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면 내가 먼저 갈게
초등학교에 다녔던 시절, 좀 더 솔직하게 말해 '국민학교' 시절에는 촌지가 성행했다. 대놓고 돈봉투를 요구하는 선생님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를 학교에 오도록 하는 방법은 참 다양했다. 지금의 내 키는 153인데, 어릴 때부터 늘 작은 키였다. 단 한 번도 '방학을 지내고 오니 5센티가 컸다'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늘 3번 이상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키가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한 선생님은 제일 끝자리에 앉히셨다.
교실의 끝자리에 앉아보는 건 정말 특이한 경험이었다. 키가 작으니 앉은키도 작았는데, 그런 내가 칠판이 보일 리가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엄마, 칠판이 안 보여." 엄마는 눈이 나빠졌는지 확인하셨는데 내 시력은 나쁘지 않았다. "갑자기 왜 칠판이 안 보여?" 엄마의 물음에 나는 그제야 대답했다. "선생님이 나를 맨 뒤에 앉혔어." 엄마는 한참을 망설이셨다. 반에서 키가 제일 작은 자녀가 뒷자리에 앉혀졌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고 계셨으리라. 하지만 내 앞에서 엄마는 이렇다 저렇다 말씀하지는 않으셨다. 그저 "선생님께 손들고 말씀드려. 선생님 칠판이 안 보여요,라고." 하며 당부하셨다. 나는 그렇게 촌지 없는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수업을 마치고 갑자기 비가 오는 날이 있었다. 특히 여름날이 그러했는데, 아침까지는 말짱했던 해가 어느새 사라지고 소나기가 쏟아지기 일쑤였다. 마구 쏟아지는 비에 학교 앞은 진풍경이 펼쳐졌다. 우산 없이 등교한 자녀를 데리러 엄마들이 총출동한 것이다. 형형색색의 우산을 들고 학교 앞에서 자녀를 기다리는 엄마의 모습이 얼마나 정겹던지. 아이들은 교실을 나오면서 제각각 자신의 엄마와 우산을 찾기에 바빴다. "엄마!" 하며 소리 지르고 달려가는 아이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나의 엄마는 갑자기 비가 오는 날에도 찾아오지 않았다. 친구들이 엄마를 부르며 달려가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처음에는 '혹시 우리 엄마도 오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빠르게 눈을 돌렸더랬다. 아무리 찾아도 엄마는 없었고, 이 경험은 쌓여만 갔다. 그 이후로 나는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더 이상 당황하지 않고 묵묵히 걷게 되었다.
학창 시절 엄마의 손길은 아이에게 드러나는 모양이다. 촌지도 없고, 학교에 한 번 찾아가지 않는 학부모,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고 하교하는 아이를 주목하는 선생님은 없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 선생님들과의 관계가 달라졌다. 엄마의 도움이 없어도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은 아이, 독립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 부모의 간섭이나 기대가 크지 않은 아이로 평가가 달라져 있었다. 선생님들의 그러한 평가는 나를 더 이상 주변에 머물지 않도록 이끌어주었다.
스스로의 내 모습을 구축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시선이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되었다. 더욱이 그 타인의 말이 힘을 가지고 있을 때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파급효과가 일어난다. 초등학생의 나나, 중고등학생의 나는 변함이 없을 텐데 어떤 평가를 받느냐에 따라 내가 달라져있었다. 어릴수록 지지와 격려를 아낌없이 쏟아부어야 함을 느낀다. 나의 가치관과 잣대를 내려놓고 그 사람만 온전히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필요한 것인가 깨닫는다.
교육봉사를 하던 때 학원에 갈 형편이 안되거나, 검정고시를 봐야 하는 아이들을 가르쳤었다. 유난히 버릇없고 입에 욕을 달고 있던 두 남자아이가 있었다. 센터에 들어가자마자 그 아이들은 내 담당이 되었다. 한 학기 정도 아이들을 가르쳤어야 했는데, 첫날부터 아이들은 말썽이었다. 선생으로 간 자리임에도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욕을 하고, 책을 집어던지고, 소리를 지르고, 서로 싸웠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 녀석들의 보통의 행동인 듯했고, 그 아이들을 제지하는 선생님은 없었다. 그날의 수업을 마치고 담당 선생님께 여쭤보니, 그 아이들은 원래 그런 아이들이니까 그러려니 하라셨다. 하지만 나는 참을 수 없었다. 그 상황에서 그 누구도 나서서 가르쳐주지 않는 선생님들에게 화가 났다. 그래서 나는 다음날 담당 선생님께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 각오를 하고 아이들을 혼냈다. 아이들은 훈육이 처음인 듯 보였다. 태도와 말투에 대해 이야기했고, 아이는 결국 분에 찬 눈물을 흘렸다. 그 뒤로 약 1-2주 동안 살얼음판과 같은 분위기였지만, 이후 그 아이들과 나는 농담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한 사람을 둘러싼 환경을 제외하고 보면 온전히 그 사람만 보인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는 그 아이를 둘러싼 부모의 평가와 환경, 주변의 말들을 지우고 나면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주변의 차고 넘치는 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나눠보면 본래의 투명한 아이가 나온다. 사실 선생이 되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관심'인 것 같다. 가르쳐주고 그를 통해 배움을 얻게 된 아이를 보는 기쁨보다 아이와의 사소한 대화에서 그를 알게 되는 것이 참 행복하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은 단순한 과정이 아니니 그 사이에 불편한 감정이 섞인다. 불필요한 것 같은 불편한 감정을 마주하기 싫다고 거리를 두면 결코 진짜 그 사람을 알게 되기 어렵다. 어쩌면 제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 자녀도 그러하지 않을까. 내 속으로 낳았다고 내가 그 녀석들의 맘을 다 알 수 있을까. 지지고 볶기를 수천번쯤은 해야, 감정의 지옥을 수만 번은 왔다 갔다 해야, 겨우 그 마음의 끄트머리를 알 수 있지 않을까. 까만 눈동자 뒤에 숨겨둔 너의 진심을 알기 위해 오늘도 나는 심호흡을 한다. 나와 너의 감정 때문에 다가가는 것을 미루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