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한 마음이 먼저 달려가지 않도록.
옛날 옛날 토끼와 거북이가 살고 있었어요. 토끼는 빨리 달렸고, 거북이는 매우 느렸어요. 어느 날 토끼와 거북이는 달리기 경주를 하게 되었지요. 한참이나 늦어진 거북이를 보고 안심을 한 토끼는 낮잠이 들었어요. 거북이는 잠을 자고 있는 토끼를 지나쳐 토끼를 이기게 되었지요.
빨리 달리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던 토끼는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자신이 제일 빠르다고 생각한 토끼는 세상에서 제일 느린 것 같은 거북이와 경주를 하였다. 이 경주부터 공정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을 뽐내고 싶은 토끼의 마음은 자신을 증명해 보이려는 마음이 더 컸으리라. 느림보 거북이는 결과가 뻔한 경주를 시작했지만 쉬지 않았고, 누구다 다 알듯이 그 경기의 승자는 거북이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이 이야기가 싫었다. 대체 토끼란 녀석은 자신의 토끼 친구들과 경주하지 않고 왜 거북이랑 한단 말인가. 놀리고 싶은 마음이 머리 끝까지 있었던 게 아니라면, 이 경주가 정말 가당키나 한 것인가. 또 거북이 녀석은 왜 자고 있는 토끼를 깨우지 않았던 걸까? 잠자고 있는 토끼를 보며 마음속으로 안심을 하고 있었던 걸까. '어쨌든 두 녀석 모두 공정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이니 이 경주는 엉망진창이야!'라고 생각했었다.
대학을 입학한 뒤에 나는 한 번도 휴학을 해보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편입학을 했고, 그 이후에는 곧바로 대학원에 입학했다. 휴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왜 나라고 없었겠는가. 넉넉하지 않은 집안 사정은 '휴학'이라는 단어를 허락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빨리빨리 대학을 졸업하고 떳떳한 직업을 가져야 했다. 덕분에 대학을 다니면서 학원과 과외로 돈을 버는 삶을 살아야 했다. 나의 대학시절은 참으로 치열했다. 쉼 없이 달음박질하는 토끼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나 자신이나 주위를 둘러볼 새가 없었다. 내게 쉼은 끝, 더 갈 수 없는 포기와 같았다. 그런 내가 드디어 휴학을 하게 되었다.
대학원 석사 시절 결혼을 하였다. 논문학기였는데 당당하게 논문을 미루고 결혼을 하는 용기를 드러내었다. 담당 교수님은 마음속으로 혀를 끌끌 찼을지도 모르겠다. 결혼한 뒤에 남편은 내게 무얼 하고 싶은지 물었다. 결혼하고서도 나는 한 학기를 마쳤고, 남편에게 "나는 정말 휴학을 하고 싶어! 유치원에 들어간 이후로 대학원까지 단 한 번도 쉰 적이 없다고!"라고 외쳤다. 남편은 휴학을 경험한 평범한 대학생이었고, 그 경험은 그에게 많은 것들을 안겨주었다. 덕분에 나는 남편의 이해와 지지를 바탕으로 휴학을 할 수 있었다. 교수님의 만류에도 당당하게 휴학을 했다. 내 인생의 첫 휴학이었다.
그 당시에 나는 온전히 쉬었어야만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베짱이처럼 노래나 부르고 책도 다시 실컷 읽으면서 쉼을 누렸어야 했다. 나는 휴학을 했지만 본격적인 학원 강사가 되었다. 수학학원에 입사해서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 쉼 없이 일했다. 안 그래도 약한 체력은 금방 바닥을 드러내었다. 때마침 그 시절에 내가 난임이라는 판정도 받게 되었다.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시기였다. 일주일 내내 출근하던 학원을 주 3회로 미루다가, 6개월을 버티고 그만두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과외를 시작하였다. 나는 휴학다운 휴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학교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의 첫 휴학은 진정한 휴학이기보다 자퇴였다.
빨리 달리면 멀리 갈 수 없다는 말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지랄도 총량이 있고, 삶의 굴곡도 총량이 있는 모양이다. 사춘기도 10대에 겪어야 한다고 하지 않은가, 20대에 겪는 사춘기는 중이병보다 무섭다고 하지 않은가. 나는 이미 오래전에 휴학을 경험했어야 했다. 학생이었을 때 온전한 쉼을 누렸어야 했다. 빨리 달리든, 느리게 달리든 그때 경험했어야 하는 것을 놓치고 나니, 어떻게 하는 것이 진짜인지 모르게 되었다. 달리기만 하다 보니 목적지가 어디인지 잊어버렸고, 목적지를 잃으니 더 이상 가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그냥 그 주위를 빙빙 맴돌 뿐이었다.
나는 토끼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달리기밖에 할 줄 몰랐을 테니 경주를 하고 싶었을 거고, 하필 거북이랑 하게 되어 안도하였겠지. 상대가 거북이가 아니더라도 토끼는 빨리 달려버리고 어딘가에 주저앉아 잠시라도 쉬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토끼가 잠이 깨어 다시 끝까지 달려간 것에 박수를 보낸다. 나는 하지 못했던 그 경주를 토끼는 해내었다. 다시 달려가 이미 결승선에 있는 거북이를 마주 대한 토끼의 용기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토끼는 정말 몸과 마음이 건강한 녀석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이들에게 학업적인 면에서 재촉하게 되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고 아이의 발달에 급급해하지 않는다. 학업의 성과가 인생에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학업의 결과가 아이의 행복을 쥐어주고, 인생의 목적지를 알려주는 나침반이 된다고 보지 않는다. 차라리 아이가 뛰어가든 걸어가든 주변을 살피고 자신을 돌아보길 바란다.
내 친구의 표정은 어떠했는지, 이 날의 공기는 어땠는지, 나의 마음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더 세심하게 살피는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다. 자신의 목적이 스스로를 먹어치우지 않도록, 모든 일에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더 멀리 보길 바란다. 거북이가 되어도 좋고 토끼가 되어도 좋으니, 엄마처럼 멈춰 서서 맴돌지 말고 끝까지 멀리 달려가렴. 혹여나 엄마처럼 멈추어 맴돌게 되더라도 괜찮아, 다시 일어서면 되니까. 어떤 일에도 마음만은 조급해하지 말기를, 너의 마음은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