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부재
사랑하는 연인에게도 시련은 찾아오게 마련이다. 아주 사소한 문제에서부터 결혼을 준비하면서 맞닥뜨리는 심각한 일까지, 백 가지도 넘는 이유로 싸움이 찾아온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는데, 연인 사이의 싸움은 끝이 되기 십상이다.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부부는 어떨까. 따뜻한 봄날 같았던 우리의 관계에도 서늘한 바람이 불었고 우리는 아니, 더 정확하게 나는 제법 심각하게 싸웠다.
며칠 전 한 영상에서 제일 좋지 않은 싸움의 유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그 소장은 관계에서 제일 좋지 않은 싸움은 그 날의 옷차림, 날씨, 장소는 기억이 나는데 정작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나의 심각한 싸움이 그러했다. 그 날 우리는 서로 만나지 못했고, 카톡으로 심각하게 싸우다가 나는 그만 열폭을 했다. 정말 심각하게 감정이 상해서 이 결혼을 해도 되는 걸까, 고민을 할 정도까지 나아갔다. 그런데 정작 무엇 때문에 이토록 화가 났던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그 날 왜 싸웠는지 도통 모르겠다. 며칠 전 남편에게 이 날의 기억을 물었었는데, 남편마저 싸움의 주제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 날은 더운 여름이었다. 당시 그의 옷차림은 반팔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싸움의 주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동안 카톡으로 설전이 오갔다. 나는 너무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을 토로했고, 내가 느끼기에 그는 그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한데, 어쩌면 나는 서운해하고 그는 별 거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여자의 마음은, 더욱이 나의 마음은 아주 작은 일에도 한 번 어긋나고 삐끗하면 크게 토라져 버리니 말이다. 엄청난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데 더 이상 내 카톡에는 '읽음'표시가 나지 않았다. 나의 메시지 옆에 선명히 붙어 있는 그놈의 '1'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 날 오후에 그는 아는 형을 만나러 간다고 했었다. 아니, 아무리 형을 만나러 가도 그렇지 우리가 이렇게 싸우고 있는데 답을 안 한다고? 아니, 내 카톡을 읽지 않는다고? 나의 감정은 견딜 수 없이 상승했고 나 혼자 폭발했다.
그 날 나는 그가 나의 카톡을 읽고 답하지 않는 시간 동안 카카오톡에서 그를 지웠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도 대답 없는 그에게 화가 나서 아예 카카오톡 메신저를 지워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에게 전화나 문자 한 통이 오질 않았다. 아, 무정한 당신이여! 나는 비참한 마음으로 다시 앱스토어를 만지작거렸다. 카카오톡을 다시 다운로드해야 하는지 망설이던 참이었다. 우연히 들어간 페이스북에 그의 포스팅이 올라왔다. 해맑은 얼굴로 엄지척을 하며 운동장에서 신나게 달린 후에 너무 개운하다는 그의 사진과 글이 올라온 것이다. 그는 형과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느라 나와의 카톡이나 싸움은 뒷전이었던 것이다. 대체 그동안 내가 한 이 감정 소모는 뭐지? 나는 너무 억울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고, 화가 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난 대체 누구랑 싸운 거야?'
그는 올림픽 주경기장으로 형을 만나러 갔다고 했다. 그곳에서 신나게 트랙을 뛸 수 있어서 너무 기뻤다고 했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서 형과의 만남에 집중했고, 나와의 싸움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박수도 부딪혀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그는 나만큼 심각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내겐 관계를 멈춰야 하나를 고민할 만큼 심각했다고 한 말에 그는 뛸 듯이 놀랐다. "뭐? 아니 그게 그렇게 큰 일이야? 카카오톡을 지웠다고? 뭐? 나를 지웠었다고?" 그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내게 되물었고, 나의 급한 성질에 대해 이야기했다. 관계의 신뢰까지 이야기하는 그 앞에서 나는 결국 "미안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싸움의 주제가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니, 애초에 싸움이 될만한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나는 마음 한 편이 억울하다. 그 날의 나의 감정과 요동치던 마음들이 왜 내가 사과할 일이란 말인가! "아무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더라도, 내 메시지에 답을 해줬어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여전히 나는 그에게 따진다. 종종 남녀관계에서 여자는 '감정'을 이야기하는데, 남자는 '문제'로 답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미 모르는 바가 아니니 내 마음을 알아달라는 이야기 앞에서 남자는 '별로 큰 문제가 아닌데.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라고 답한다. 그런 남자 앞에서 내 마음은 늘 소리친다. "이 바보야, 그걸 모르는 게 아니라고!" 대화의 '아'와 '어'가 다르니, 이야기가 이어질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아무리 '아'라고 이야기 한들, 그의 귀에는 '어'라고 들리니 말이다. 남녀의 말하기와 듣기가 이렇게 다르다는 걸 그동안 왜 몰랐던 것일까! 서로의 말을 바꿔야만, 서로의 듣는 마음을 바꿔야만 비로소 소통이 된다는 걸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