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해와 달의 호수에서 다시 만나. 안녕, 홍옥

루피시아 3253. 일월담 홍옥홍차 나츠즈미

by 미듐레어

벌써 재작년이 되었는데 24년에 뜬금없이 엄청난 하입을 받았던 차가 있었으니 바로 일월담 홍옥. 이 차는 홍차가 주력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 차 때문에 홍차로 갈아타게 생겼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홍차가 주력인 사람들에게도 대만에서 이런 홍차가 난다고? 하면서 난리가 났었다. 갑자기 왜 그때 그렇게까지 화제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너무 대박인 걸 찾았어, 하고 운을 떼면 대부분이 홍옥 이야기였다. 당연하지만 홍옥이 최근에 갑자기 생긴 품종은 아니고 예로부터 아쌈종을 들여와 쭉 품종 개량부터 홍차 생산을 지속해왔던 일월담의 대표 상품이다. 이래저래 구매할 시기를 놓치다가 루피시아에 보이길래 냅다 구매한 일월담 홍옥. 20g 봉입 2400엔으로 상미기한은 제조로부터 2년. 누구 코에 붙이나 싶어서 2봉지 구입.

귀하신 소량 대봉투

우선 일월담의 영문명인 선문레이크가 눈에 띈다. 짱세 보이는 이름. 선문레이크의 루비 썸머. 아니 이름이 진짜.

타이완 사이다이노 미즈우미・니치게츠탄노 호토리데 츠쿠라레루 타이완 코-차。세-료-칸노 아루 사와야카나 카오리와 리후렛슈 타이무니모。
대만 최대의 호수, 일월담 호숫가에서 만들어지는 대만 홍차. 청량감 있는 상쾌한 향은 리프레시 타임에도.

일월담의 가장 대표적인 품종인 홍옥인데 뭐 더 크게 설명은 필요가 없겠지.

홀리프

봉투를 열어 향을 맡아보면 마치 실론처럼 시원하고 청량감 있는 향이 난다. 홍옥의 품종향 자체가 숨겨지지 않는 강렬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걸 생각하면 또 나야, 홍옥. 뭐 이런 자기주장보단 맞습니다, 제가 홍옥입니다. 하는 정도의 느낌이다. 건엽을 덜어내어 보면 큼직한 대엽종의 잎이 홀리프로 도로로 말려 있다. 길다란 미역 같아서 봉투에서 서로 엉켜 잘 나오지 않는데 이제 또 그런 게 차 마시는 사람들에겐 기대되는 포인트 아닐까. 확실히 여름차라 그런지 큼직큼직 시원스럽다. 홀리프를 보면 일단 기대가 되는 게 인지상정이지.

담벼락에 고양이

귀한 몸이시다 보니 개완으로 조심조심 정성 들여 마셔본다. 애초에 라벨에 나와 있는 레시피 자체가 개완 다포법에 가깝다. 5g의 찻잎을 잘 데워진 개완에 넣고 향을 맡아본다. 피어나는 품종향. 한 김 식힌 물을 100ml 부어주고 40초 이상 우려서 따라낸다. 의외로 진득한 느낌 없이 시원하게 미끄러져 나가는 향이 느껴진다. 보통은 갱엿 같은 진득함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한 모금 마셔보면 일월담 홍옥의 가장 큰 특징인 파스맛이 톡 쏘지 않을 정도로 중심을 잡고 있고 그 뒤로 시원함과 함께 오는 옅은 꽃향과 투명한 단맛이 일품이다. 육계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계수나무, 그러니까 계피향 같은 게 품종향에 포함되는 게 특징이지만 시나몬이 그렇게 강한 경우는 잘 느껴보지 못했고 거기에서 오는 은은한 단맛이 있었다. 마무리는 홍차 특유의 고구마 껍질스러운 구수한 뉘앙스로 마무리. 그 멘솔향의 강렬함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부분은 강하지 않았어서 어찌 보면 아니 얘 기 왜 이렇게 점잖 빼고 있어. 싶은 느낌. 워낙 인상이 뚜렷하고 그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차이다 보니 아무래도 비교 시음을 적는 게 좋겠는데 문제는 다 같은 일월담 홍옥이고 유통만 조금 다를 뿐이라서 크게 차이는 없다는 점. 루피시아가 아닌 일월담 홍옥을 여기저기서 좀좀따리 마셔봤는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차이를 찾지 못하겠다. 현장에서 비교 시음을 하지 않고서야, 아니 그런다고 알 수 있긴 할까. 조만간 또 일월담 홍옥을 마실 기회가 올 텐데 그때는 또 이 홍옥을 까먹을 것 같기도 하다.

투차량이 하도 많아서 개완에서 잘 안 펴질 때가 많다

강렬한 개성으로 대만의 대표 홍차가 되어가는 듯한 홍옥. 시원한 향과 단맛이 특징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호불호를 많이 타는 품종이기도 하다. 루피시아에서 판매한 이번 배치는 홍옥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큰 거부감 없이 비교적 적은 호불호의 범위에서 홍옥을 접할 수 있는 차품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루피시아가 차 잘 가져오는구나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든 일월담 홍옥홍차 나츠즈미,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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