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듐레어 Aug 09. 2023

왕은 다즐링에 우유와 꿀을 넣으신다. 난 안 넣음.

Fortnum’s Coronation Organic Darjeeling

포트넘 앤 메이슨에서 찰스 3세의 대관식 기념 제품군 (coronation collection)을 출시했다. 티웨어부터 샴페인, 커피, 케이크, 등등 많은 제품이 출시되었는데 차는 다즐링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출시 한 달여 만에 한국에도 그 다즐링이 수입되어서 주중에 겟또. (6월 말 작성해 둔 글입니다.)


별 생각없이 찍었다가 나중에 허버허버 스티커 다 제거하고 다시 촬영

통관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는지 온몸에 스티커가 발라져 있다. 식품정보 등등 틴케이스에 붙어있는 스티커들을 보니 그 옛날 직구가 없던 시절 생각도 난다. 생각해 보면 여행 다니면서 하나씩 사 오고 지인들이 사다 주고 하느라 한국에 정식 통관된 홍차를 참 오랜만에 사보는 것 같다. 유기농이라고 써있는 부분에 스티커가 붙어있던데 아마 어른의 사정으로 한국에선 유기농 표기가 어려운 듯. 라벨지를 다 떼어보면 이 차는 히말라야에서 시작되어 어쩌구 하면서 별 내용은 없.... 진 않고 대관식을 기념하여 백로 디자인 넣었다고. 기념티이기 때문에 내용물도 내용물이지만 틴이 가장 중요하겠다. 암암. 내용물에 충실하게 다시 이름을 붙이면 ‘포트넘 앤 메이슨 유기농 다즐링 세컨 플러시’ 정도. 다즐링 세컨 플러시라니 대관식 어쩌구 라인업인데 좀 많이 대중적입니다 선생님들. 뭔가 다른 고급진 상품이 더 있나 싶어서 다시 찾아보는데 찰스왕이 다즐링을 주로 마셔서 선정했다고 한다. 게다가 꿀(?)을 넣은 밀크티(????)로 마신다고.. 왕의 취향이라고 하니 더는 할 말이 없습니다만 홍차에 꿀 조합이라니. 영양사 선생님들한테 혼나요? 쨌든 아이템 선정엔 문제가 없는 걸로.

넘실거리는 다즐링 세컨 플러쉬.

다즐링을 200g이나 산다는 건 상당한 각오가 필요한 일입니다. 진하게 잡아서 300ml, 5g씩 잡아도 40 포트를 마셔야 한다. 400ml, 4g으로도 50 포트니까 하루에 세 번씩 마셔도 보름은 마신다. 이것만 보름을 마실리는 없고. 걱정이 앞서지만 상미기간이 제조일로부터 3년이에요. 스트레스받지 말고 천천히 마셔야겠다. 정 안되면 8g씩 넣고 밀크티를 만들던지. 서민이라 입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열자마자 잘 만들어진 다즐링 향이 난다. 적당히 구수하고 희미하게 풀향이 나는. 다원 퍼스트 느낌에는 당연히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냥 적당한 다즐링. 홀 리프는 아니고 적당한 브로큰인 데다 롤링이 이게 맞는 건가 대관식의 품격에 비하면 좀 그렇지 않나 싶지만 역시 히말라야 인부들의 고된 삶을 생각하며 만족하기로 한다. 근데 제 6만 5천 원을 생각하니 좀 그렇네요. 딴생각이 들기 전에 1스푼, 300ml, 2분 첫 잔을 빠르게 우려내본다.

깔끔한 다즐링이다. 머스킷이 코를 타고 넘어오거나 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깔끔. 영국느낌 나도록 빵과 잼을 곁들여본다. 아주 잘 어울린다. 역시 세컨 플러쉬인가. 버터를 씻어내는 개운한 수렴성. 티푸드에 잼을 곁들여도 아주 잘 어울린다. 무척이나 남성적인 다즐링이군. 문득 처음 홍차에 입문했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도 여왕님은 할머니셨죠. 그래서인지 왕실 어쩌구 하는 티가 이렇게 직선적이고 단순하진 않았던 것 같다. 뭐 이미 잘 기억도 안나는 옛날 일이지만. 혹시 이것은 브렉시트의 맛인가. 다시 현실로 돌아와 대관식 기념 틴을 바라보자. 입에선 그 옛날 남대문 상가에서 사 왔던 위타드 다즐링의 맛이 난다.

다즐링 엽저가 이렇게 갈색인 건 정말 오랜만에 본다.

우린 뒤의 잎을 보면 뭐 딱히 썩 그리 나쁘지 않다. 그저 내가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이다. 많이 넣고 우려서 밀크티로 마시라는 제작 의도였을까? 언젠가는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 딱히 내 취향은 아니지만.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keep calm and drink tea 해야 할 시간. 무난하고 깔끔한 대관식 기념 다즐링이었다. 끗.




추천곡 - Zadok the priest (Handel, HWV 258)

매거진의 이전글 오텔 드 빌, 호텔 아니고 시청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