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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듐레어 Nov 23. 2023

우바 한잔에 스리랑카 고원의 모든 향기를 모아

루피시아 2645. 우바 하이랜즈 BOP Quality 2023

우바를 장바구니에 넣은 건 순전히 11000엔이었나 연간 상시 할인이 시작되는 조건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대략 11000엔 언저리 어디였는데 그 금액을 넘기면 향후 일 년간 1100엔쯤? 사면 5% 할인이 자동으로 붙는다. 어차피 배대지를 돌리려면 최소 십만 원은 넘겨줘야 타산이 맞기 때문에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저 금액을 넘겨주면 계속 혜택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여름 지나 제철을 맞은 우바가 슬슬 제조가 끝나 시즌 퀄리티 광고베너가 막 돌아가길래 하나 골라보았다.

아이슬라비 페코 사이에서 고민 많이 함

어떤 걸 살까 고민하다가 아무리 브로큰이어도 오렌지 페코가 낫지 않겠나 해서 고른 하이랜드. 솔직히 맛은 비슷할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가격은 보시다시피 980엔에 50g 봉입. 상미기한은 2년이지만 시즌 퀄리티를 오래 묵힐 이유는 없다.

다원차를 일본을 거쳐서 사고 있네

우바 하이랜드 다원은 이름 그대로 스리랑카 섬의 가장 높은 고도의 다원들 중 하나로 우바 생산 다원중에서는 가장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더 높은 다원들은 아마도 누와라엘리야를 생산하겠지. 루피시아에 상시 제품으로 4520번 우바 하이랜드가 똑같이 BOP로 있긴 한데 시즌 퀄리티에 비해 반값에 가까운 가격이다. 다른 말로 이 제품이 제철 우바인데 가격이 참 좋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냥 BOP라 그런가 싶기도 하고.

민또 오 오모와세루, 아오쿠 미수미수시 카오리 또 수키리 또 시따 아지와이. 세이료칸 노 아루 후미 가 미료쿠 노 슌 노 우바 코차
민트를 연상시키는 푸르게 싱그러운 향과 깔끔한 맛. 청량감 있는 풍미가 매력적인 계절의 우바 홍차입니다.

하이그로운, 그러니까 스리랑카의 차밭 중에서도 고지대에서 재배하는 우바는 민트 내지는 멘솔향으로 표현되는 특유의 쌉싸래한 향과 진한 장미차 같은 꽃향이 특징으로 청량하다고 표현할 정도의 깔끔함과 적당한 바디감을 지닌 풍미가 독특하면서도 깊은 차이다. 우바의 맛을 기억한다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설명.

패닝까진 아니긴 한데 기대했던 브로큰은 아니네

새로운 차를 개봉하는 건 언제나 설렌다. 특히나 강렬한 향이 기대가 될 때면 더 그렇다. 개봉과 동시에 푸릇한 풀내음이 확 피어오르고 약간은 시큼 털털하면서 막 꺾은 줄기 같은 아릿한 향이 난다. 우바 특유의 노란 금빛 이미지의 향이랄까. 다원차를 접하기 힘들던 시절에 우바의 향과 맛을 처음 보았을 때 뭔가 어른이 되어버린 듯한 그 기분을 잊지 못한다. 그 이후로는 향만 맡아도 그런 기분이 잠시 느껴진다. 다시는 이전과 같지 않으리라. 딱 한 가지, 브로큰 치고도 너무 잘은 분쇄도가 아쉽긴 하다. 어쩐지 침출시간이 짧아도 너무 짧더라니. 짧게 우리는게 보통이다 보니 간과했다.

조금 눌려 찐빵이 된 뱅오쇼콜라

4g, 300ml, 100도의 물로 1분 내로 우려내었다. 또렷한 황금빛 수색에 상큼한 산미가 확 퍼져나간다. 점차 호박색으로 진해지며 향 또한 다즐링과는 전혀 다른 종류지만 풋내가 진하다. 한 모금 머금는 순간 수렴성과는 또 다른 쌉싸래한 맛이 혀를 자극하더니 또 한 순간 과즙 같은 산미가 팡하고 터져 나온다. 그 뒤로 이어지는 장미향과 한참을 멀리서 거리를 두고 수줍게 다가오는 여리디 여린 쎄한 민트향. 우바의 매력은 바로 이 산미와 삽미의 조합이지. 바디감도 제법 풍미가 잘 느껴지면서 진하고 한 잔을 마시고 나자 혀 위에 살포시 수렴성이 내려앉는다. 빠르게 잘 우러나는 점도, 산미와 삽미의 조화나 바디감까지 무슨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이제 깔끔함의 최고치를 곁들인. 이런 독특함이야 말로 실론티의, 특히 우바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정석적인 홍차를 마시고 싶을 땐 딤불라, 이국적이어서 고급진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땐 우바라던지 누와라엘리야를 선택하는 편이다. 특히나 우바는 꼭 스트레이트로 마시고 싶은 기분이다. 다즐링이나 아쌈에 비해 질리지 않는 재미가 있다.

패닝스처럼 떡져버린 브로큰

다엽이 너무 자잘하다는 것 외에도 재탕이 너무 싱겁다는 단점이 있긴 하다. 가격 생각하면 재탕이 이렇게 싱거운 건 좀 아쉽지. 그래도 다른 차들에 비해서 차가 눈곱만치 덜 들어간다는 점과 첫 한잔이 너무 깔끔하고 조화롭다는 점에서 그냥 좀 찻잎을 플랙스 하면 크게 만족스러운 차임에 틀림없다. 겨울목이에서 2023의 우바는 싱그럽고 산뜻한 맛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며 지나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냥 지나갔으면 아쉬웠을 2023 우바 하이랜즈 시즌 퀄리티였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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