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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듐레어 Dec 07. 2023

의외로 꿈빛 파티시엘에서 찾아야 하는 오페라

루피시아 5650. 오페라

루피시아 본점 만큼이나 꼭 가보고 싶은 그랑 마르쉐. 덕후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홍차 대 축제. 그랑 마르쉐는 쉽게 말해 루피시아에서 개최하는 홍차박람회 같은 행사인데 그랑 마르쉐에서만 한정 판매하는 홍차들도 있고 새로운 블랜딩을 실험적으로, 마치 파일럿 돌려보듯 판매해 보기도 하기 때문에 갈 순 없어도 꾸준히 눈팅은 하게 만드는 그런 행사이다. 제가 홍차라고만 적었나요? 물론 다른 차들도 있습니다. 본심이 무심코 드러나고 말았군. 오늘 마셔보는 오페라도 원래는 그랑 마르쉐 한정으로 나왔다가 정규 라인업에 편성된 신규블랜딩이다. 정규편성 작년에도 되었던 거 같은데 홈페이지 설명에는 마치 올 겨울에 막 들어온 것처럼 되어있네. 아무튼 주변에서 마시는걸 예전부터 여러 번 보아왔는데 이번에 한정 일러가 나온 김에 냅다 장바구니에 넣었다. 참고로 오페라와 같이 그랑 마르쉐에서 상시로 넘어온 프레지에도 구매완료 해두었다. 오페라는 한정 일러 50g 캔에 1060엔, 일반 봉입으론 680엔이다. 상미기한은 2년.

케익 오페라가 오페라 극장의 모양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니까 뭐 그리 틀린 일러스트도 아니다

오페라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을 그려놓은 듯한 일러스트캔인데 음악의 오페라가 아니라 디저트의 종류인 오페라를 모티브로 하여 여러 장의 시트 사이사이에 커피시럽과 가나슈가 들어간 그 케익을 이미지 한 블랜딩이다. 근데 묘하게 어울리네 밤의 여왕.

아마이 초코레또 또 코히 노 호로니가사 가 히비키아우 후란수 하쇼 노 케키 오 이메지시따 코차
달콤한 초콜릿과 커피의 쌉쌀한 맛이 공존하는 프랑스 발상의 케익을 이미지 한 홍차

오페라는 프랑스 케익이었나 보다. 커피시럽 촉촉한 초콜릿 가나슈 달콤한 그런 홍차 되시겠다. 기본적으론 초코가향일 테다.

그라인드한 원두처럼 가느다란 건엽들

개봉하면서 나는 향은 달콤한 초코향이 메인으로 커피원두 고소한 냄새도 같이 난다. 정확히는 가나슈의 향이랄까. 누구나 맡아보면 ‘어 나 이거 알아’ 하면서도 이름을 대긴 어려운 그 향이다. 찻잎은 패닝급으로 동봉된 카드에도 1분 우리라고 나와있을 정도로 빠르고 진하게 우리는 걸 노린 찻잎이다. 설명엔 아쌈베이스라고 한다. 자세히 보면 카카오닙스도 조각으로 들어있는데 사진에 잘 안 보여서 로얄밀크티 한다고 밀크팬에 찻잎 넣었을 때 다시 찍었다. 가향이 진하게 들어간 편으로 티베이스가 걱정될 정도. 아쌈이 밀릴 것 같은 진한 가향이다.

제철붕어와 함께

6g, 300ml, 100도의 물에서 1분 우렸다. 찻잎이 가는 편이라서 우림팟에 필터가 있음에도 거를 때 스트레이너를 한 번 더 사용해 줬다. 수색은 깔끔하게 드립커피색(?)이 나오고 역시나 가향이 압도적이다. 걱정한 대로 티베이스는 큰 특색 없이 묻혀버렸는데 수렴성이 튀지도 않고 정말 무난하게 베이스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인 것 같다. 헤이즐넛에 가까운 카카오닙스의 향이 꽤나 근사하게 커피시럽의 맛과 향을 재현하는 듯하고 베이스가 단단히 붙어있는 초코가향은 우아함이 배가 된다. 본격 밀크티를 부르는 맛과 향이기 때문에, 그리고 애초에 그걸 염두에 두고 탄생했을 블랜딩이라 오히려 밀크티에서의 취급이 훨씬 편하고 스트레이트가 너무 까다로운 차가 될 것 같다. 추천 우림시간인 1분~1.5분은 굉장히 넓게 잡아준 시간이고 스트레이트에서는 무조건 1분에서 끊어주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끓는 물을 팟에 부어주면 찻잎이 떠오를 텐데 점핑이 끝나는 시간이 딱 1.5분, 점핑을 활발히 일으키는데 실패했다면 떠오른 찻잎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시간이 1.5분일 것이다. 1.5분까지 가게 되면 드디어 수렴성이 앞으로 나와서 혀를 마르게 할 텐데 그렇다고 티베이스의 맛이나 향이 가향을 뚫지는 못하기 때문에 스트레이트로서의 매력은 없다고 보는 게 맞겠다. 이땐 우유를 아주 살짝 넣어 간을 맞추면 된다. 그렇다면 본격 밀크티로 넘어가 보자.

우리집엔 하찮은 소품들이 많다

10g을 밀크팬에 살짝 볶아서 물 쪼롭넣어 수십 초 바글바글 볶은 뒤에 우유 250ml 정도를 넣어 낮은 온도에서 3분쯤 우려낸 로얄 밀크티. 스트레이트에서도 잘 모르겠던 아쌈이 여기서 갑자기 느껴진다면 너무 거짓말이겠지만 확실히 우유 안에 티베이스가 있다는 것은 잘 알겠다. 고작 300ml쯤 밀크티를 만들면서 10g 사용해 놓고 그 정도 안 나오면 그것도 좀 웃기긴 하겠지만. 이 점은 10g, 300ml, 100도에서 1.5분 우린 뒤에 밀크폼을 100ml 정도 올려서 마셔보면 조금 더 명확하게 실감할 텐데 우유거품을 스치고 입안에 들어온 탓에 수렴성도 느끼기 어려운 실크 같은 부드러운 차가 스트레이트에서 맛보았던 우아한 가향을 그대로 들고 입안에 머무른다. 그림자처럼 철저히 뒤로 숨어서 완벽하고 탄탄한 배경을 만들어준다. 그야말로 밀크티를 위해 태어났구나.

어딘가 아련하게 빛나는 엽저

두 번을 바싹 우려낸 엽저는 아직까지도 가향이 살아있는데 이제는 차에서 조금 비릿한 향이 난다. 나름 클래식한 마치 세기말 무렵의 서양브랜드들에서 느꼈던 진한 쇼콜라 가향이 추억에 젖게 만드는데 막상 어떤 홍차들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니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 뭐였을까. 잭슨스? 위타드? 마리아쥬? 확실한 건 그 시절 별처럼 많았던 고급진 가향차들이 이제는 많이들 사라지고 없다는 점이다. 본체가 사라지다 보니 검색을 해도 찾기가 어려워졌다. 정확히 기억나는 별자리가 아니면 어두워진 별자리를 찾기란 너무도 어려운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근본 있는 가향의 역사를 고스란히 계승한 차가 남아있다니 너무도 행복하다. 오페라. 오페라. 아름다운 아리아.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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