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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듐레어 Jun 20. 2024

낯간지러운 기분을 사르르 녹아내리게 한 선샤인 매직

마리아쥬 프레르, T1054. SUNSHINE

이름이 길어서 다 적지 못하였으나 Sunshine 뒤에 이런 게 붙은 차다. DARJEELING HAUTE COUTURE. 오뛰꾸뛰르. 진짜 낯간지러운 기분이다. 어디 패션쇼에서나 볼법한 고오오급 작품에나 붙이는 단어 오뛰꾸뛰르. 아무리 그래도 뭐 500g 한정 수량으로 쇼에서 선보이고 한두 잔 팔면 끝나는 그런 차를 매장에서 팔고 있을 리는 없지 않은가. 이런 걸 하니까 TWG에서도 오뛰꾸띠르를 라인업 이름에 사용하기도 하고 아무튼 좀 이런 거 너무 낯간지럽다. 하지만 시향 했을 때 이거 좀 괜찮네 싶어서 덜컥 구매. 사실 오뛰꾸뛰르 어쩌고는 구입하고 나서야 본 이름이다. 가격이 정말 오뛰꾸뛰했거든. 50g에 8000엔. 믿어지세요? 100g이었으면 환율이 아무리 싸도 15만 원이었다고. 아무튼 그 귀한 차 뜯어보겠습니다.

이게 8만원어치라니.. 금테라도 둘러주시오.

다시 생각해도 진짜 비싸다. 앞으로 없을 최고가. 지난번 백차 살 때 같이 샀던 거라 이것도 아내가 옆에서 괜찮아 구매해 츄라이츄라이 해주어서 감사히 구매했다. 백차랑 다즐링 합치면 벌써 12만 원. 참고로 같이 샀던 파리스 로얄과 스모키 얼그레이는 100g에 각각 4600엔, 2300엔이었다. 못해도 다섯 번은 우려먹어야겠다 생각하면서 흐린 눈으로 소분 봉투를 바라본다. 봉투에 어디 금테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면서.

선샤인이라는 다원이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다원은 없는 것 같다. 그냥 쨍한 햇살 같은 다즐링이란 이름인 듯. 빈티지처럼 잠깐 나왔다가 없어진 건지 공홈에서 자세한 정보를 찾는 것도 어렵다. 오뜨꾸뛰르의 높은 벽.

은침이 잔뜩인데 묘하게 세컨플러시 느낌

조심스레 소분봉투를 열어보니 다즐링 특유의 마른 풋내와 더불어 레몬 내지는 오렌지의 달콤한 뉘앙스가 얼핏 느껴진다. 옛날 다즐링에서 흔히 나던 느낌인데 뭐 고급 다즐링도 아니고 아마드나 테일러 오브 헤로게이트 금뚜껑쯤에서 흔히 나던 향이다. 최근의 다즐링은 퍼스트 플러시로 유행이 가면서 어딘가 좀 녹차스럽거나 백차스러운 느낌이 있는데 굉장히 옛날 다즐링의 느낌이 난다. 건엽은 실버팁부터 갈색의 낙엽스러운 잎까지 다양하게 섞여있는데 스펙트럼이 워낙 넓어서 따로 만들어서 블랜딩을 한 건지 한 번에 발효한 건지 모르겠다.

오렌지 빛 수색

6g, 300ml, 90도의 물에서 2.5분 우려내었다. 온도나 시간을 그렇게 민감하게 타진 않는다는 점이 특이한데 100도에서 너무 삶아지는 느낌이 나지도 않고 2분이나 2.5분이나 떫거나 밍밍해지는 경향도 거의 없었다. 3분 이상 해보지는 않았지만 밀크티등 어떤 의도를 가지고 진하게 우리는게 쉽지는 않을 것 같고 그래서 그냥 스트레이트가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의견이다.

따라낼 때부터 밀향이 스르륵 피어오르고 기품으로는 홍차 중에서 최고인 다즐링의 압도적인 단아함이 느껴진다. 이렇게 단아한 느낌으로 압도적인 크기의 감동을 만들어 낼 수 있다니. 역시 다즐링이다. 한 모금 마셔보니 향긋하고 화려한 꽃향이 은은하게 코를 통해 밀려오고 홍차다운 진한 맛과 향이 혀를 스쳐간다. 이어서 풋풋한 다즐링 특유의 맛이 달달한 향과 함께 입안에서 맴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다즐링의 참 맛.

한두번만 마신 엽저. 그야말로 플랙스.

이런 다즐링을 마시면 백호오룡(동방미인)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데 누군가에겐 풀내처럼 느껴질 수 있는 다즐링의 풋풋함이 꿀향기 같은 밀향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백호오룡의 그 밀향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분명 다른 종류의 밀향이지만 그 꿀 같은 뉘앙스가 회감으로 돌아오는 경험이 질리지 않는다. 화려한 꽃향기가 나는 다즐링이 오랫만이기도 하고 이렇게 여러 차례 다즐링이 입안에서 파도처럼 되돌이 치는 느낌을 받은 것도 너무 오랫만이다. 달달한 회감까지 완벽한 마무리. 뭘 또 오뛰꾸띠르 어쩌고까지 할 일인가 싶었던 마음이 스르륵 녹아내려 충분히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선샤인 매직을 경험했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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