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연애의 시작

마음보다 몸이 가난한 게 낫지 않겠어요?

by 은소리

나는 그와의 카톡에서 엄청 수다스러웠다. 마음속에 있는 말을 쏟아내고 나면 또 다른 이야깃거리가 생각났다. 마치 오래전에 만난 친구처럼 끝없이 꺼내는 이야기보따리에 나 조차도 놀라고 있었다. 자꾸만 쏟아놓는 이야기에 그는 웃기도 하고 맞장구를 쳐주기도 하였다. 한 번 시작한 이야기는 끝이 없었고,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 내 손은 잠들 때까지 그대로였다.


그와 처음 만나고 헤어진 그 날, 나는 그에게 교제를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우리 두 사람의 '만남'의 전제에는 '결혼'이 깔려있었다. 당시에 그와 나는 모두 연애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연애를 할 때 소비되는 시간과 감정이 싫었고, 그는 애초에 결혼하지 못할 거란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가난한 신대원의 신분이었기에, 차라리 결혼하지 않고 혼자 그 길을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교제를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는 정말 괜찮은지 물었다. 자신은 정말 가난한 신학대학원생이라고, 자신의 미래는 롤러코스터 같은 거라며 말이다. 그런 그와 나는 시작해보기로 했다. 가난한 신학대학원의 남자와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책 읽기 밖에 몰랐던 여자가 결혼을 꿈꾸기 시작했다.


우리의 만남에서는 오히려 그가 더 수다스러웠다. 아무리 적극적으로 감정을 내비쳤다고는 하지만,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었다. 메신저로 나눈 이야기는 얼굴을 마주 보지 않았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았다. 막상 만나고 나니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눈 앞이 캄캄했다. 아무리 첫눈에 반했다고 한들, 내겐 처음 만나는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 시간은 여전히 필요했다. 메신저와 사뭇 다른 내 모습에 그는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그는 무슨 말이든 백 번쯤 생각하고 난 뒤에 한 두 마디 꺼내는 나와 달랐다. 마음에 드는 생각이 들거나 궁금한 것이 생기면 무조건 말을 해야 하는 그는 참 수다스러웠다. 덕분에 나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그의 질문에 대답만 해도 시간이 참 잘 갔다.


가난한 우리의 데이트는 걷기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신촌에서 아현동을 거쳐 시청까지 내리 걸었다. 물병을 사서 걷기 시작하면 지치는 줄 모르고 한두 시간을 걸었다. 아현동 터널을 걸어가 보기도 하고, 시청 앞 잔디에 앉아 물을 나눠 마시기도 했다. 우리에게 좋은 레스토랑이나 카페보다 길거리는 그 어느 곳보다 좋은 대화 장소였다. 길을 걷다가 목이 마르면 편의점에 들려 1+1의 음료를 사서 행복해했다. 어느 곳에서 만나느냐보다 당신과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더 중요했다. 매일같이 만나 하루 종일 걸어도 피곤한 줄 몰랐다. 종로와 청계천, 인사동, 삼청동의 골목골목을 누볐다. 곳곳에 뻗어있는 길을 걷는 것이 좋았다. 어쩌면 나는 걷는 것보다 그와 함께 끝없이 나누는 이야기가 좋았던 게 아닐까.


우리는 서로 만난 지 4번째 만에 부모님을 찾아뵙고 인사하기로 결정했다. 우리의 교제가 부모님께도 인정받고 싶었고, 내가 선택한 이 남자를 나의 부모님도 인정해주길 원했다. 아빠와 엄마에게 말씀드리고 적당한 날을 잡았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그와 나의 부모님은 처음 만났다. 그가 바로 내가 선택한 그 사람이라고, 나는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사뭇 진지하고도 힘 있게 말했다. 싱싱한 활어회를 앞에 두고, 우리는 진지한 관계를 이야기했다. 나의 아빠는 결혼은 나중일이니, 지금은 교제를 허락하겠다고 하셨다. 당장 결혼 허락을 받고 싶었던 내 마음은 서운함으로 가득했지만, 뒤돌아보면 이 또한 아빠의 지혜, 일의 순서를 아는 연장자의 마음이란 생각이 든다.


그와 가난한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 참 좋았다. 멋들어진 레스토랑이 아닌 뜨거운 여름 길을 걸으며 나눌 수 있는 대화가 많았다. 땀 흘리며 걷다 지쳐 나눠마신 물의 소중함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길에 벤치가 있다는 것이 감사했고, 지나가는 여름 바람의 시원함에 기뻐했다. 만나고 보니 동문이었던 우리는 학교에서 만나 흐드러지게 떨어지는 벚꽃길을 보고 환호했다. 우리의 데이트 장소는 크고 넓었다. 넓디넓은 길 위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았기에, 작고 소소한 것에 감사하며 기쁨을 나눌 수 있었다. 가난한 연애는 우리를 서로에게 더 솔직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그와 나는 서로에게 성숙하지 않은 채로 여름날의 보리싹처럼 자라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