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시아 7410. 오키나와 베니후키
겨울맞이 장바구니에 자리가 좀 남아있던 차에 계절한정인 베니후키가 새로 나와있길래 일단 담아 같이 주문을 해봤다. 듣기는 엄청 많이 들어봤는데 실제 구경해 본 적은 없기도 하고 워낙에 가향홍차 위주로 장바구니가 차고 있어서 센차 하나쯤 들어가면 개운하고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별 고민 없이 주문. 언제 마셔볼까 타이밍을 재고 있었는데 매실매실한 히라키에서 꽃딸기 유메로 넘어가는 사이에 한번 깔끔하게 녹차 들어가면 좋겠다 싶어서 신년의 첫 개봉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50g 봉입 930엔. 상미기한은 약 9개월. 11월부터 4월까지 기간 한정이다.
일본 후쿠오카산이라고 강조. 요즘 후쿠오카 다녀오시는 분들이 많던데 이 시음기가 도움이 될지도?
카오리타카쿠 노미야수쿠 시아게타 오키나와 산 「베니 후키」 노 료쿠차데스. 하루사키 노 무쥬뮤쥬 니.
향기롭고 마시기 쉽게 마무리한, 오키나와 산 '베니후키' 녹차입니다. 초봄의 간질간질 설레임에.
뜬금없이 상사병 짝사랑 약효를 선전하는.. 진한 녹색의 7로 시작하는 녹차라인이고 침출 방법도 뻔하게 나와있다. 홍차와 똑같이 열탕이라고 온도가 나와있지만 그렇게 삶아마시는 녹차가 어딨어.
봉지를 개봉하면 일본녹차 특유의 김가루 꼬신내가 팍 올라온다. 평범한 센차의 인상이다. 건엽을 보아도 특별할 건 없어 보이고 오히려 특상품이라고 보긴 어려운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분쇄도에서 이미 실망의 기운이 살짝. 일단 900엔을 넘는 나름 한정인데 말이야. 하지만 고소한 김가루 향만은 특급이긴 하다.
3.5g, 150ml, 80도의 물로 45초. 깨끗한 수색에 우전까진 아니지만 깔끔하고 구수한 여린 녹차의 향이 짙다. 옅은 풀내가 보통의 센차와는 사뭇 다르다. 한 모금 마셔보니 정말 세작 같은 맛과 부드러움에 깊은 향이 느껴진다. 그런데 갑자기 이게 뭐야. 순간 쓴맛이 치고 올라온다. 큽. 이게 뭐지. 다시 마셔봐도 입에 들어가고 잠시뒤 쓴 맛이 올라온다. 신기한 건 수렴성과는 아주 별개의 쓴맛으로 입에서 너무 부드럽게 떫은 맛이 전혀 없다. 아무래도 특유의 고미가 있는 듯한데 센차에서 예상치 못한 고미가 올라오니 좀 놀라게 된다. 내포성은 평범해서 그래도 네 번까진 무난하게 마시는 것 같다.
다양한 온도와 비율과 시간을 시도해 봤는데 맛이 다 비슷비슷했고 특유의 고미는 사라지지 않았다. 어찌 보면 온도와 비율에 대해 유연성이 돋보인 결과이다. 찾아보니 대엽종인 아쌈을 일본에 들여와 몇몇 녹차종과 교배해서 만들어진 게 베니후키라고 한다. 메틸화된 카테킨 함량이 높아 몸에 좋다는데 그래서 쓴 거였나. 몸에 좋으니까 쓰다. 간단해서 받아들이기 좋다. 그러고 보니 새해맞이 차로도 나쁘지 않다. 쓰지만 몸에 좋은 녹차를 마시며 올해를 시작해 본다. 비로소 뭔가가 제대로 준비되는 기분이다. 24년의 첫 주를 이렇게 마무리하며 시음기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