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미역국은 네 것이 아니야
우리의 첫 만남은 2011년 3월 14일이었다. 세상에 널리 잘 알려진 화이트데이, 그 날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다른 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연애할 당시엔 그 날에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했던지! 까맣게 잊고 있던 그 날의 날짜를 기억하고 나니, 그때 그도 내게 화이트데이 기념이라며 컵케이크를 사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역시, 나만 관심을 표한 것은 아니었군!
만나자마자 연애를 시작하고 한 달은 빠르게 흘렀다. 네 번째 만남에 부모님께 인사했으니, 4월은 금방 왔다. 연애를 시작하니 그의 생일이었다. 그의 첫 생일에 무언가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그에게 뻔히 주는 선물 말고, 나의 성향을 듬뿍 드러낼 수 있는 그런 선물 말이다. 내가 대학생이 되고 난 뒤부터 엄마는 나에게 미역국 끓이는 법을 알려주셨다. 공부하느라 바쁘다면서 집안일은 절대 시키지 않으셨는데, 그런 내게 미역국 끓이는 방법만은 꼭 알려주셨다. 밥하는 방법 조차 몰랐던 나에게 미역국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던 이유는, 나의 생일에 엄마를 위해 끓이라는 주문 때문이었다. 엄마는 내게 그리 가르치셨다. 나의 생일엔 너를 낳기 위해 애썼던 엄마를 위해 미역국을 끓이라고 말이다. 덕분에 나는 내 생일 전날 저녁부터 미역을 불려서 다진 마늘과 참기름에 달달 볶아 물을 붓고, 양지머리를 넣고 푹 끓였다. 국간장에 간을 하고 엄마에게 가져다 드려서 간이 맞으면 합격, 아니면 엄마가 다시 간을 맞추셨다.
생애 생일이 일 년에 단 하루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미역국을 끓일 때 깨달았다. 미역국을 끓이는 것이 퍽 귀찮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매끼 밥을 해주는 엄마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그제야 들었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소고기 미역국을 제법 끓일 수 있게 되었다. 엄마의 교육은 엉뚱한 데서 빛이 났다. 나는 그의 어머니에게도 미역국을 끓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동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말하길, 그의 어머니는 고기를 전혀 드시지 못한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소고기 미역국 말고 다른 미역국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결국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엄마는 딸내미의 남자 친구 생일을 위해, 그의 엄마에게 드릴 미역국을 같이 끓여주셨다.
엄마는 고기를 드시지 못한다면 조개를 사서 육수를 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엄마와 함께 시장에 가서 조개를 사고, 해감을 한 뒤 육수를 끓여 내었다.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미역을 불리는 것 밖엔 없었다. 해감 하는 것과 육수를 낸 뒤 미역을 넣고 맛을 내는 것은 모두 엄마가 하셨다. 엄마는 아주 간단한 일들만 지시하셨는데, '조개껍질과 조갯살을 분리하기', '미역을 다진 마늘, 참기름과 함께 볶기', '볶은 미역과 육수를 합쳐서 끓이기' 등이었다. 맛을 내는 중요한 일은 엄마가 담당하셨다. 조갯살을 넣은 미역국을 어떻게 맛을 내야 하는지 나는 아무리 인터넷을 찾아봐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4월 13일 아침, 나는 미역국을 락앤락 통에 담아 지하철을 탔다. 그의 생일에 미역국을 담아 그의 어머니를 드리기 위해서 말이다. 당시 나를 보신 어머니께서는 적잖이 놀라셨다. 그 날은 그의 생일이었고, 어머니께서 받아 든 미역국이 아들을 위한 것이 아닌 본인을 위한 것이라니. 게다가 '성빈 씨 낳으시느라 수고하셨으니 어머니 드시라고 끓여왔어요.'라는 말을 하는 아들의 여자 친구라니. 어머니의 당황과 놀라움은 나에게까지 느껴졌다. 미역국을 드리고 서둘러 그와 집을 나섰다. 그와의 생일 파티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나의 철딱서니는 과했다. 그를 향한 나의 필살기가 과했듯이 말이다. 그는 이런 나의 '과한 성향'을 슬슬 느꼈던 모양이다. 어쩌면 그의 어머니도 만난 지 고작 한 달 된 아들의 여자 친구가 건넨 미역국이 마냥 반갑진 않으셨을지도 모르겠다.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분을 위해 미역국을 끓이신 엄마는 또 어떠셨을까. 나의 과한 행함은 언제나 모두를 당황시키고, 나만 뿌듯해하고 즐거워했다. 결혼을 위한 나의 연애에서도, 그를 만나고 맞이한 첫 생일에서도 나의 만족을 위해 움직였다. 아무리 결혼을 위해 만나고 있다고 하더라도, 고작 한 달 된 연애에 그의 생일 선물만 챙기면 될 일이었다. 나는 철딱서니만 과한 게 아니고 생각도, 행함도, 남을 위한다는 마음도 과했다. 과해서 흘러넘치고 있는 줄 나만 몰랐다. 정작 그의 첫 생일에 그를 위한 선물은 무엇을 해주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으니 말이다.
종종 남편은 내게 "당신은 좀 과해, 그 정도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라고 말해왔다. 시작하는 마음은 참 좋은데 늘 조금씩 과하다고 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연애사를 뒤적여보니 실소가 나왔다. 내 인생에 '정도껏'은 없었다. 그의 생일에 가져간 미역국은 결국 나의 만족을 위한 것이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었던 거다. 그에게 사랑받는 것으로 만족하면 되는데, 나의 과함은 욕심으로부터 시작한 것이었다. 내 욕심을 직면해야 과함을 끊어낼 수 있었을 텐데 당시엔 내 욕심과 직면할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나의 과함이 약함이 된다는 것을 몰랐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