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최선이라는 걸 알거든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 사람들에게서 받는 '주목'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 그리고 내가 한 것들에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공부하는 것이 즐거워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을 때 성취감이 나를 둘러쌌다. 작은 실수를 해도 용납받기 쉬웠고, 나쁜 점을 찾는 사람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해주는 사람이 늘어갔다. 그때 나는 한 번쯤 제대로 넘어졌어야 했을까, 성취감의 열매는 너무 달콤한 것이어서 자꾸만 나를 '무엇이든 해내야 하는 사람'으로 몰아갔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시작한 공부는 할 때마다 성과가 좋았다. 그때부터 공부하는 방법과 재미를 알기 시작했고, 공부하는 학생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은 참 달콤했다. 학업의 성과가 좋은 학생에게 주어지는 이점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학급과 학교에서 임원을 하기 쉬웠고, 교내에서 상장을 받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물론 다른 아이들과 공정하게 경쟁하였겠지만, 나를 향한 긍정적인 이미지는 보증수표 같았다. 무언가 해낼 때마다 좋은 결과를 얻기 시작하자 나는 만족하는 법을 잊게 되었다. 자족하고 만족할 줄 모르고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다. 당시 반장 선거에 여러 명이 거론되었다. 이미 고등학교 2학년 때 임원의 경험이 있었던 터라, 굳이 나는 나서지 않아도 되었었다. 게다가 학교 학생회 임원을 하고 있어서 굳이 나서서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 나를 잘 알고 있는 친구가 내게 와서 말했다. "너 이번에도 반장 해야 해? 안 해도 되면 저 아이가 하면 안 될까?" 그런 친구에게 나는 넉넉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또 그 친구 말대로 굳이 한 번 더 할 필요는 없었다. 나와 그 아이 모두 후보가 되었고, 나는 친구와의 약속대로 뒤로 물러났어야 했다. 나 대신 그 아이를 당선시켜야 했다. 친구의 말대로 그 아이는 대학원서를 쓰기 위해 학급 임원의 자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나는 굳이 내게 오는 감투를 미루지 않았고, 못 이기는 척하며 받아먹었다. 그 당시의 나는 못 이기는 척하며 자리를 받았지만, 내 마음은 맨발로 뛰어나가 덥석 받아 든 것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나의 철없는 욕심은 막을 내렸다. 한 사람의 아내가 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니 나라는 사람이 깡그리 없어지는 상황을 참을 수 없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아무것도 아닌 상황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름 없이 사는 삶이 너무 버거웠다. 뒤돌아보면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 모두 존재감이 없었던 아이였음에도 나는 그새 깡그리 잊어버렸다.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 칭찬은 나의 모든 과거를 싹 잊어버릴 만큼 달콤하고 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살림과 육아를 시작하면서 내가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과거의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살림의 노하우를 잘 알고 있는지, 육아에 탁월한 기술이 있는지가 더 중요했다. 더욱이 계속 공부만 했던 사람이었기에, 마땅히 내세울 직업도 없었다. "무슨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에 작아지기 일쑤였고, 작아진 내게 돌아오는 질문은 적어졌다.
아무것도 아닌 시간을 통과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내 안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그득그득했는데, 자꾸만 잘할 수 없는 일에만 둘러싸인 환경에 놓였다. 잘하는 일을 하고, 나를 드러내고 싶었다. 그런 나를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때마다 나는 뒷자리로 미뤄졌다. 뒤로 물러날수록 내 안에 있는 가득한 욕심과 싸워야만 했다. 처음엔 내게도 이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고, 인정한 뒤에는 지속되는 환경을 받아들여야 했고, 그리고 그럼에도 그 자리를 버텨야 했다. 아무것도 아닌 채로 그 자리를 지켜내야 하는 것을 배워야 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그 자리를 미뤘다면 나는 암흑의 시간을 좀 더 편안하게 지나갈 수 있었을까. 당시 나 때문에 뒤로 미뤄졌던 그 아이의 마음을 한 번쯤은 더 생각했더라면 말이다.
왜 사람의 마음은 화장실 갈 때와 나갈 때가 다른 것일까. 사람은 너무나도 쉽게 변하는데, 이 마음은 왜 이리도 변함이 없는 것일까. 뒤돌아보면 합리화에 강하고 자기 연민이 많은 나 같은 사람은 꼭 지나가야만 하는 터널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시간, 나만 보는 것에서 벗어나야 하는 터널을 반드시 지나야 만 했다. 캄캄하고 아득한 그곳에서 내 안에 넘쳐나는 욕심을 보았고, 그 욕심으로 인해 시달리고 있는 나와 가족이 보였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나의 남편과 아이들도 그러한 것은 아니었는데, 내 가족의 시선은 철저하게 무시한 채 다른 것만 보았다. 나의 남편은 수 없이 인정해주고 다독이며 칭찬해주었다. 나의 아이들은 터널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나를 보고도 사랑한다 이야기하며 안아주고 눈을 맞춰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게 "엄마가 최고야, 엄마가 제일이야."라고 존재만으로도 가치 있다 이야기해주었다.
내 안의 욕심에 빠져 허덕이는 동안 소중한 것들을 놓쳤다. 아이가 처음 뒤집을 때, 걸음마를 할 때, 나와 눈을 맞추고 방긋 웃을 때, 처음 수저를 사용할 때, 자전거를 타며 신나고 무서운 표정을 짓는 그 모든 시간을 놓쳤다. 다신 오지 않을 그 시간을 마냥 흘러 보내며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라고 신세한탄을 하였다. 보물 같은 시간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지 못했다. 내 눈은 캄캄한 터널 속에 박혀서 진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했다. 어차피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하지 않은가,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법인데 좋고 원하는 것에만 눈을 반짝였다. 눈을 뜨고 있지만 봐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하니, 제 몫을 하지 못하는 까막눈이었다. 터널을 걷지 않았더라면 깨닫지 못하며 까막눈인 채로 살았을 것이다.
지랄 총량의 법칙처럼, 먼지의 시간도 총량이 있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시간, 먼지 같은 시간이 있을 텐데 그 시간을 통과하며 진짜 민낯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제 막 세상에 향해 발돋움을 할 아이들에게 그 모든 시간이 제때 잘 주어지길 바란다. 행복과 기쁨을 온전히 누린 것처럼, 먼지가 되는 시간도 오롯이 통과해내길 기원한다. 그 시간을 통해 자신의 민낯을 보게 되고, 그럼에도 존재만으로도 반짝인다는 진실을 받아들여 회복할 수 있는 탄력적인 아이로 자라길 바란다. 욕심에 갇혀 허우적거리더라도, 캄캄한 터널 속에 사무치는 외로움에 휩싸이더라도,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아 주저앉아 펑펑 울더라도, 오롯이 묵묵히 걸어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