지는 편이고 폭발적인 향기는 가향차로는 느낄 수 없는 천연의 향이 나서 즐겁다. 처음 개봉해서 마셨을 땐 다즐링 퍼스트 플러시 느낌에 맛과 향은 청향 우롱 같았는데, 봉투 개봉하고 며칠 지날수록 윈터프로스트 쪽으로 변해가는 듯. 기억났던 차들 모두 수색으로 따지자면 노란빛으로 공통점이 있겠다. 기존 차들과 비교하자면 윈터프로스트와 비교해도 바디감이 조금 빠진다 뿐이지 단맛이나 향과 풍미는 이쪽이 훨씬 깔끔하지 않나 싶을 정도이다. 건엽에서의 아쉬울 것 같다는 낮은 기대감에 비해 우리고 나서 이렇게 좋은 향이 터져 나오는 것이 마치 황차 같은 움직임이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이 꽃향기가 약간의 쿰쿰한 향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긴 하다. 제다법이 궁금해진다. 26년 퀄리티는 물론이고 여름차도 당장 구매하게 만드는 훌륭한 맛과 향이었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라면 역시 내포성. 5g 다포법으로 100ml씩 네 번이면 끝나는 듯하다. 아쉬운 대로 개완에서 여러 번 마시는 게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많이 우려서 먹는 느낌이다. 내포성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지금까지의 와코차 중에선 단연 으뜸이었던 향과 풍미였다. 그냥 많이 사서 쟁이는 수밖에 없는 걸까. 요시다 선생님 해내셨네요. 잊힌 품종을 10년에 걸쳐 부활시킨 장인의 손에서 탄생한 와코차. 이것이야말로 일본의 다즐링이라고 해야 할지. 산백합 향기가 터지는 와코차, 새롭게 태어난 로스트 테크놀로지. 사시마 이즈미,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