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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듐레어 Nov 24. 2023

감사와 사랑을 담은 달콤하고 화려한 한 잔의 홍차

루피시아 5648. 메르시 밀 포와

11월의 끝 무렵은 미국에선 Thanks giving day로 인해 그야말로 명절의 분위기가 연출되곤 한다. 추석과는 결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각지에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다시 모이고 명절 음식을 식탁에 올리고 함께 패밀리 디너를 갖는 모습은 추석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 스타벅스의 장식이 꾸며지는 것만 봐도 10월엔 할로윈, 11월엔 땡스기빙, 12월엔 크리스마스 데코가 붙는다. 11, 12월간의 구분이 아주 명확하진 않은데 그렇다고 또 구분이 없지도 않은 모호한 연말 시즌의 분위기는 어찌 됐건 사람들이 만나고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따뜻한 메시지를 교환하는 그런 분위기로 모아진다. 생각해 보면 주변 지인들의 초대를 받고 교제가 풍성했던 건 12월보단 11월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12월은 어딘가 좀 로맨틱한 분위기와 파티 분위기랄까.


감사절의 분위기는 이렇게 연말 분위기의 커다란 한 축을 담당하는데 루피시아에서는 그래서인지 연말 특집에 항상 이 메르시 밀 포아를 함께 넣는 것 같다. 블랜딩 자체는 레이와 연호를 기념하여 발매된 것으로 감사절과는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만, 언젠가부터 꼭 감사절 시즌에 이 티를 함께한 동료들이나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늦가을 차를 마련하겠다고 이거 저거 담다가 메르시 밀 포아도 담아두었는데 이렇게 크리스마스 시즌 한정이 금방 나올 줄은 몰랐지. 정신 차려보니 일반 봉입 하나, 2023 한정일러 하나 이렇게 두 개가 생겨버렸다. 50g 봉입 780엔, 50g 한정일러 1160엔, 상미 2년이다.

메르시 밀 포아 2023 크리스마스 시즌 및 2023 상시품

일러스트 캔 안에는 별 모양의 카드가 들어있었고 은박 봉지에는 아무것도 붙어있지 않았다. 라벨 붙은 은박 봉지는 봉입으로 따로 산 것. 상시제품이라 설명이나 기타 등등은 동일하고 생산 배치가 다르긴 하다. 상시품이 408065R5인데 한정판은 410215R5라고 적혀있다. 올여름 머스켓을 마시면서 이거 내가 마셨던 게 아닌 거 같은데? 싶은 느낌을 받은 이후로 언젠가부터 봉지 하단의 배치넘버를 모으기 시작한 건 너무 오딱후 같으니까 비밀.

하쿠토 야 이치고 노 아마이 카지츠 노 카오리 가 하나야카 니 히로가리 마스. 이로토리도리 노 하나비라 가 우츠쿠시이 하나다바 오 이메지 시타 코차.
백도와 딸기의 달콤한 과일 향이 화려하게 퍼져 나옵니다. 다양한 꽃잎이 아름다운, 꽃다발을 이미지 한 홍차.

백도와 딸기 가향의 꽃다발처럼 꽃이 화려하게 들어간 홍차라고 하니 대충 상상이 된다. 꽃잎이 많이 들어갔어도 루피시아의 백도가향과 딸기가향이 진하게 녹아들면 플라워리한 향은 거의 없으리라. 사실 언젠가 시음을 해본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땐 꽃이 많이 들어있다는 생각을 전혀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도 남의 손으로 마셨겠지.

