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시아 5618. 트릭 오어 티!
예고했던 늦가을 홍차홍차시리즈를 이제 시작해 본다. 입동이므로 밀린 시음기를 서두르지 않으면 계절과 너무 어울리지 않는 글이 되고 말 것이다. 오늘의 차는 바로바로 또피시아의 할로윈 킹정차인 트릭 오어 티!이다. 할로윈 시즌에만 특별 판매 하는 것으로 대략 10월 초에 등장하는 것 같은데 한 번도 제때 들어가서 주문을 해본 적이 없다 보니 정확한 발매 시점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수량 한정으로 10월 말까지는 어째저째 수량이 늘 남아있는 모양. 수량이 구하기 어려운 건 아닌데 기간을 맞추기가 너무 어려워서 실제 구매하는 건 이번이 처음. 배대지 주문을 하니까 이런 장점은 있구나. 50g 봉입에 900엔. 상미기한은 넉넉하게 2년을 드립니다.
할로윈에는 여러 가지 코스튬을 하기도 하고 뭐니 뭐니 해도 애들이 집집마다 돌면서 "Trick or treat"을 하는데 treat은 과자나 사탕 같은 간식을 의미하고 trick은 장난 내지는 골탕 먹이는 걸 의미해서 유령들이 돌아다니면서 사탕 안 주면 골탕 먹인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식으로는 "사탕 주면 안 잡아먹지" 뭐 이런 느낌의 문구인데 이걸 살짝 틀어서 Trick or tea!로 이름을 지었네. 차를 주지 않으면 매우 곤란해질 것입니다. 예예.
아마쿠 코오바시이 쿠리 또 캬라메루 노 야키가시 오 이메에지 시따, 하로우인 겐테이 노 코우차. 미루쿠 티 니 모.
달콤하고 고소한 밤과 캬라멜 쿠키를 이미지 한 할로윈 한정 홍차. 밀크티에도.
밤과 캬라멜 들어간 쿠키를 이미지 했다고 하는데 이맘때면 슬슬 집에서 쿠키반죽 대충 만들어서 달달한 쿠키를 구워 먹기도 하는 그런 시즌이라 trick or treating때 직접 만든 쿠키를 주는 겁나 친절한 할머니 할아버지네 티타임이 될 것만 같다. 보통은 그냥 코스트코에서 큰 봉지로 소형 초콜렛이나 사탕 믹스백 사다가 막 뿌리는데 말이다. 밤과 캬라멜 들어간 수제쿠키 줬으면 애들 쿠키 주려고 아주 벼르신 거임. 동네 아이들 엄청 사랑하는 집. 아무튼 달달이 쿠키에 밀크티가 안 어울리는 것도 쉽지 않겠지. 밀크티로도 추천이다.
개봉하자마자 아닌 게 아니라 쿠키향이 짙게 확 올라온다. 캬라멜 가향에 오레오 쿠키 같은 가향도 한 거 같고 약간 너티한 향도 많이 들어가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빨간 핑크페퍼인데 루피시아의 단골 블랜딩 재료로 스파이시한 느낌을 주기 위한 후추 같은 존재랄까. 토핑의 색감을 화려하게 만드는 역할도 해주고 있다. 노오란 밤조각 같은 아몬드 조각들이 핑크페퍼와 함께 알록달록 건엽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홍차의 원산지는 케냐와 아쌈으로 케냐 브로큰에 아쌈 CTC가 섞여있는데 아쌈이 좀 더 많은 거 같기도 하고 비슷한 비율인가 싶기도 하고. 색감 자체가 벌써 가을가을 하다.
5g, 300ml, 100도의 물에서 2분 우려내었다. 핑크페퍼와 아몬드 조각, CTC가 정신없이 점핑을 한다. 빠아알갛게 물들어가는 티팟. 할로윈 마녀가 뭔가를 끓이는 분위기라서 사진을 참을 수 없었다. 참고로 밀크티용으로 농도를 짙게 우려내면 수색이 더욱 붉어져서 따라낼 때 레드와인처럼 붉은빛이 나는 느낌이다. 으흐흐흐 할로위이이인~~~
수색은 좀 짙은 편으로 씨티씨 베이스라 펑펑 잘 우러나는 듯하다. 캬라멜 가향의 그 어떤 압도적인 달달함이 방을 가득 채워준다. 얼른 마셔봐요 얼른얼른 얼릉얼릉. 한 모금 마셔보면 어? 의외로 너트의 고소함이 강하다. 아 물론 캬라멜 달달함이 가장 베이스이긴 하지만 고소한 너트의 향과 함께 베이스 홍차도 사악 느껴진다. 이것은 뭐랄까… 밀크티를 참을 수 없는 맛? 토피넛 라떼에서 우유 설탕 뺀 맛이랄까. 그러다 보니 밀크티를 어서 만들어야겠는데 우유가 없으니 일단 주문하고 하루를 기다려야겠다.
나의 밀크티 취향은 냄비에 넣고 끓이는 로얄밀크티이지만 아직 적당한 밀크팬을 꺼내놓지 않았고 찻잎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적당히 중탕한 우유를 부어주었다. 11g, 300ml, 100도의 물에서 3분. 아까 이야기한 시뻘건 찻물이 콰롸콸콸콸. 따뜻한 우유를 스윽 부어준다. 300ml 찻물에 약 120ml 우유 부어주는 편. 이 정도만 되어도 좀 차가 연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이때 나만의 팁으로 아주아주아주 미량의 소금을 살짝 뿌려준다. 그럼 아주 약간은 로얄밀크티 같을지도? 호로롭 마셔보면 역시나 이것은 밀크티를 위해 만들어진 블랜딩이다. 토피넛라떼 뭐 이런 게 따로 필요 없는 완벽한 시즌티. 캬라멜과 너트의 조합은 밀크티 필승템이라구요.
회사에서 최고의 복지가 콸콸 쏟아져 나오는 사시사철 가동되는 아이스메이커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두 번째 복지는 쫀쫀하게 스팀밀크 쫙쫙 뽑아주는 커피머신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진하게 우린 트릭 오어 티에 스팀밀크를 부아아아아아앙 부어주면 밀크티 완성이 뚝딱이다. 중탕도 필요 없는 따뜻한 밀크폼 최고야.
재탕으로 동료들에게 몇 번 밀크티를 해주었더니 빵을 사 와서 공물로 바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빵을 받으시고 밀크티를 내려주세요. 세상에. 심지어 이 블랜딩을 내가 만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까지 속출. 그... 회사에서 인기를 급조하고 싶으신 분들은 내년 이 시즌을 잘 노려서 트릭 오어 티를 쟁여놓으세요. 잠깐이나마 스타가 될 수 있습니다. 할로윈 스타가 된 체험기는 이렇게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