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과 불안 사이
그가 나의 부모님을 연애를 시작한 지 4번째 만에 만났듯이, 내게도 그의 부모님을 찾아뵐 날이 다가왔다. 말로만 들었던 시댁의 문턱을 넘는 날이 내게도 다가온 것이다.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긴장을 했는지 말도 다 할 수 없었다. 전날 옷장 문을 수십 번 열고 닫기를 반복했다. 어떤 옷이 적당한지 선택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그 날이 결국 오기는 했다. 그의 집 골목은 아주 오래된 옛날 어릴 때 뛰어놀던 그 거리 같았다. '신용 종합 설비' 가게 뒤에 방한칸에 살았을 때의 그 골목길과 매우 닮아있었다. 2011년에 사는 우리인데 골목길은 90년대에 멈춰있는 것만 같았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가게들, 비좁은 거리 사이로 차와 사람들이 어지럽게 지나다녔다. 그 와중에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고 웃으며 뛰어다녔고, 곳곳에 맛있는 분식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익숙한 골목길 풍경 덕분에 나의 긴장과 불안은 가라앉았다. 동동 떠다녔던 나의 마음도 익숙한 냄새와 함께 차분히 내려앉을 수 있었다.
당시의 나는 A형 간염을 앓고 난 뒤였다. A형 간염을 앓고 난 뒤로 나는 입맛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고등학생 때는 나 혼자서 삼겹살 한 근을 거뜬히 먹을 만큼 먹는 것에 뒤로 빼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먹을 것을 좋아하고, 늘 입에 달고 살 만큼 먹는 즐거움을 느낄 줄 아는 인간이었다. 그런 나도 약 6개월간의 간염 치료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코를 찌르며 침샘을 폭발시키는 음식이어도 한 두 번 먹고 나면 입맛이 뚝 떨어졌다. 사람마다 병치레의 현상이 다르겠지만, 나는 병치레 후 입맛이 너무나 달라졌다. 배가 불러 더부룩한 상태가 너무 견디기 힘들었고 한입 정도 맛만 보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그의 부모님은 따뜻했고 사랑이 많은 듯 보였다. 그럼에도 나는 불편하고 어려운 마음이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를 만났느냐의 문제가 아닌, '시부모님'이라는 대명사로 눌린 부담 때문이었으리라. 게다가 부모님과의 식사 자리는 너무나 어려웠다. 어르신들은 한 그릇의 밥을 맛있게 푹푹 떠서 먹을 줄 아는 사람이 예뻐 보이기 마련인데, 나는 그런 스타일과 너무 멀었다. 고봉밥을 보고 마음이 어려웠다. 깨작거리며 젓가락으로 밥을 떠서 먹는 내가 과연 예뻐 보이긴 할까 싶었다. 나를 데리고 외식할 때만 간다는 횟집으로 가셨는데, 그곳에서도 나는 여전히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고 젓가락으로 음식을 들었다 놓았다. 그의 어머니는 내게 생선살을 계속 발라주셨다. "뭘 좋아하니? 생선은 좋아하니?"라고 확인하시는 그의 어머니 앞에서 나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 좋아하는데요, 많이 먹지는 못해서요."
당시의 남편과 연애를 할 때, 나는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밥을 겨우 두 숟갈 먹었다. 두 숟갈을 먹고 배가 부른 느낌이 들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나를 본 남편은 아연질색을 하였고, 나의 남은 밥은 그가 대신 해결해주었다. 그렇게 적게 먹는 나도 사람인지라, 그와 조금 걷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그래서 나는 다시 치킨이 먹고 싶어 졌고, 배가 부른 그를 꼬셔서 다시 치킨을 먹었다. 당시 나의 식습관은 이렇듯 적게, 그러나 아주 자주 먹었다. 나를 만난 뒤 그는 필히 다이어트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이야기했다. 치킨을 앞에 두고 또다시 두 세 조각을 먹고 포크를 내려놓았으니까.
며느리를 맞이하는 시어머니께서 보시기엔 내가 얼마나 마땅찮으셨을까 싶다. 밥 한 그릇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너무 자주 음식을 먹어야 한다니. 가정을 꾸려서 아기를 낳을 수는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진 않으셨을까. 아내라면, 엄마라면 세 끼 밥을 해내고 아이들을 길러낼 힘이 필요한데, 왜소하고 작은 아이가 그 일들을 해낼 수 있을까 싶으셨을게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내게 끝까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나중에 들은 일이지만, 나를 보시기 전에 이미 아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셨다고 했다. 그는 나의 단점만 콕콕 그의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키가 작고, 밥을 잘 못 먹어요. A형 간염을 앓았었대요. 그래서 자주 먹는데 그것도 많지는 않아요." 그의 이야기에 어머니는 걱정되는 마음에 몇 가지 물으셨단다. "키가 어느 정도인데? 많이 작아? 어디가 아팠다니? 지금은 다 나았다고 하니?" 내가 그의 부모였어도 몇 번을 되물었을 텐데, 그는 그런 어머니에게 버럭 화를 냈다고 했다. 어머니께서는 만난 지 몇 번이나 되었다고 벌써 이놈이 그 여자에게 홀딱 마음을 빼앗겼구나 싶으셨다고, 너무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이 불 일듯 일어나셨다고 했다. 아, 철딱서니 없는 남정네여.
어쩌면 나는 아들의 이야기를 확인하는 식사자리에 앉아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저것밖엔 안 먹는구나, 지금은 몸이 튼튼한 걸까,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도 될까.' 등 수없는 걱정이 나를 둘러싸고 있지는 않았을까. 익숙한 골목길에 가라앉은 나의 긴장은 식사 내내 동동 떠다녔다. 나의 긴장은 내 눈을 어둡게 해서 그 모든 걱정을 알아챌 눈치를 가려주었다. 덕분에 나는 어머니의 걱정과 불안을 눈치챌 여력이 없었다. 나 나름대로 맛있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고, 나는 그의 눈을 보며 여전히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