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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듐레어 Nov 27. 2023

이것도 맛있는데 장바구니에 자리가 없네

루피시아 8227. 유자

11월의 중순이 넘어가면서 급속도로 날씨가 추워지는 가운데 이제 슬슬 본격적인 겨울겨울 느낌의 차를 꺼내볼까 싶어서 행복하게 곳간을 뒤져보았다. 그렇다고 냉큼 달달구리 홍차를 먼저 꺼내기는 조금 아쉬운 느낌이 있어서 평정심을 발휘하여 차분하게 골라본 유자. 유자는 한자도 너무 유자처럼 생겨서 웃기다. 일본의 유자사랑은 어디까지일지 모르겠는데 유자의 오리지널이 어디인지를 떠나서 상품화 및 세계화에 성공한 건 전적으로 일본의 공이 크니까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암튼 제철 유자를 원재료로 블랜딩 한 녹차라인인데 당연히 한국의 유자차처럼 유자청을 물에 타먹는 그런 맛은 아닐 것이다. 시트러스 녹차라고 생각하면 될 듯. 50g 봉입 900엔으로 같은 양의 한정 일러스트캔입은 무려 1280엔이나 한다. 일러스트가 좀 못생겼기 때문에 걸렀다. 10월에서 1월 사이에만 나오는 계절 한정인데 상미기한은 6개월로 아주 짧다. 진정한 제철 유자. 시트러스 한 유자 가향이 빠르게 날아가는 모양.

유자의 일반적인 영문 표기는 Yuzu

찻잎 양을 찔끔 줄여서 사용한다는 점 주의. 여러 가지 해본 결과 찻잎을 살짝 줄이고 온도를 높이는 게 좋았는데 아마 그 점이 반영된 듯. 그러니까 제발 열탕 말고 온도 좀 정확히. 열탕 터져.

유즈 오 시포타 토키 노 신센 나 카오리 가 니혼차 노 아지와이 오 히키타테떼이마스.
유자를 썰었을 때의 신선한 향기가 일본차의 맛을 돋보이게 합니다.

일본녹차와 유자 블랜딩이라는 깔끔한 설명. 막 썰어낸 유자의 향기라니 엄청난 시트러스감이 기대된다. 시트러스로 육수맛을 끌어올린다니 약간 폰즈소스 느낌일까 싶기도 하고.

정말 센차처럼 찍혔다

나름 김가루처럼 고소한 향이 유자향과 꽤나 경쟁하면서 녹차의 존재감을 알린다. 기대 이상으로 녹차가 상품인 것 같다. 건엽은 별거 없이 평범한 센차에 유자필 조각이 깨알같이 들어있다. 숭덩숭덩 들어있을 줄 알았는데 무슨 일이래. 자잘한 유자필이라 사진에는 다 녹차 밑에 숨어버렸지만 함량이 사진보단 훨씬 많다. 찻잎에는 가향 때문인지 윤기가 자르르하다. 심플한 구성이다.

반신욕하고 녹차 한잔

2g, 150ml, 80도의 물로 1.5분 우렸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일단 반신욕을 하고 나와서 마셨을 때 정말 맛있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런 기분. 의외로 녹차향이 유자향을 제끼고 튀어나온다. 분명 순서는 유자향이 먼저이긴 한데 순간적으로 녹차향이 유자를 추월해서 녹차라는 정체성을 굉장히 또렷하게 주장한다. 맛에서는 그냥 평범하게 루피시아 가향녹차로 미끈거리는 느낌 없이 우마미가 깔끔하게 느껴진다. 다른 가향녹차에 비해 감칠맛이 준수한 편으로 그렇다고 뭐 특출 난 정도는 아니고. 수색 역시 아주 깔끔하다. 아주 스트레이트 하게 유자-녹차-핑- 하고 지나가는 직선적인 맛으로 표현이 좀 밋밋하긴 한데 그만큼 좀 단조롭다. 내포성도 나쁘진 않아서 세 번까진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는데 농도가 떨어지는 것조차도 굉장히 선형적이다. 밸런스를 동일하게 유지한 채 100%, 70%, 50% 이런 느낌.

잘게 다져놓은 유자필이 이제서야 좀 보인다.

평범한 일본 녹차에 제철 유자를 더한 가향녹차로 단점이 없는 깔끔한 블랜딩이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장점도 찾기 어려워서 마실 때마다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어떤 의미로 아주 좋았던 차. 아마도 취향의 차이일수도 있겠다. 센차라던지 시트러스가 취향이라면 루피시아의 유자가 유자가향 센차의 어떤 스탠다드 느낌으로 기다려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보통 이런 심사평이 나오면 우리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나오던데 적당히 뭐 그런 느낌. 연말은 장바구니가 터져나가기 때문에. 치열한 시즌 경쟁 속에 특장점이 없었던 유자였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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