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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듐레어 Dec 21. 2023

크리스마스 트리 위에 내린 눈은 폴라포 얼음알갱이

루피시아 5584. 징글벨

루피시아 크리스마스 특집이 이제 넷 남았다. 최근 바쁜 일이 많아 시음기가 밀린 상태로 계획엔 지금쯤 마지막 차의 시음기를 쓰고 있을 시기인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오늘은 약간은 아껴두었던 징글벨. 징글벨은 누군가가 초겨울에 루피시아에 들렀다 오면서 사다 준 크리스마스 한정 일러 미니틴으로 처음 마셔보았던 차인데 오랜만에 마셔보는 루피시아의 머스킷향이 또 그립고 반가웠어서 기억에 많이 남아있는 차이다. 물론 머스킷과는 좀 차이가 있는데 뭐가 다른 지도 확실히 알아볼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아무튼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징글벨을 한정 일러 틴으로 주문했다. 50g 한정틴 1110엔, 봉입은 730엔으로 상미기한은 2년이다.

징글벨 징글벨 경쾌한 소리가 떠오르는 포도향 홍차

징글벨의 한정 일러는 서커스장에서 목마를 탄 고양이가 기타를 치면서 노래하는 내용으로 그려져 있다. 이건 좀 귀여움.

부도 노 후미 가 이키타 후루티 나 수파쿠링그 와인 가 카오루 코차. 세이나루 요루 오 하나야카 니 이로도리마스.
포도 향이 풍부한 과일향 스파클링 와인이 느껴지는 화려한 홍차. 성스러운 밤을 화사하게 물들입니다.

설명에 써있는 걸론 약간 스파클링 한 아이스와인의 느낌이 나는데 뭐 거기까지 기대할 건 아닌 것 같다. 기대가 너무 크면 실망하는 법. 안 그래도 겹치는 블랜딩이 많이 떠올라서 머릿속이 복잡하다. 아무래도 비슷하게 스파클링 와인의 느낌으로 블랜딩 한 로제로얄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고 오리지널 머스킷 홍차 블랜딩과도 비교가 될 수밖에 없는 포지션이다. 이런 경우 취향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고 호감도가 분산되어 전체적으로 매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니까. 그런 점을 감안하면서 마셔봐야겠다. 그 외의 특이사항은 보이지 않는다. 레시피는 일반적인 루피시아의 홍차 레시피를 따른다.

종이접기 해놓은 것처럼 보이는 히스플라워

은박 봉투 입구를 삭삭 잘라내고 열면 폴라포향이 훅 올라온다. 포도맛 폴라포 그 잡채. 웃음이 베실베실 나는 걸 견디며 건엽을 덜어내면 아쌈과 베트남 홍차가 적당히 블랜딩 된 차에 히스플라워가 잔뜩 토핑 되어있고 자잘한 크랜베리 조각도 들어있다. 작은 유부주머니 같은 꽃이 히스꽃 말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진 찾아보면 길쭉한 꽃처럼 나와서 사실 헷갈린다. 암튼 히스꽃의 잎 부분, 순부분도 들어있어서 징글벨이란 이름과 함께 눈꽃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귀여운 부분. 그리고 이거 다 가향으로 커버하는 거구나 싶어서 새삼 감탄하게 된다.

크리스마스엔 소리 높여 징글벨을 부르면서 홍차를 마시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루머가 있어

6g, 300ml, 100도의 물에서 2.5분 우렸다. 수색은 일반적인 홍차의 색으로 약간 무거운 폴라포향이 난다. 진하게 폴폴 풍겨오는 폴라포향이 방을 가득 채운다. 아찔하게 달달한 차를 한 모금 마셔보면 의외로 차분한 포도향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로제 로얄 같은 탄산감은 없고 머스킷보단 조금 더 달고 부드러운 느낌. 뭔가 첨가된 맛으로 머스킷에 비해 깔끔함은 줄었지만 예쁘게 다듬어진 느낌이 또 매력적이다. 올여름 머스킷이 조금 떫탕이었던 점도 기억조작에 한몫하는 것 같고. 포오오도오 한 느낌 보단 포로로롱한 폴라포 느낌이 귀여운 차. 그런데 스파클링 와인이나 그런 쪽 까진 잘 모르겠는 것이 아주 투명한 맛보단 어딘가 매끈하고 달짝지근한 맛 때문에 와인보단 웰치스에 더 가까워져 버려서 아마도 이 부분에서 취향을 많이 타리라고 생각이 된다. 스파클링 와인이란 말을 믿고 샀다가 이게 뭐야가 될 테니까.

그렇다 보니 역시 아이스티를 안 마셔볼 수 없는데 냉침보다는 급랭에서가 더 좋은 맛을 보였던 것 같다. 이미 비단결 같으신 징글벨을 냉침했더니 어딘지 좀 밍밍해져 버려서 맛도 향도 좀 죽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차를 조금 과량으로 넣어서 급랭을 까슬까슬하게 마시는 게 좀 더 얼음알갱이가 얼은 크리스마스 트리의 차갑고 시린 갬성을 구현한달까. 뭔 말인진 모르겠지만 암튼 그게 더 맛있어.

겨울홍차는 씨티씨나 패닝이 많은 편인데 꽉꽉 들어찬 브로큰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생각해 봐도 토핑으로 들어간 히스플라워나 아무리 뒤져봐도 잘 안 보이는 크랜베리가 머스킷 홍차와 징글벨의 차이점을 만들어낸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순전히 가향 조절이 다르다는 이야기일 텐데 마셔도 마셔도 징글벨의 폴라포는 정말 사람 행복하게 만든다. 시음기를 쓰는 20일 현재 징글벨은 이미 시즌종료. 트리 위에 내린 얼음알갱이를 떠오르게 하는 폴라포의 즐거움은 내년에 또 누려보기로 하자.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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