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너를 먹지 않도록
첫째 녀석은 눈물이 많은 편이다. 화가 나서, 삐져서, 엄마가 없어서, 손을 안잡아줘서, 게임을 져서, 아빠가 동생 이야기만 들어서, 속상해서, 무서워서, 아파서 등 모든 일에 눈물을 쏟는다. 동생이랑 놀 때에도 쉽게 눈물을 쏟는다. 동생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게 속상해서 이야기하다가 울고, 너무 화가 나서 소리 지르다가 운다. 이 아이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 확인받고 허락받는 것에 익숙하다. 오죽하면 같이 노는 동생에게조차 "누나가 이거 해도 돼?"라고 물어볼까. 놀이를 지켜보는 나는 때때로 답답한 마음에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쥐어박듯이 이야기한다. 그럼 또 아이는 금세 풀이 죽는다.
처음에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면서 '도대체 누구를 닮은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의 이런 성향은 누굴 닮은 것인지 궁금했다. '나는 어릴 때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소심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대체 누구야.'라는 내 속마음은 '남편을 닮았군'이 숨겨 있었다. 나는 아니니 남편인 너를 닮아 아이가 이리도 소심한 것이 아니냐고 묻고 싶었다. 만약 내 딸의 긍정적인 면을 확인하고 싶었다면 속마음이 이리도 솔직하지 못했을까? 나는 아마도 남편이 자신을 닮았다고 이야기하기도 전에 "얘는 나를 닮았어!"라고 말했을 거다. 이리도 머뭇머뭇 거리는 것은 내가 아니라고 확인받고 안도하고 싶은 게 아닐까.
오은영 박사의 한 프로그램에서 그녀가 말하길, "부모는 두 아이 중 한 아이가 불편하기 마련이에요. 그 아이에게 친절하기 위해 애쓰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죠. 부모 자식 간에도 그런 관계가 있어요."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더불어 자신과 닮은 부분이 많을수록 부딪힌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젓고 부정해도 첫째는 나와 닮은 부분이 많았다. 나도 그렇게 툭하면 울었다. 책을 보다가 슬퍼서 울고, 매우 뜬금없이 슬픈 생각이 떠올라 울었다. 그런 속절없는 눈물을 나의 부모님도 많이 당황해하셨다. 무턱대고 이유 없는 슬픔에 빠져 훌쩍이는 나를 건져내려고 부단히도 애쓰셨다. 그럼에도 나의 대책 없는 눈물은 잘 나아지지 않았다.
애초에 첫째가 만 20개월이 되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나를 닮은 게 아니라고 밀어낼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아이를 그대로 받아들였어야 했다. 그날도 아이는 펑펑 울었다. 평소와 같이 잘 놀고 웃다가 문득 눈물이 터져서 펑펑 우는 것이었다. 첫째 아이는 말이 빨라서 18개월에도 의사소통이 가능했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큰 애 취급하곤 했는데, 그날도 나는 어김없이 아이에게 이유를 물었다. 다른 때 같으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해 줄 텐데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무릎 위에 꼭 안고 말했다. "그냥 실컷 울어, 울고 싶을 만큼 울면 괜찮아질 거야."
사람은 누구나 감정이 폭발할 때가 있다. 그 점화의 시기와 이유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 원인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 너에게는 죽고 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너와 내가 이렇게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은 머리가 클수록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양이다. 분명히 나도 겪었던 일임에도, 나는 어른이 되어 일곱 살 아이보다 이성적이라는 이유로, 아이의 울음을 받아주지 않았다. 점점 더 나는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아이의 마음이 일곱 살이 아닌 열일곱 살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건 울 일이 아니야, 왜 우는 거야? 운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어."
어젯밤에도 아이는 잠들기 전 물이 마시고 싶다고 눈물을 쏟았다. "잠들기 전에는 물을 마시지 않기로 했잖아."라고 말했지만, 그 한마디에 마시고 싶은 물이 꼴까닥 넘어가버린 것은 아니었다. 실은 첫째가 물을 마시러 가면 둘째 녀석이 졸래졸래 따라가 함께 마시려 들었다. 둘째 아이가 단유를 한 뒤에 빨대컵에 물을 잔뜩 담아 잠들기 전까지 마시다 자는 습관이 생겼는데, 기저귀를 떼어야 하는 시기가 오니 고쳐야 했다. 첫째는 아무리 물을 많이 마시고 자도 자다가 실수하지 않는데, 둘째는 아직도 잠자리에 실수를 자주 하는 편이라 물을 주지 않기 시작했던 것이다.
솔직히 나는 귀찮았다. 아침에 일어나 혹여나 발생할 둘째의 실수를 확인하기가 싫었고, 매트의 커버를 벗겨 빨래하기는 더 싫었다. 그냥 첫째 아이가 조금만 참고 아침에 일어나 물을 마시면 될 일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아이의 눈물은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았다. 잠들어야 하는 시간을 훌쩍 넘어서까지 소리가 커져갔다. 잠자리에 쥐 죽은 듯이 누워서 백만 번 생각했다. '어떡하지, 또 울지 말라고 할까. 아니면 나가서 물을 주고 올까. 둘째가 따라오면 어쩌지. 아, 어떡하지.' 그리고 아주 근엄한 목소리로 첫째를 불러 앉혔다. 짐짓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둘째에게 들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너, 잠자는 시간엔 물 먹지 않기로 했지!" 그리고 아이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네가 가서 물 먹으면 둘째가 따라가니까 세수하러 간다고 하고 얼른 가서 물 먹고 와. 혼자 가서 먹을 수 있지?" 아이는 눈물 젖은 얼굴로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이도 나를 따라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 세수하고 올게."
아이는 눈물을 멈추고 마시고 싶은 물도 먹고, 눕자마자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첫째가 나를 닮았다는 것을 인정한 뒤부터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해도 관계가 수월해졌다. 때때로 나도 모르게 욱하고 화가 나고, 아이의 뜬금없는 투정과 울음에 답답할 때도 있지만 내 안에 뜸을 들이기로 했다. 내 안에 아이를 향한 발언의 틈이 생기는 동안 아이는 혼자 우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었다.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서 울더라도 혼자 구석에 앉아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캄캄한 밤에 혼자 흐느끼며 슬픔에 잠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그 시간을 통과해 보니, 슬픔의 표현이 눈물이 되는 것만이 아니었다. 깊은 슬픔이 나를 잠식해서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렇게 울다 보면 왜 울고 있었는지조차 잊은 채, 그저 '우는 것'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아이의 웃음이 귀하듯이 울음 또한 귀하다는 걸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살아가면서 행복하고 좋은 시간만 있을 수는 없는 법인데, 나는 아이에게 '좋은 모습'만을 요구해왔다. 잘 웃고, 잘 놀고, 잘 먹는 것만큼 잘 우는 아이로 자라면 좋겠다. 눈물이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우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