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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듐레어 Nov 06. 2023

격식 있고 풍성한, 티 트레이를 준비하도록 하여라

루피시아 5643. 부케 로얄 로즈

루피시아의 지유가오카 본점 한정상품중 부케 로얄 시리즈를 마셔보고 있다. 이름부터 일러스트까지 아주 로오오즈 하다. 부케 로얄 자스민이 녹차 베이스라면 로즈가 홍차 베이스로 나온 형제 상품이다. 이름에서부터 보통 루피시아의 초대박 히트작 중 하나인 로제로얄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으실 테고 나도 종종 이 둘이 헷갈리는데 시음기를 쓰다 보니 이제야 좀 머리에 정리가 된다. 로제로얄엔 로즈가 없어요 여러분. 부케 로얄 로즈는 일러스트에서 로즈를 땋 보여주니 혼동할 일이 없다. 잘 샀다. 그동안 부동산 사정과 각종 자금사정으로 캔입을 사는걸 참 주저했었는데 한 번 모으기 시작하니 주체가 안된다. 캔입 50g, 1150엔이고 상미기한은 2년으로 넉넉.

사진이 여러장이지만 써있는 정보는 같다구.
로오즈 또 카시스 노 유우비나 카오리 가 히로가루 하나야카 나 코우차. 수트로베리 노 아마이 요인 모 인쇼우테끼.
장미와 카시스의 우아한 향기가 번지는 화려한 홍차. 딸기의 달콤한 여운도 인상적입니다.

설명을 얼핏 봤을 땐 그야말로 로제로얄에 로즈를 끼얹은 느낌이다. 아마도 블랙커런트와 딸기를 가향으로 입히고 장미향 약간과 장미꽃잎을 블랜딩 한 것 같다. 전통적인 가향홍차 라인에 드는 것이 2.5~3g 찻잎과 2.5~3분 침출시간에서 한눈에 보인다. 이번 초가을 루피시아 행낭에서 이런 전통적인 홍차 디렉션을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차의 원산지가 인도, 스리랑카로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아쌈과 실론 베이스의 로즈티겠지. 아주 클래식한 블랜딩이다.

롤링을 빡세게 말아놨구나 싶었는데 엽저를 보니 줄기가 좀 많은 편

개봉과 동시에 장미가향보다 베리류의 달큰한 가향이 먼저 올라온다. 찐-득. 로제로얄에서도 느낄 수 있는 베리향이다. 그때 그 풍선껌 향. 정말 묘하게도 장미향이랑 섞이면서 로제와인 말라붙은, 조려진 찝찌름한 향도 난다. 에? 어째 로제로얄보다 더 로제향인데요? 건엽이 큼직큼직하고 로즈리프도 큼직하다. 우릴 때 지켜볼 맛이 나겠다. 베이스 티의 향은 가향이 워낙 짙어 잘 나지 않는다. 사진과는 다르게 의외로 클래식함이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콱 쏘는 로즈향이 아님에도 은은하게 방을 가득 채우는 풍부한 가향

5g, 300ml, 100도의 물에서 2.5분을 진득하게 우려냈다. 비로소 장미의 진햔 향이 퍼지기 시작한다. 한 잔 따라내고 수색을 찍는 동안 장미향은 잔을 넘어 식탁 가득 퍼져나간다. 이래야 로즈티라 할 수 있지. 흐뭇하게 첫 모금을 마셔보니 앗, 부케 로얄 시리즈는 달콤함이 기본 테마인가, 화이트 진판델보다도 달달한 찻물이 나름 칼칼하게 넘어간다. 이런 칼칼함과 달달함이 어딘가 탄산이 뽀글뽀글 올라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로제와인에 장미를 절여놓은 느낌이다.

홈페이지 제품 설명에는 밀크티로도 좋다고 나와있으나 로즈가향 밀크티는 취향이 아니어서 아이스티를 만들어본다. 수렴성에 비해 빵빵한 베이스 풍미가 급랭에서도 잘 드러나고 화사면서도 달달한 베리가향이 튀지 않지만 무게감 있는 장미와 함께 산뜻하게 피어난다. 재탕까지도 거뜬해서 의외로 급랭에 잘 어울렸다. 냉침은 어딘가 이도저도 아닌 약간 부족한 모습이어서 아쉬웠다.

그리 맛있어 보이는 엽저가 아닌데 실제론 좋았다

장미와 홍차와 샴페인을 생각해 본다. 클래식한 애프터눈 티세트가 떠오르는 구성이다. 격식 있고 풍성한 테이블이 떠오른다. 루피시아 본점의 티테이블은 어떤 이미지일까. 물론 여러 가지 느낌의 구성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제대로 한 상 차려 나오는 세트의 구성이라면 분명 부케 로얄 로즈가 아주 잘 어울릴 것이다. 장미가향의 볼륨감과 샴페인을 한 모금 하는 것 같은 상큼 달달함, 그리고 탄탄한 베이스티까지 그 모든 것이 꽉꽉 들어찬 한잔이었기 때문에 헤비 한 샌드위치부터 스콘이나 간단한 쿠키나 초콜렛까지 모든 티 푸드를 다 아우를 수 있을 것 같은 맛이었다. 티 트레이를 성처럼 쌓아 올린 뒤 중세 드레스를 차려입고 서너 시간 티타임을 해야 할 것 같은, 그 어떤 위엄이 느껴지는 차였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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