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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듐레어 Dec 24. 2023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간절한 마음으로 아껴뒀더니 짜잔

루피시아 5524. 화이트 크리스마스

이제 대망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시즌 한정 일러스트 시리즈인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마셔볼 차례다. 앞서 캐롤을 격하게 애정하기에 좀 아껴두었다가 뒷 순번으로 했다고 했는데 그 보다 더 뒤에 있는 최종병기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또 어떻겠어. 화이트 크리스마스야 말로 이 시즌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차라구. 마지막에 쓰기 위해서 정말 아끼고 아꼈는데 이걸 크리스마스이브에 작성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정말. 하지만 좋은 소식이 있어! 이걸 아껴둔 탓일까? 크리스마스이브인 오늘 아침에 창밖을 보니 흰 눈이 내린 하얀 세상이었고 내일 새벽에도 눈 소식이 있어서 올해는 정말로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다구. (서울기준) 뭔가 설렘설렘한 기분을 가득 안고서 이미 두어 번 마실 분량밖에 남지 않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이제 막 개봉해 보는 것처럼 글을 써본다. 크리스마스 한정 일러 캔입 50g에 1210엔으로 다른 애들보다 찔끔 더 비싸고 일반 봉입은 830엔으로 상미기한은 2년으로 평범한 편.

북극곰이 춤추고 나도 춤추고 밤새 롹킹 어라운드 크리스마스 트리

잠옷입은 북극곰이 신나게 연주를 하고 이번 일러스트에 종종 보이는 오로라 커튼이 울렁거리면서 역시 빠지지 않는 눈송이가 반짝인다. 솔직히 일러스트의 아름다움은 잘 모르겠고 개중 평범한 편.

호와이또 초코레또 또 낫츠가 오리나스, 아마쿠 코바시야키 카시 오 이메지 시따 코차. 미루쿠티 니 모.
화이트 초콜릿과 견과류가 어우러져 달콤하고 고소한 구운 과자를 연상시킨 홍차. 밀크티에도.

화이트 초콜릿이 들었다거나 견과류가 들어있지는 않을 거지만 이미지가 그렇다고 이미지가. 약간은 초코칩 느낌이 나는 오븐에 진득하게 구워낸 쿠키를 생각하면 된다. 촉촉한 초코칩 말고 좀 딱딱한 초코칩. 밀크티에 정말 좋기 때문에 이것도 역시 체크포인트. 홍차가 진하게 빨리 우러나는 편이라 레시피는 일반적인 레시피에 비해 시간이 30초쯤 짧게 표시되어 있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스노우 플레이크

개봉하면 루피시아 특유의 그 휘발성 있는 가향이 살짝 느껴지면서 쇼콜라와는 조금 다른 베이커리류의 가향이 느껴진다. 쇼콜라 쪽은 카카오닙스가 좀 섞인 향이 날 텐데 여기는 쿠키류의 향이 나기 때문에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찻잎을 덜어내 보면 아쌈 ctc가 주를 이루면서 케냐 브로큰이 종종 보이는 느낌의 건엽이다. 종종 보이는 약간 연한 잎은 뭐지 싶다. 일단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것은 아무래도 금평당에 은박을 입힌듯한 은색 별사탕과 동그란 은색 구슬인 아라잔이 깨알같이 들어있다. 정말 눈이 오는 것처럼 여기저기 은박의 토핑들이 빛이 난다. 별사탕 모양은 금평당은 아니고 (보통 금평당을 사용했다면 원재료에 금평당이라고 표시를 한다) 조금 큰 아라잔을 금평당 모양으로 만들어 둔 것 같다. 물론 흰색 금평당에 은박을 씌운걸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쪼갰을 때 조금 더 투명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쪼개봤단 얘기. 아무튼 별사탕 모양의 저기서 벗겨져 나오는 은박이 꽤 사이즈가 넓적해서 우릴 때 홍차엽과 함께 팟을 날아다니는데 눈 오는 것처럼 정말 예쁘다. 옛날엔 아라잔이라고도 안 하고 은침, 은단이라고 불렀는데 아무튼 어린 시절엔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하고 은박이 들어갔다는 것 자체로도 너무 신기했어서 나를 참 두근거리게 만들었었다. 좀 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찻잎이 점핑되는 게 잘 보이는 티팟에서 우려내면 아라잔 녹아서 흩날리는 은박들을 볼 수 있으니 소소한 재미도 놓치지 말자.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위해 눈을 테마로 겨울 왕국을 꾸며보았다

