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삭으로 쌓아올린 여러 겹의 향

루피시아 3404. 고카세 하사쿠노하나 홍차

by 미듐레어

루피시아에서 가을 홍차로 출시하는 고카세 홍차는 고슌이 대표적이긴 하지만 하사쿠노하나도 꾸준히 출시가 되고 있다. 보통 12월을 전후해서 판매를 시작하는데 재작년엔 구매 리스트가 길어서 넘겼던 하사쿠를 올해는 어찌저찌 구매했다. 미야자키현 고카세의 명장 코로기 요이치 씨가 만드는 와홍차로, 팔삭꽃으로 착향한 와코차이다. 2021년 프랑스 일본차 콩쿠르 "Japanese Tea Selection Paris"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제법으로 만들어졌다고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는데, 대회 수상 제법이라고 하니 맛있겠지. 솔직히 일본차 콩쿨을 왜 프랑스에서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렇긴 한데 맛있을 것 같은 것도 사실. 30g 봉입 1,200엔으로 상미기한은 제조일로부터 1년. 이제는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두 봉씩 구매하는 큰손이 되었다.

팔삭꽃 홍차

이름부터가 팔삭꽃 홍차니까 뭔가 오렌지 블라썸같이 감귤류 꽃의 향을 입힌 홍차이겠거니 싶은데 착향이라는게 인공적인 가향과는 달라서 어느 정도 향이 날지 모르겠다.

하사쿠노하나데 챠쿠코-시타 미야자키켄 고카세노 와코-차. 짓쿠리토 지칸오 카케테 미즈미즈시이 카오리오 토지코메마시타.
팔삭꽃으로 착향한 미야자키현 고카세의 와홍차. 시간을 들여 천천히, 싱그러운 향을 가득 담아냈습니다.

고카세라고는 하지만 포도포도한 고슌과는 다른 품종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본다. 고슌에 팔삭꽃이라니 그건 좀 상상이 안된다.

그냥 홍차인디

봉투를 열어보면 깊이감 있게 익은 홍차향이 짙게 올라온다. 푹 익은 실론 같은 느낌이 강하다. 거기에 약간의 꼬릿한 향이 조금 얹어진 정도. 팔삭꽃으로 착향했다고 하기엔 밝은 느낌의 꽃향이 그다지 느껴지진 않는다. 오히려 좀 쿰쿰한 홍차향에 버무려져서 마른 장미스러운 느낌. 이게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이렇게 마른 건초향 살짝에 우려내면 장미향이 날 것 같은 산화 많이 된 홍차의 향을 맡으면 햇녹차의 그것과는 또 다른 봄의 기분이 잔뜩 느껴진다. 햇녹차는 벌써부터 위에 뭘 걸치기가 부담스럽고 반팔을 입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면 이쪽이야말로 가벼운 자켓이나 가디건 하나 두르고 있는 아직은 여름이 다가오지 않은 봄의 느낌. 건엽을 덜어내 보면 큼직한 찻잎들이 적당한 OP 정도 느낌으로 들어있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홍차홍차한 향이 아찔하다.

개완에도 우려보았는데 큰 차이 없는 맛

늘 우리던대로 6g의 찻잎에 끓는 물 300ml를 부어 2분 우려내었다. 우리는 동안, 그리고 따라낼 때의 향이 너무도 익숙한 향이 난다. 그것은 무애산방등에서 느껴지는 구들장 느낌의 발효취. 와홍차에서 구들장이 느껴진다. 이게 덖음차 위주의 산지에서 나는 홍차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뜻밖의 익숙한 향이 너무 웃기다. 한 모금 마셔보니 한국의 홍차보다는 조금 더 뭉근하고 들큰한 느낌이긴 하다.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느낌도 비슷하다고 하겠는데 서양홍차처럼 바디감이 강하거나 물질감이 강한 편이 아니기 때문에 다식을 곁들이기엔 조금은 아쉬운 느낌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들이부어서는 속이 좀 긁히겠다 싶은 정도의 느낌도 비슷하다. 구들장의 꾸리꾸리함이라고 생각했던 향도 멀찍이서 맡아보니 뭔가 좀 묵은 꽃내음 같기도 하고 막상 마셔보면 또 그 향이 칼칼한 짜이느낌 비슷하게도 나는 것 같고 시나몬스럽기도 한 여러겹의 미묘한 향들이 겹쳐있어서 하나씩 그 향을 벗겨보는 재미도 있다. 오히려 재탕을 했을 때 그런 미묘한 향들을 즐기기엔 더 좋았지만 아무래도 맛이 빠져버린 차는 내 취향은 아니어서 좀 섭한 느낌. 그러고보면 팔삭꽃이 어떤향인지 내가 원물의 향도 모르고 있긴 하구나.. 흘러가는 이 많은 향들 중에 팔삭꽃이 지나가는지도 모르겠다.

흔한엽저

앞서서도 이야기했지만 오히려 이런 차를 마실 때가 봄비가 오고 꽃구경을 가고 바람부는 봄날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한봉지를 남겨두었다가 천천히 꺼내어 마셨다. 거의 다 마셔가는 오늘, 마침 쌀쌀하게 비가 내리길래 시음기를 재빨리 마무리. 한국홍차와 비슷한 특성들을 많이 공유해서 비교를 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그냥 맛있는 한국홍차라고 하기에는 또 가성비가 이쪽이 좋다. 한국에 살고 있지만 한국홍차가 가성비가 안 좋다니. 조금은 슬프지만 한국도 이쪽으론 최근 연구개발이 많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계속해서 기대를 해봐야지. 내가 꽃향기에 그리 민감하진 못한 건지 착향된 꽃을 찾아내진 못했지만 충분히 재미있는 향들의 향연이었던 하사쿠노하나,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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