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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듐레어 Dec 23. 2023

수많은 딸기 가향 중에 밀크티엔 오직 너뿐이야 캐롤

루피사아 5516. 캐롤

루피시아의 크리스마스 특집 한정 일러도 이제 두 캔 남았고 크리스마스도 이틀 남았다. 이틀 안에 50g 두 캔을 다 마시겠다는 건 아니고 사실은 이미 거의 다 마셨는데 글을 쓰지 않았을 뿐이다. 시음기라는 게 쓸 때는 내가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나 싶지만 안 쓰고 지나가면 몇 년 뒤에 기억이 나질 않아 후회하는 뭘 어째도 후회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즐기면서 뭐라도 적어두는 게 가장 좋다. 시작은 거창하게 했지만 지금은 최선을 다해 수습해 보는 마음으로 적어보겠다는 뜻이다.

캐롤을 꽤나 뒷 순번으로 미뤄둔 건 아는 맛이고 좋아하는 맛인데 일러스트도 잘 뽑혔다고 생각되어서 아껴놓는 기분이었다. 자세한 일러스트 감상은 잠깐 미뤄두고, 기본적으론 딸기홍차인데 무척 맛있었던 기억이다. 시음기를 적지 않아 상세한 맛의 기억이 없지만… 역시 열심히 적어두는 게 좋다. 이번에는 좀 제대로 적어두기로 하면서 시작해 볼까나. 50g 한정 일러 캔입이 1110엔, 봉입은 730엔으로 상미기한 2년. 주문 완료. 참고로 판매기간이 11월~3월로 다른 친구들보다 한참 더 판매를 지속하니 추운 계절 내내 두고두고 구매가 가능하다.

일러스트를 크게크게

이번 시즌 일러 중에 가장 맘에 든달까. 케익모자를 쓴 호두까기 할배도 뭔가 병맛이고 무해해 보여서 좋다. 잔뜩 쌓여있는 찻잔도 다 내 취향이고 발레리나 의상도 스타일도 맘에 든다. 사실 다른 일러들이 좀 못생기게 나와서 이번시즌 고민 많이 했다구.

스트로베리 또 바니라 노 카오리 니 로주 노 하나비라 데 하나야카사 오 엔슈츠 시따 코챠.
딸기와 바닐라 향기에 장미 꽃잎으로 화려함을 연출한 홍차.

딸기 바닐라 가향으로 클래식한 가향차 라인이다. 장미꽃잎으로 토핑에 데코를 한 차 되겠다. 레시피는 일반적인 루피시아 홍차 레시피.

건엽은 그리 겨울겨울 느낌은 모르겠는 모습이지만

개봉하면 우선 익숙한 풍선껌 향이 난다. 추억 속의 그 향기. 루피시아의 딸기가향이라면 당연히 나겠지 싶은 그 향기이다. 잎을 덜어내 보면 베트남과 케냐홍차가 큼직한 브로큰으로 들었고 그 안에 토핑으론 코코넛 과육을 말려서 넣었고 붉은 장미꽃잎, 그리고 낙엽 같은 게 들어있다. 딸기 잎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아마도 딸기의 초록색 꼭지 부분 잎인 것 같다. 사실 이 부분은 그냥 잎이 아니고 딸기의 꽃받침인데 딸기의 빨간 과육이 꽃 속의 암술이 모여있는 빵 부분이 자란 거라서 딸기를 뒤집어서 보면 이해가 쉽다. 자세한 건 인터넷 찾아보시라.

시간이 없어서 싱어게인 보면서 마셨다

6g, 300ml, 100도의 물에서 2.5분 우려 본다. 의외로 향이 진하게 퍼져나가진 않는다.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가보면 바닐라향도, 크림향도 아닌 은은한 단내가 부드럽게 나는데 약간은 버터향 같기도 한 느낌이다. 당연히 바닐라향에 가장 가깝긴 한데 좀 더 은은하게 다른 향과 블랜딩 되어있다. 한 모금 마셔보면 아까 전의 풍선껌은 대체 뭐였는지 좀 더 고급진 풍미의 딸기향이 제대로 된 홍차의 맛과 함께 느껴진다. 인공향의 시큼함마저 실제 딸기를 씹는 느낌이라고 하면 너무 콩깍지인가. 입안을 넓게 쓰면 또 순딩한 홍차의 맛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진한 딸기향으로 바뀐다. 어디까지나 봉지를 개봉했을 때의 풍선껌 향에 비해 고급지다는 거지 완전 생물딸기 그 잡채 뭐 이런 말은 아니니까 적당히 걸러서 듣자. 포트넘 딸기 때도 이야기했지만 딸기주스나 딸기우유가 될 순 없는 노릇이다. 말 꺼낸 김에 포트넘의 black tea with strawberry와 비교하자면 이쪽의 바닐라는 훨씬 가벼운 느낌이고 포트넘이 묵직하게 크리이임 한 느낌으로 캐롤에서 그 정도 묵직한 바닐라 향이 나려면 진한 밀크티용 차를 우려야 비슷해지겠다. 대신에 딸기향은 아무래도 캐롤 쪽이 더 진하다.

옛날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히 탑티어인 피오니와 함께

믿고 마시는 캐롤 밀크티. 영국식으로 우유를 뚝딱 부어보았는데 베이스는 12g, 300ml, 100도의 물로 3분 우려내었다. 캐롤의 좋은 점이 우유에게 절대절대 밀리지 않는 맛과 향인데 어지간해선 맛과 향을 위해 냄비에 끓여내는 밀크티를 하지만 캐롤은 믿고 그냥 우유를 부어도 충분하다. 이렇게 우유를 많이 넣어도 되는 걸까 싶게 넣어도, 심지어 차보다 우유를 더 넣어도 괜찮을 정도니까. 그러다 보니 딸기 가향이 삐죽 솟아오르기도 하는 탓에 이 점에선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는데 생각해 보면 우유를 넣고도 딸기가향이 이 정도로 뚫고 나오는 차가 그리 많지는 않기 때문에 캐롤만의 특장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코코넛으로 크리미함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생기는 특이한 고소함이 스트레이트보다 밀크티에서 더 두드러져서 누군가에겐 이 또한 거슬리는 부분이 될 수도 있겠지만 캐롤만의 엣지가 바로 이런 부분이라는 걸 알아줬음 좋겠다. 포트넘 딸기랑 비교해서 뭘 고르겠냐고 하면 밀크티로는 캐롤을 고를 정도로 내 취향이다. 딸기가향은 수없이 많지만 밀크티로 최고는 캐롤.

딸기잎과 코코넛은 건엽때랑 보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

옛날부터 좋아했던 블랜딩이다 보니 아무래도 시음기가 좀 편파적일 수 있지만 어쩌겠나, 친구는 오랜 친구 죽마고우 국민연료… 아무튼 그 정도로 내 입에 잘 맞고 좋아하는 차인걸. 재밌게도 캐롤을 선곡할 때 역시 00년대 이전의 빈티지한 캐롤을 들어줘야 제맛인데 아무래도 시즌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요소 그 잡채라서 그런 것 같다. 그러니까 아무 캐롤 아니고 ‘그 곡’ 인거지. 루피시아 캐롤도 나에게는 크리스마스의 구성요소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수준인 것 같다. 겨울엔 역시 캐롤. 캐롤에 길들여진 나. 이제 대망의 마지막 크리스마스티를 하나 남겨두고 오늘의 시음기는 여기서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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