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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듐레어 Nov 22. 2023

이젠 녹차도 바밤바의 시대가 왔다

루피시아 8226. 쿠리

늦가을의 정취는 또 호박이니 밤이니 고구마니 하는 겨울겨울한 열매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에서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맘때이면 마롱티가 잘 나가기도 하고. 루피시아의 밤 블랜딩 녹차인 쿠리는 한겨울보단 늦가을에 더 어울린다는 개인적인 의견으로 빨리 당장 만나보기로. 50g 봉입에 750엔으로 상미기한은 1년이다.

너무나도 밤 율자가 떡 하니 써있어서 제목을 율 이라고 해야 하나 싶지만 율차라고 하면 뭔가 율무차스럽고 녹차블랜딩이라는 상상이 잘 안 되는 이름이라 그냥 쿠리라고 읽기로 한다.

쿠리 노 아마미 가 료쿠차 노 아지 또 아마쿠 나츠카시 하모니 오 카나데마스
밤의 달콤함이 녹차의 맛과 달콤하게 그리운 하모니를 연주합니다.

항상 라벨에 적혀있는 설명이 일본어 특유의 시적인 표현으로 되어있는 게 하루이틀은 아닌데 보그체와는 또 다른 맛의 온몸이 베베 꼬이는 걸 어쩔 수가 없다. 아무튼 밤과 녹차라고 한다. 녹차베이스다운 1.5~2분의 우림시간. 평범한 레시피이다.

개봉하고 봉투를 열면 밤 무스 향이 아주아주 진하게 터져 나온다. 크리미하고 고소한 그야말로 '바밤바'향이 올라오면서 여기에 녹차라면 뭐 너무나 알 것 같은 말차라떼의 그것이 연상이 된다. 찻잎을 덜어보면 일단 압도적인 크기의 밤 조각이 들어있어서 놀라게 된다. 다른 것보다도 밤조각이 너무 많이 들어가게 되면 나중엔 밤조각 없이 차만 마시게 될 테니까 알아서 적당히. 찻잎은 큼직하게 말린 평범한 일본녹차가 들어있다. 원재료에 치자물이 들어있다는데 아마도 밤조각을 좀 더 노랗게 염색해서 말린 것 같고 녹차에도 마룬가향을 좀 했겠다. 밤은 눈속임이고 사실상 마룬 가향차이기 때문에.

사진은 3g, 150ml, 80도의 물에서 1.5분 우린 차인데 회사에서 보통은 300ml, 75도 정도의 물을 팟에 먼저 담고 그 위에 5g 정도의 차를 한 번에 투입하는 상투법을 사용했다. 1.5분 후에 큰 컵에 한 번에 따라낸다. 수색은 살짝 짙은 편으로 뿌연 가루 없이 맑게 우러나고 가루진 부스러기가 약간 가라앉는 편이다. 달달하게 라떼향이 나는 게 압권. 마셔보면 아주 부드럽고 연한 맛의 녹차에 빠방한 마룬크림향이 올라가 있다. 녹차 온도에 맞춰 너무 뜨겁지도 않고 적당히 식은 따뜻함에 부드러운 맛과 달달 고소한 마룬크림이 담백하게 넘어간다. 조용히 아침을 열어주는 맛이 일품이라 주로 아침에 즐긴다. 급격히 추워진 늦가을 날씨에 힘겹게 출근했는데 포근한 이불에 감싸여 꼼지락거리는 느낌을 다시 받을 수 있다니 너무나 행복. 재탕은 어쩔 수 없이 팟에 물을 다시 부어 마시는데 첫 탕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 향을 보인다. 다들 두 번 드시라. 밀크티 추천라벨이 붙어있진 않은데 진하게 우려서 밀크폼을 얹으면 진짜 라떼스럽고 좋다. 대신 아무리 진하게 우려도 말차라떼에 바밤바 녹인 진한 맛은 아닐 테니 참고. 연하고 연해 질 것이다. 봉지 막판에 탈탈 털면 부스러진 가루들이 많이 떨어질 텐데 그때 밀크티를 시도해 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고.

한국에서 밤 들어간 무언가를 먹을 때 바밤바라는 거대한 인식의 벽을 넘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그렇자면 이것은 녹차처럼 생긴 바밤바. 쉽지 않다. 회사 사옥 카페에서 빵을 팔기 시작했는데 미니 밤식빵을 판다. 인기순위는 중간정도로 빵 나오는 시간을 조금 놓쳐도 재고가 있는 편이다. 아침마다 미니 밤식빵에 쿠리를 마시면 바삭한 밤식빵에 달콤 크리미 한 차의 향이 아주 잘 어울린다. 한 겨울 밤라떼를 마시는 기분을 담백하고 깔끔하게 느낄 수 있는 쿠리. 아련한 하모니까진 들리지 않았지만 그 달콤 포근한 느낌은 행복의 맛이었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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