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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듐레어 Dec 22. 2023

Merry Christmas Mr. 탕비실

루피시아 5246. 조와유 노엘

루피시아의 불어 사랑은 메리 크리스마스도 불어를 사용할 정도로 대단하다. 한때는 크리스마스 한정의 중심에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느덧 평범한(?!) 계절 한정이 되어버린 것 같은 죠와유 노엘. 그러니까 불어로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의 마롱티에서 또 한 번 그들의 불어 사랑을 느낀다. 언젠가 마리아쥬와 루피시아의 프로이트적 분석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급격하게 가까워지는 크리스마스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시음기를 작성해 보자. 직접 사다가 마셔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고 전에 한번 마셔본 것 같긴 한데 정확한 기억이 나질 않아서 사실상 처음 마셔본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봉입 50g, 700엔으로 상미기한은 2년짜리인 11월~12월 한정 상품. 12월 22일 기준으로 아직 주문이 가능하다.  

죠와이유 노에루

가타가나 그대로 읽으면 죠와이유 노에루가 되는데 실제 불어발음으론 주와아유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친숙한 영어단어인 joy가 들어가는 걸로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메리 크리스마스~

파리 노 코바시야키 쿠리 오 이메지시따 코챠. 비타나 후미 노 노치 니 히로가루 마로야카나 아마미.
파리의 향긋한 구운 밤을 연상시킨 홍차. 쓴맛의 풍미 뒤에 퍼지는 부드러운 단맛.

파리의 길거리에서 파는 군밤의 맛과 향을 이미지 했다고 하는데 파리를 안 가봐서 뭐라 얘길 못하겠다. 그냥 갖다 붙인 거 같긴 한데. 아무튼 군밤의 씁쓸한 맛과 또 밤 특유의 단맛을 이미지 한 것 같긴 하다. 한국에선 바밤바와 또 힘겨운 시간을 보내게 될 운명이군. 레시피는 루피시아의 일반적인 홍차 레시피로 특별한 주의 사항은 없다.

파리의 군밤은 정말 화려하구나

봉투를 개봉하면 진하게 솔트캬라멜 같은 달달한 향이 난다. 굵은 설탕을 잘 볶아서 약간 뽑기 냄새도 좀 나는 것이 달달한 뭔가를 구워놓은 느낌이 난다. 아쌈 씨티씨들과 베트남 홍차 사이로 굉장히 화려한 토핑이 들어가 있는데 말린 밤조각과 굵은 설탕, 빨간 사플라워, 노란 메리골드가 제법 풍성하다. 밤 조각이 큼직해서 개수가 아주 많은 편은 아니니 스푼 뜰 때 분배를 잘해야겠다. 캐러멜 색소가 들어갔다고 하는데 아마 설탕조각 내지는 밤조각에 착색 들어갔겠지. 비터스윗이란 단어가 딱 맞는 향이다.

최대한 연출해 본 크리스마스 분위기

6g, 300ml, 100도의 물에서 2.5분 우려내었다. 무게감 있는 달달한 향이 진하게 퍼져나가서 기분이 좋다. 가까이에서 향을 맡으면 로스팅한 쌉쌀한 향이 느껴지면서 미묘하게 밤페이스트 향이 따라온다. 한 모금 마셔보면 의외로 가향 없는 홍차의 풍미가 느껴져서 약간 얼떨떨. 코와 입에서 서로 다르게 느껴지는 정보가 많아 여러 번 서둘러 마시게 된다. 그러다 보면 또 수렴성이 없진 않구나 느껴지고. 사실 마롱가향도 빠르게 날아가는 편이라 가향이 좀 약해져서 그렇지 개봉하고 처음 마실 땐 이렇게까지 향과 맛이 분리되어있진 않았다. 그땐 그냥 입안에선 의외로 진하지 않구나 정도의 느낌이었다. 어쨌든 잔 위로 퍼져 나오는 향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다식으로 맛밤을 같이 먹어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로스팅 향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 풍미가 사실 이모쿠리카보챠의 루이보스와도 비슷한 결이 있는데 루이보스향이 섞인 홍차라고 설명해도 설명이 썩 시원하게 되지 않는 느낌이라 다시 한번 표현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크리스마스 기념 마롱까기 병정

밀크팬에 12g을 넣고 볶다가 물 자작보다 조금 더 넣고 우유 250ml를 넣어 로얄밀크티를 만들었다. 홈페이지에 밀크티 추천 라벨이 붙어있는데 스트레이트를 마시면서도 이건 우유를 어떻게 넣어도 맛이 그대로겠구나 하는 느낌이었어서 반드시 밀크티를 해봤어야 했다. 설탕을 따로 넣지 않았어도 이미 들어있는 소량의 설탕만으로도 로얄밀크티가 제법 달달하다. 로스팅 풍미가 누그러들면서 정말 부드러운 밤맛이 되었다. 홍차 베이스가 진한 편이라 자칫 희미해질 수 있는 인상에 확실한 윤곽선이 생긴다. 회사에선 가볍게 스팀밀크를 넣어서 먹는 편인데 부드럽게 다듬어진 마롱향이 베이커리류의 그것과는 약간 다르게 선명한 군밤의 느낌이어서 꽤나 만족스럽다. 영국식으로 우유 대충 부어서 마셔도 밍밍하다는 느낌이 크게 들지 않는 점이 가장 맘에 든달까.

홍차가 튼실했던 조와유 노엘

사실 메리 크리스마스 이름과 잘 어울리는 차인 지는 의문 남지만 겨울겨울한 마롱티로서의 매력은 루피시아의 마롱가향 중에서는 최고가 아닐까 생각된다. 위에서 비슷하다고 이야기한 이모쿠리카보챠의 어떤 지점과 공유되는 것이 있는데 어째 이모쿠리카보챠의 팬이 더 많은 것처럼 느껴져서 내 취향이 그렇습니다 하고 짚어둬야 할 것 같다. 최근 회사에서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느긋한 마음으로 차를 마시고 있지는 못한데 죠와유 노엘을 마시면서 약간은 파리지엥처럼 멜랑콜리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회의시간엔 졸음 방지를 위해 아이스티를 가져가는 게 국룰인데 죠와유 노엘을 밀크티로 가져가서 약간 쓸쓸한 느낌으로 회의를 관망하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탕비실에 거친 폭풍이 지나갔고 이제 크리스마스를 앞둔 마지막 퇴근이 다가온다. 모두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시음기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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