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시아 5637. 유자 쇼콜라
유자시즌에 또 빼먹을 수 없는 유자 쇼콜라를 마셔보도록 하자. 유자 쇼콜라는 10월~3월이라는 계절한정이 유자시즌이기도 하지만 쇼콜라의 계절인 겨울에도 딱 겹쳐서 빼놓고 가기엔 너무 아쉽다. 너무 초코초코 달달이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잡아줄 친구이다. 사실은 전에 마신 유자보다 이쪽에 좀 더 기대를 갖고 있었다. 50g 봉입에 700엔으로 상미기한은 1년이다.
유주 쇼콜라라고 써있으나 유자를 유자라 하지 못하는 게 너무 괴로워서 얘는 그냥 유자 쇼콜라예요.
카오리다카이 유주 니 쇼코레또 노 아마이 카오리 오 카사네타 코차. 유주 노 카지츠 오 아시라따 아키후유 겐테이 노 아지와이 데스.
향긋한 유자에 초콜릿의 달콤한 향기를 더한 홍차. 유자 과실로 장식한 가을 겨울 한정 맛입니다.
깔끔한 설명에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 특이사항이라면 우림시간이 2~2.5분으로 살짝 짧다는 점. 유자가 들어가면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개봉직후의 향이 쌉쌀한 밀크초코의 향과 함께 시트러스의 향이 돋아나는데 둘 다 꽤나 인공적인 향이다. 그리고 곧장 연상되는 무엇이 있는데 바로바로 제주도 다녀오면 누군가는 꼭 사 올법한 감귤초콜릿 내지는 한라봉초콜릿. 정말 더도 덜도 아니고 딱 그 향이 난다. 건엽을 보면 브로큰 아쌈에 씨티씨가 섞여있고 카카오닙스와 약간 젤리처럼 설탕을 입힌듯한 유자필 토핑이 올라가 있다. 유자가 토핑도 가향도 많이 들어간 건 아니고 딱 제주도 감귤 초콜릿 느낌으로 유자 초콜릿이구나, 할 정도로만 들어가 있다. 기본적으로는 초코가향으로 보는 게 맞다.
습관적으로 우린 300ml, 6g, 100도의 물로 2.5분. 사실 2분으로 우려낼 계획이었는데 깜빡했다. 수색은 좀 붉은 편으로 일반적인 홍차보다 좀 더 자색빛을 띤다. 초코가향으로서의 정체성이 꽤 또렷한 편으로 초코초코한 향이 따라낼 때부터 확 피어난다. 흔히 비교할만한 다른 차가 뭐가 있을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니나스 햅번 정도 기억이 나는데 이제 티 베이스나 시트러스보단 초코초코가향의 정체성이 좀 더 또렷한. 그리고 아무래도 씨티씨 함량을 보았을 때 2.5분이면 꽤 길게 추출한 편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수렴성이 상당하겠군, 생각하며 한 입 마셔보았다. 떫고, 쓰고, 달달한 향이 지나치게 강조된 사약을 생각하면서. 그런데 의외로 이 차 순하다. 이후에도 여러 번 시도해 보았는데 오히려 2~3분 사이에 별 다른 일이 일어나질 않는다. 2분이나 3분이나 좀 비슷하게 우러나서 의외의 안정성을 보여주었다. 물론 시트러스나 티베이스의 맛과 향은 좀 아쉬운 편으로 약하다기보다는 밸런스가 좀 치우쳐져 있다는 느낌이다. 계절한정이기 때문에 쇼콜라에서 승부를 보는 것보다는 유자가 강조되길 바랐는데.
밀크티로도 추천한다는 마크가 공홈에 붙어있길래 주섬주섬 로얄 밀크티를 준비해 보았다. 팬에 살짝 건엽을 볶다가 소금 살짝 톡, 물 찔끔, 알룰로즈 찔끔해서 수십 초간 졸여내고 우유를 부어 슬며시 데운 후에 마무리했다. 맛은 당연히 쇼콜라에 밀크티니까 아주 맛이 좋다. 그런데 어디 간 거니 유자향? 밀크티로 우려내자 유자향이 도망가버렸다. 애초에 존재감이 강한 편은 아니었어서 어딘가에 묻혀버리는 것 같다. 좀 더 섬세하게 유자 쇼콜라를 즐기기 위해선 밀크티보단 스트레이트가 나을 것 같다. 밀크티는 다른 초코가향에 양보해도 될 테니까.
엽저를 정리하는데 생각보다 씨티씨의 비중이 그리 크지는 않다. 아마도 추출시간의 레인지가 넓어진 원인은 브로큰, 씨티씨의 비율인 것 같은데. 아무튼 시트러스 초콜릿에서 시트러스의 존재감이 이보다 더 뚜렷했던 니나스의 햅번도 티베이스가 의외로 순했던 기억이다. 수렴성과는 다른 실론 특유의 쏘는 맛은 좀 있었던 것 같지만. 그런 생각의 끝에 그것과 비슷하게 또 비교해 볼 만한 루피시아의 5636번, 그러니까 유자 쇼콜라의 형쯤 되는 오랑쥬 쇼콜라를 가져다 마셔볼까 생각이 들어 루피시아에 들어가 보았더니 이런! 오랑쥬 쇼콜라는 23년 11월 8일부로 폐번되었다고 한다. 가을차 살 때 살 걸!! 하필이면 이번에도 보부상님이 한국 오신 뒤에 알게 된 사실이라 매장 재고도 물어볼 기회가 없어졌다. 어쩌면 루피시아의 시트러스 초콜릿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결론에 닿은 것일 수도 있겠다. 진짜 맛있지만 어딘가 약간은 아쉬웠던 유자 쇼콜라.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