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면을 가졌으니까요

불안해마요, 그것 또한 뒤집어져요

by 은소리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유치원과 학교를 마치고 나면 할머니 집으로 갔다. 하원 및 하교한 뒤에 나를 돌봐주시는 분은 할머니셨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이후에는 혼자 집에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혼자서 라면을 끓여먹었고, 틈틈이 TV도 시청했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보고 싶었던 만화를 실컷 보는 것은 큰 낙이었다.


나의 언니는 흔히 이야기하는 영재성을 가지고 있었다. 대여섯 살 때 구구단을 외웠고, 독후감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언니를 키우니, 내가 언니 나이가 되었을 때 같은 희망을 품으셨단다. 나를 앉혀놓고 언니처럼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고 한다. 그런 나를 지켜보시며 두 분이서 '저 아이는 건강하게 크기만 하면 된다.'라고 약속하셨다고 하셨다. 부모님의 그 경험은 나를 자유롭게 키우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언니가 영어 과외를 하고, 수학 학원을 다닐 때 나는 집에서 빈둥거리며 놀 수 있었다. 집에서 만화를 보고 있으면 언니가 왔고, 같이 저녁을 먹곤 했다. 언니는 하교한 뒤에도 계속 바빴다. 다니는 학원도 많았는데 나는 한 번도 그런 언니가 부럽지 않았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상상하고 해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엄마 화장품으로 화장하기, 엄마 옷을 꺼내 입고 공주놀이 하기, 집에 있는 온갖 재료를 꺼내서 요리하기, 맘에 드는 책을 꺼내 읽기, 집에 누군가 들어올 때까지 실컷 낮잠 자기 등 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했다. 그 시절에는 비디오를 빌려볼 수 있는 가게가 있었는데, 그 가게에서는 책도 대여해주었다. 갖가지 소설 책부터 만화책까지 장르도 다양했기 때문에 나의 참새방앗간이 되었다. 하교할 때마다 만화책을 다섯 권쯤 빌려가,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빌린 책을 읽는 것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만화책이 없는 라면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모든 시간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엄마의 부재는 나는 독립적으로 크게 만들었다. 물론 따뜻하지 않았던 보금자리였기에 나는 늘 우울했다. 생각이 많은 아이로 자랐기 때문에 외로웠고 두려움이 많았다. 커져버린 생각을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지 가르쳐주고 소통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의 숲은 점점 거대해져 갔고 그곳을 날마다 헤매고 다녔다. 뒤돌아보니 나는 나의 숲에서 오두막도 짓고, 화단을 가꾸기도 했고, 때때로 지저귀는 새들과 함께하기도 했었다. 외롭고 슬픔으로 가득 찬 것만 같았던 그 시간은 한편으로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나는 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법을 알게 되었다.


일하기를 선택하기 이전에 나는 전업주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유년기가 너무 추웠고 서늘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그 시간을 대물림하기 싫었다. 나와 같은 사무치는 외로움을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다시 직업을 갖게 되었고, 아이들에게 "안녕, 엄마 다녀올게."를 이야기해야 하는 워킹맘이 되었다. 엄마의 부재가 아이의 정서에 영향을 끼치면 어쩌나, 나는 지금도 두렵다. 나처럼 '그때 엄마가 없어서 나는 지금까지 외롭고 힘들어'라고 훗날 이야기하면 어쩌나, 여전히 걱정이 된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쓸데없는 걱정과 염려, 두려움을 자르기로 했다. 이 세상에 단 한 면만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나의 외로움은 나를 춥고 쓸쓸하게 만들었지만, 사색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혼자 있었던 시간들은 어린 나를 방치한 것이 아니냐는 마음과 싸우게 만들었지만, 무엇이든 부딪히면 된다는 독립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세상에서 최고의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부모가 과연 몇이나 될까. 일상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은 그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나의 부모가 그러했듯이 나도 나의 일상에서 최선을 다해 살기 위해 노력한다. 매일의 삶을 꾸준히 걸어야 하기에 이제 나의 두려움과 불안, 걱정, 염려를 자르기로 작정했다. 그 대신 나의 아이들이 나처럼 나만의 낙, 즐거움을 찾길 바란다. 나의 엄마가 그 모든 행동을 눈감아 주고 그저 지켜봐 주었던 것처럼, 아이의 은밀한 즐거움을 지켜보며 지지해주기를 선택한다. 나의 걱정은 아이를 자라게 하지 못하지만, 나의 웃음은 아이를 자라게 하더라. 아이의 즐거움에 함께 웃어주는 것으로 이 쓸데없는 염려가 더이상 자라지 못하도록 덮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