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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듐레어 Dec 07. 2023

홍차로 즐기는 감귤 초콜릿이 바로 이런 것

루피시아 5637. 유자 쇼콜라

유자시즌에 또 빼먹을 수 없는 유자 쇼콜라를 마셔보도록 하자. 유자 쇼콜라는 10월~3월이라는 계절한정이 유자시즌이기도 하지만 쇼콜라의 계절인 겨울에도 딱 겹쳐서 빼놓고 가기엔 너무 아쉽다. 너무 초코초코 달달이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잡아줄 친구이다. 사실은 전에 마신 유자보다 이쪽에 좀 더 기대를 갖고 있었다. 50g 봉입에 700엔으로 상미기한은 1년이다.

유자의 국제표준 표기는 유주이고 e가 빠진 초콜릿은 불어 쇼콜라이다.

유주 쇼콜라라고 써있으나 유자를 유자라 하지 못하는 게 너무 괴로워서 얘는 그냥 유자 쇼콜라예요.

카오리다카이 유주 니 쇼코레또 노 아마이 카오리 오 카사네타 코차. 유주 노 카지츠 오 아시라따 아키후유 겐테이 노 아지와이 데스.
향긋한 유자에 초콜릿의 달콤한 향기를 더한 홍차. 유자 과실로 장식한 가을 겨울 한정 맛입니다.

깔끔한 설명에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 특이사항이라면 우림시간이 2~2.5분으로 살짝 짧다는 점. 유자가 들어가면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햇빛을 제대로 받아서 그런가 과자처럼 다 씹어먹고 싶은 건엽

개봉직후의 향이 쌉쌀한 밀크초코의 향과 함께 시트러스의 향이 돋아나는데 둘 다 꽤나 인공적인 향이다. 그리고 곧장 연상되는 무엇이 있는데 바로바로 제주도 다녀오면 누군가는 꼭 사 올법한 감귤초콜릿 내지는 한라봉초콜릿. 정말 더도 덜도 아니고 딱 그 향이 난다. 건엽을 보면 브로큰 아쌈에 씨티씨가 섞여있고 카카오닙스와 약간 젤리처럼 설탕을 입힌듯한 유자필 토핑이 올라가 있다. 유자가 토핑도 가향도 많이 들어간 건 아니고 딱 제주도 감귤 초콜릿 느낌으로 유자 초콜릿이구나, 할 정도로만 들어가 있다. 기본적으로는 초코가향으로 보는 게 맞다.

제철 생선을 피카츄로 잡아올림

습관적으로 우린 300ml, 6g, 100도의 물로 2.5분. 사실 2분으로 우려낼 계획이었는데 깜빡했다. 수색은 좀 붉은 편으로 일반적인 홍차보다 좀 더 자색빛을 띤다. 초코가향으로서의 정체성이 꽤 또렷한 편으로 초코초코한 향이 따라낼 때부터 확 피어난다. 흔히 비교할만한 다른 차가 뭐가 있을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니나스 햅번 정도 기억이 나는데 이제 티 베이스나 시트러스보단 초코초코가향의 정체성이 좀 더 또렷한. 그리고 아무래도 씨티씨 함량을 보았을 때 2.5분이면 꽤 길게 추출한 편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수렴성이 상당하겠군, 생각하며 한 입 마셔보았다. 떫고, 쓰고, 달달한 향이 지나치게 강조된 사약을 생각하면서. 그런데 의외로 이 차 순하다. 이후에도 여러 번 시도해 보았는데 오히려 2~3분 사이에 별 다른 일이 일어나질 않는다. 2분이나 3분이나 좀 비슷하게 우러나서 의외의 안정성을 보여주었다. 물론 시트러스나 티베이스의 맛과 향은 좀 아쉬운 편으로 약하다기보다는 밸런스가 좀 치우쳐져 있다는 느낌이다. 계절한정이기 때문에 쇼콜라에서 승부를 보는 것보다는 유자가 강조되길 바랐는데.

루돌프 빨강코에 로얄밀크티

밀크티로도 추천한다는 마크가 공홈에 붙어있길래 주섬주섬 로얄 밀크티를 준비해 보았다. 팬에 살짝 건엽을 볶다가 소금 살짝 톡, 물 찔끔, 알룰로즈 찔끔해서 수십 초간 졸여내고 우유를 부어 슬며시 데운 후에 마무리했다. 맛은 당연히 쇼콜라에 밀크티니까 아주 맛이 좋다. 그런데 어디 간 거니 유자향? 밀크티로 우려내자 유자향이 도망가버렸다. 애초에 존재감이 강한 편은 아니었어서 어딘가에 묻혀버리는 것 같다. 좀 더 섬세하게 유자 쇼콜라를 즐기기 위해선 밀크티보단 스트레이트가 나을 것 같다. 밀크티는 다른 초코가향에 양보해도 될 테니까.

불리고 나니 더 젤리 같아진 유자필

엽저를 정리하는데 생각보다 씨티씨의 비중이 그리 크지는 않다. 아마도 추출시간의 레인지가 넓어진 원인은 브로큰, 씨티씨의 비율인 것 같은데. 아무튼 시트러스 초콜릿에서 시트러스의 존재감이 이보다 더 뚜렷했던 니나스의 햅번도 티베이스가 의외로 순했던 기억이다. 수렴성과는 다른 실론 특유의 쏘는 맛은 좀 있었던 것 같지만. 그런 생각의 끝에 그것과 비슷하게 또 비교해 볼 만한 루피시아의 5636번, 그러니까 유자 쇼콜라의 형쯤 되는 오랑쥬 쇼콜라를 가져다 마셔볼까 생각이 들어 루피시아에 들어가 보았더니 이런! 오랑쥬 쇼콜라는 23년 11월 8일부로 폐번되었다고 한다. 가을차 살 때 살 걸!! 하필이면 이번에도 보부상님이 한국 오신 뒤에 알게 된 사실이라 매장 재고도 물어볼 기회가 없어졌다. 어쩌면 루피시아의 시트러스 초콜릿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결론에 닿은 것일 수도 있겠다. 진짜 맛있지만 어딘가 약간은 아쉬웠던 유자 쇼콜라.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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