6g, 300ml, 100도의 물에서 2분 우려내었다. 한잔을 따라내면 향이 달달하게 퍼져나가는데 확실히 그냥 밀크 초콜렛 향은 아니고 너티한 뉘앙스가 강하다. 아몬드가 약간 섞인 밀크 초콜렛인데 쿠키도우 바싹 구운향 비슷하게 나는 그런 느낌이다. 한 모금 마셔보면 조금 전의 향이 훨씬 강하고 고소하게 입을 치고 들어간다. 이제는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을 정보이지만 화이트 크리스마스에는 또 한 가지 비밀이 있어. 먼 옛날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에프리콧 가향이 들어갔다고 적혀있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언젠가 스윽 사라져 버렸어. 하지만 아마도 가향 레시피가 바뀐 건 아닌 건지 옛날에 마셨던 맛 그대로인 것 같고 입을 조금 넓게 써보면 베이커리류의 향에서 갑자기 에프리콧 특유의 약간은 밍숭 한 과일향이 또 나게 된다. 그렇게 입안에서 찻물을 이리저리 굴리다 보면 또 수렴성이 느껴진다. 역시 씨티씨 위주인데 2분을 우리면 수렴성이 없을 순 없지. 하지만 홍차의 맛도 가향도 모두 강한 편이라 밀크티가 너무 기대된다. 사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재탕이 영 재미가 없어서 어차피 재탕도 못할 거 로얄 밀크티로 가버리자 하는 경우가 많다. 아라잔의 지분이 꽤나 강한 건지 재탕했을 때의 맛이 그야말로 단물 빠진 것처럼 밍숭하고 웃기는 맛이 되어버려서 처음 우린 팟의 볼륨감과 비교하면 너무 초라하다. 하지만 또 스트레이트에서 느껴지는 디테일이 너무 훌륭해서 한번 마시고 버리더라도 굳이 스트레이트 마시게 되는 경우도 많단 말이지.

이제 진짜 크리스마스가 왔다구

밀크티로 만들면 우유만 간단히 부어도 좋고 끓여도 좋고 어떻게든 좋은 맛을 내준다. 아라잔이 꽤 들어서 그런지 따로 설탕을 넣지 않아도 충분히 내 입엔 달달한데 그건 각자 기호에 맞게. 12g, 300ml, 100도의 물로 3분 우려서 차와 우유를 3:1쯤으로 섞었다. 차의 맛은 실크처럼 부드러워지고 향은 훨씬 밀크 초콜렛에 가까워진다. 너트 내지는 쿠키의 느낌이 조금은 옅어지는 느낌. 너무 쉽게 술술 넘어가서 항상 모자란 게 문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이래서 50g 한봉을 찻자리 서너 번이면 다 마셔버리곤 한다. 모자라기 전에 얼른 로얄 밀크티. 8g의 차를 따뜻한 팬에 20초쯤 볶고 100ml 조금 넘는 물로 1분간 끓여준다. 증발이 되도록 팔팔. 우유 250ml를 부어주고 약불에서 2분 정도 더 기다렸다가 따라낸다. 로얄 밀크티에서는 단맛이 한결 올라오는 느낌으로 차를 쬐끔 더 넣어서 그런가 싶기도 한데 이번에 스벅에서 만들고자 했던 밀크티의 맛이 이런 거겠구나 싶을 정도로 진하고 달달하고 그렇다. 내가 만들었지만 너무 맛있어. 

빛반사 사이로 숨은 은박 찾기

화이트 크리스마스 또한 정말 옛날부터 즐겨왔던 차라서 나의 일방적인 애정이 들어간 시음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냥 맛있다. 이래저래 다른 차도 많이 마셔볼 계획이 잡혀있어서 올해는 하나만 산 게 좀 아쉬울 정도.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마시고 나니 이제야 정말 크리스마스가 눈앞에 온 게 실감이 난다. 마지막으로 아껴둔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20일이 다 되어서야 개봉을 했고 정말 반 이상 마시자마자 바로 쓰는 시음기이다. 그러고 보니 밀크티 한두 번 마시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아마 내일 아침에도 창 밖에 하얀 눈이 새로 쌓여있다면 이 차를 꺼내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겠지. 내 어린 시절의 추억과 로망과 설렘을 담은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시점에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어 있는 게 너무 행복하다. 크리스마스 위시를 남기자면 모두에게 이 행복이 함께 하기를. 이제 크리스마스를 즐기러 가봐야겠다. 메리 크리스마스!

시음기 끗.



*콘서트 느낌의 크리스마스 일러스트 시리즈인 만큼 어쩌면 앵콜이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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