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든다고 진짜 흔들리면 흔들바위이겠어요?
어렸을 때부터 잘 먹지 못하던 음식이 있다. 우유는 그러한 음식 중의 하나이다. 아이라면 흔히 먹게 되는 음식인데도 우리 집에는 우유가 없었다. 친구들 집에 놀러 가면 냉장고에 늘 하나씩은 있었는데, 친구의 엄마가 권해줄 때면 나는 미적미적 이야기했다. "저는 우유 못 먹어요."
어릴 때 즐겨먹지 않았던 음식은 커서도 잘 먹지 않는 음식이 되었다. 우유, 치즈, 생크림 같은 유제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에 두유나 요구르트는 아주 좋아한다. 생각해보면 엄마가 우유를 즐겨 드시지 않으셨던 것 같다. 아빠라도 우유를 좋아하셨다면 집안에 있을 법 한데, 아빠도 우유를 싫어하셨던 모양이다. 우리 가족 중에 우유를 즐겨 마시는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언니와 나는 결혼한 이후 아이들에게 우유를 먹인다. 아이의 아빠들이 우유를 즐겨 마셨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굳어진 습관이 어른이 되어서까지 영향을 미칠 때가 있다. 식습관 외에도 옷 입는 것과 작은 생활까지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는 말이 와 닿을 때가 많다. 나는 손톱을 잘 못 기른다. 어릴 때부터 짧게 자른 손톱이 익숙해져서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손 전체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하는 것을 못 견뎌하고, 사용한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둬야 하는 성향이다. 나는 원래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을 키우면서 돌아보니 나의 환경이 나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부모의 양육방식, 생활환경, 유전 등 나를 둘러싸고 있던 것들이 나를 만들어왔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 나를 그냥 받아주면 안 되는 걸까, 나도 어쩌지 못한 것들이 결국 여든까지 간다지 않는가.
우유를 먹지 못한다는 것이 창피했던 적이 있었다. 친구들이 학교에서 우유를 받아 벌컥벌컥 마실 때, 작은 키의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너 정말 우유를 못 마셔?"라고 반문할 때 나는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었다. 일반화에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시절이 있었다. "네가 그래서 키가 작은 거야.", "아무렇지 않아, 그냥 마셔봐.", "왜? 이렇게 맛있는데." 등 나를 위한다는 명목의 충고들이 감싸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된 이후, 나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나는 유당을 분해하지 못해.", "나는 알레르기가 있어." 태연한 거짓말만큼, 타인의 생각과 시선이 더는 나를 흔들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우유 못 먹어, 원래 그랬어."라고 말할 만큼 당당하지는 못했다.
우유를 먹지 못한 것처럼, 결혼한 뒤에 나는 곧바로 아이를 갖지 못했다. 결혼하고 나면 아주 자연스럽게 바로 아이가 생기고, 부모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일 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병원에 찾아가 상담했을 때 의사는 내게 '불임 병원'을 권했다. 나는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불임'외에 '난임'이라는 것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산부인과 병원을 나선 그 길목에서 남편을 붙들고 울었다. 그날 이후 길을 지나가는 임산부만 봐도 눈물이 났다. 어째서 남들은 다 평범하게 지나가는 것들이 내게는 이토록 어려운 일인가.
때때로 서른다섯이 넘어도 결혼하지 않는 성인을 만날 때가 있다. 결혼한 지 한참이 지났는데 아이가 없는 부부를 만날 때도 있다. 강박처럼 자신의 습관을 고집하는 그 누군가를 만날 때도 있다. 알게 된 지 십여 년이 넘었음에도 절대 해서는 안될 이야기의 주제를 갖고 있는 관계도 있다. 그 모든 순간에 나는 질문이 별로 없다. 삼 년의 난임 시절 이후 나는 타인의 삶에 '참견하기'를 그만두었다. 나의 걱정, 염려와 안부로 포장된 질문이 다른 이에게는 날카로운 비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라는 말속엔 정말 얼마나 진심이 담겨있을까. "걱정되서 하는 말인데."라는 말 대신, 일상을 묻는다. 보통의 날처럼, 다른 이들처럼, 모든 것이 너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