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날보다 특별한 날이 될 거예요

아직도 반짝이고 있거든요

by 은소리

성년의 날이 되면 장미꽃과 향수를 받는 거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나의 성년의 날엔 장미꽃이나 반지가 없었다. 꽃다발과 향수를 받아오는 동기들이 별로 부럽지도 않았다. 내게 그 날은 기념해야 할 큰 의미가 없었다. 그보다 먼저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심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언니가 중학생이 되고 첫 월경을 시작할 때, 엄마는 아빠에게 소곤거렸다. 그 날 아빠는 밖에서 꽃다발과 가느다란 실반지 하나를 사 오셨다. 여자가 된 것을 축하한다고, 부모님은 언니에게 그 날을 기념해주셨다. 어린 나이인 내가 봐도 그 날이 뭔가 엄청난 것만 같았다. 젯밥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언제 그 날이 되어 반지를 받을 수 있는지 계산해보고 싶었다. 그 날은 "생일이 며칠 남았어?", "크리스마스가 되려면 몇 밤을 자야 해?" 등 물어보면 알 수 있는 날이 아니었다. 기한이 있는 보통의 기념일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언제 그 날이 올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언니에게는 첫 월경의 시작과 함께 귀찮은 날들을 짊어져야 하는 부담이 함께 지워졌다. 언니 손에 반짝이던 반지만 보면, '제발 나도 얼른 그 날이 오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장난감도 한 번 제대로 사주시지 않았던 부모님께서 반지를 사주시다니,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건을 접하고 나니 내게도 그 날이 곧 올 것만 같고, 그 날이 오면 끼워질 반지 생각에 마음이 들떴었다.


결국 내게도 그 날이 오고야 말았다. 불편하고 귀찮음보다 받게 될 반지 욕심이 앞섰다. 엄마에게 신이 나서 첫 월경의 소식을 알렸고, 기쁨의 그 소식이 널리 아빠에게 퍼지기를 고대했다. 그런데 그날 밤에도 아빠는 별말씀이 없으셨다. 아빠가 집에 들어오실 때 유심히 보았던 아빠 손에는 들려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실망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속상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노라니, 아빠 엄마가 물으셨다. "꽃이라도 사다 줄까?" 나는 그만 으앙 하고 울어버렸다. 하필 그즈음 가계 형편은 더욱 어려워졌다. 고작 14k 실반지를 살 형편이 안되셨던 부모님은 나를 달래려고 애쓰셨다. 나는 필사적으로 고집을 부렸고, 기어코 아빠를 따라가 작은 금은방에서 실반지를 얻어내었다.


그 무렵 우리 집은 중학교 교복도 한 벌 제대로 사 입을 형편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엄마는 '아나바다 센터'에서 안감이 다 뜯어진 큰 남자 교복 마이를 구해오셨다. 입어보라는 성화에 마지못해 입어보고 눈물을 흘렸더랬다. 그 교복을 3년 동안 꼬박 입고 다녔다. 엄마에게 말씀드린 적은 없지만 한 번도 교실에서 그 마이를 벗어본 적이 없었다. 마이를 벗어두면 보이는 안감이 내게도 부끄러움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3년을 입고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반 친구들이 단추 모양이 여학생 것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도 뭐 어쩌랴 싶었다. 이제 졸업이 코 앞이니 말이다. 그런 형편에 금반지가 가당키나 한 것인가.


내게 그 반지는 액세서리의 의미를 넘어선 것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챙겨주는 마음, 진심으로 축하받고 있다는 기분, 예상치 못한 환대, 무언가 잘한 것도 없는데 받게 된 선물이었다. 생일이 다가오면 받고 싶은 선물이 있어도 실용적인 것이어야 했고, 크리스마스에는 눈치껏 알맞은 가격대의 선물을 미리 골라야 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절로 자라난 눈치였다. 내게 반지는 그런 십여 년의 눈치를 한 순간에 깡그리 무너트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끝끝내 고집을 부려 터덜거리는 아빠의 뒤꿈치를 따라 금은방으로 나섰다. 그렇게 기어코 그 반지를 받아내고야 말았다.


그 날 이후로 나는 그 전에도 그래 왔던 것처럼 크게 요구하는 것이 없었다. 이미 부모님께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른 기념일에도 욕심을 부려 요구하는 것이 없었다. 여전히 내 손에는 반지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내 친구들 중에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그 사건이 평생의 자랑이 되었다. 친구들 앞에서 반지는 빈곤의 문제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도 내 앞을 걸어가던 아빠의 뒷모습을 잊지 못한다. 주머니에 손을 꾸욱 누르고 열쇠와 동전을 마구 휘젓는 소리, 동대문에서 산 싸구려 작업복, 뒤축이 낡아빠진 구두. 그런 아빠와 함께 걸었던 길목의 풍경과 냄새, 어슴프레 밤이 오려던 그 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 반지를 간직했다. 그 날 아빠의 마음을 끼고 다니는 것 같아서 어디에도 그냥 두고 다닐 수 없었다.


결혼한 뒤에 딸을 낳고 난 뒤,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첫째 아이가 첫 월경을 시작하는 그 날에 당신도 꽃다발과 반지를 사다 달라고 말했다. 나의 딸이 평생을 사랑과 존중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선물을 전하고 싶다. 이젠 너무 소박할지 모를 실반지를 아빠의 손에서 딸아이에게 전해주고 싶다. 너의 여자로서의 삶을 축복하며 응원한다고, 나의 아빠가 그러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