공홈에 나온 화려함은 내 수준에서 재현하지 못했다

개봉! 역시나 찐득하게 딸기쥬스 같은 향이 폴폴 솟아난다. 루피시아의 흔한 딸기 풍선껌 향이 가장 먼저 올라오고 그 뒤로 바닐라 비슷하게 또 다른 달달하고 은은한 향이 나는데 백도 가향이 딸기 가향을 확 밀어 올리면서 뒤쪽에서 베이스 역할을 하는 느낌으로 남는 것 같다. 백도가향이 가벼운 편이고 딸기가향이 묵직하게 풍선껌처럼 찐득해서 그렇게 된 건가보다. 건엽은 인도와 베트남 원산지로 늘 보던 그 베이스. 여기에 보여주기용이라고 생각되지만 장미꽃잎과 콘플라워, 히스플라워의 작은 꽃망울과 이삭 부분이 잘게 섞여있다. 딸기향이 아찔해서 꽃다발까지는 제가 잘 모르겠구요. 아무튼 화려함을 자랑한다. 투명한 팟에 점핑이 잘 된다면 장관을 연출하겠는데 뭐 막 그리 화려하게 춤을 추지는 않더라. 아무튼 시각적으로 만족!

심플한 찻자리

5g, 300ml, 100도의 물로 2.5분 우려 준다. 달달함이 짙은 진한 딸기향에 평범한 수색이다. 단순히 풍선껌 딸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고 자세히 뜯어보면 라즈베리가 떠오르는 느낌으로 약간의 산미가 느껴지는 달달함이 쥬스 수준으로 진하게 배어 나온다. 건엽에서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게 백도는 깔아주는 느낌으로 존재감이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여타 꽃 블랜딩은 그보다도 희미한 흔적으로 베이스티의 풍미를 돋궈주는 정도의 역할이다. 수렴성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편안한 베이스로 적당한 풍미가 진한 딸기가향을 지지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정도이다. 가향의 진함이 압도적이다 보니 티푸드는 스콘이나 비스켓 같은 양과자 쪽이 아무래도 잘 어울렸던 것 같다.

루피시아 딸기가향에 아이스 조합은 언제나 성공하는 공식이라 급랭으로 마셔보았는데 역시는 역시. 냉침도 훌륭하겠으나 충분히 부드러운 차라서 일부러 냉침까지 하지는 않았다. 아이스 메이커가 짱짱한 회사에선 오히려 냉침이 더 귀찮다.

왜였는지 모르겠는데 꼭 이 시즌에 메르시 밀 포아를 밀크티로 마시고 싶었다. 언젠가 밀크티 버전을 본 것 같은 기분과 기억나는 딸기가향의 조합이 얼마 전 포트넘 스트로베리로 마신 밀크티와 겹치면서 마셔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무려 12g, 300ml, 100도의 물 3분 좀 안되게 우려서 100ml쯤 서빙 후에 밀크폼을 올려 마셔보았다. 밀크폼 올릴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뜨거운 차에 밀크폼을 올리면 보온효과가 참 뛰어난 것 같다. 뜨거우니 혀 조심. 플라워리한 가향에 밀크티를 절대 시도하지 않는 편인데 메르시 밀 포아의 경우 밀크와 만나면 꽃 가향이 도드라지게 좀 튀어나오긴 한다. 로즈티에 우유를 넣어도 이상하지 않으신 분들만 추천드린다. 베리가향이 워낙 강하니 이상하거나 안 어울리는 그런 느낌은 아니다. 단지 내가 꽃밀크를 안 좋아해서 취향의 문제일 뿐. 재탕은 급랭으로 마셨는데 비로소 속이 후련해졌다.

화려했던 꽃은 지고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미국의 감사절이고 내일은 그 유명한 블랙프라이데이가 된다. 이번주에 사무실에서 이 차를 함께 마시며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 했으나 임원 인사 및 부서개편등의 이슈가 급작스레 떠오르면서 도무지 뭘 기념할 차분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 차를 나누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사람인 나의 보스는 이제 계시지 않는다. 어쩐지 서글픈 연말이 되었지만 이번주와 다음 주에는 계속해서 이 차를 사람들과 함께 마시려고 한다. 그게 내가 이 시즌에 줄 수 있는 위로일 테니까. 어쩐지 눈물 머금은 시음기로 갑자기 변질되었지만 이 글을 읽어준 여러분에게도. 메르시 밀 포아.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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