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서운하긴 해
잘 먹지 않았음에도 배가 아픈 날이 많았다. 소화가 잘 안되고, 배가 아팠는데 그 모든 이유가 다 A형 간염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소화를 못 시키고, 배가 아파서 끙끙거려도 그냥 체했으려니 했었다. 며칠 설사를 계속하고, 도저히 참을 수 없이 배가 아파서 병원을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다른 큰 병원에 가볼 것을 권유했고, 나는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추천서를 받아 들고 종합병원으로 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엄마와 찾아간 종합병원에서 내가 받은 병명은 맹장염이었다. 안도의 한숨과 수술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교차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나와 엄마를 안심시키며, 요즘은 복강경으로 수술을 하니 회복이 빠를 거라고 하셨다. 복강경이 어떤 수술인지 알 수 없었지만 개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안심이 되었다. 어쨌든 병원에 찾아간 그 날 나는 바로 입원을 했다. 내 생애 수술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다시 병원복을 입고 수술 날짜를 받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맹장수술은 수술도 아니라고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그 또한 수술이니 말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그에게 나의 상황을 전했다. 최대한 불쌍한 환자의 코스프레를 하며 '내가 배가 많이 아파, 그래서 병원에 왔는데 수술을 해야 한대.'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사실 내 깊은 속 마음은 그가 나를 진정으로 걱정하며 한달음에 달려오길 바랬다. 결혼할 여자 친구가 아프다니, 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그가 알아채 주길 바랐다.
그 당시에 매우 유행하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기성 가수들이 경연에 참가해서 노래하는 콘텐츠였다. 이름하여 '나는 가수다'. 이 프로그램의 애청자들의 꿈은 한 번이라도 경연장, 녹화장에 참여해서 투표하는 것이었다. 나와 그는 모두 이 프로그램의 애청자였다. 사실 그 당시에 이 프로그램을 본 사람이라면, 애청자가 되기 쉬웠다. 그래서 나와 그는 모두 녹화장에 한 번이라도 갈 수 있길, 나의 참여 신청이 당첨될 수 있기를 바랐다. 직접 그 현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경연을 보고 투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한 꿈은 애청자들의 바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 꿈을 그가 이루어내고야 말았다. 내 수술 날 말이다.
수술하기 전날 친구들이 찾아와 주었다. 금식을 앞둔 내 앞에서 치킨과 빵, 갖가지 간식을 싸들고 와서 신나게 먹고 왁자지껄하게 보내고 돌아갔다. 링거를 맞고 있어서 배가 고프지 않았다. 오히려 수술 전날 긴장하고 있을 나를 위해 찾아와 준 친구들이 고마웠다. 친구들 덕분에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편안히 전날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수술 날, 긴장한 내 옆을 엄마는 살벌하게 지켜주었다.
남들은 별 거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수술이었어도, 전신마취였고 정신을 차리고 나니 배가 타들어가는 듯이 아팠다. 전신마취 뒤엔 잠을 잘 수 없다. 간호사는 마취에 취해 졸지 말고, 길게 호흡해야 한다며 신신당부를 하고 떠났다. 또 수술 뒤에 경과를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소변도 볼 것을 강조했다. 너무 아파서 걸을 수 없다면 소변줄을 꽂아주겠다고 말이다. 병실로 돌아온 나는 엄마의 특급 훈련을 받아야 했다. 고작 맹장수술에 교수 특진 수술이 말이 되느냐며, 얼른 회복하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내가 나서서 교수님께 특진을 받겠다고 추천서를 받으러 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엄마는 불같은 눈동자로 졸고 있는 나를 깨워 호흡을 시켰다. 배가 아파서 꼼짝할 수 없는 나를 일으켜 세워 결국 화장실에 데려갔다. 회복실에서 돌아오자마자 화장실에 기다시피 걸어갔고, 화장실에서 만난 간호사는 휠체어를 가져다주었다. "어머니! 지금 수술 마치고 온 환자를 이렇게 데려오시면 큰일 나요!"라며 말이다.
그 이후로도 링거를 끌고 병원 복도를 걸어 다녀야 했다. 빠른 회복과 그에 따른 퇴원을 위해서 말이다. 엄마의 살벌한 간호 덕분에 회복이 빨랐을 테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달콤 살벌한 울 엄마의 등쌀에 못 이겨 병원 복도를 걸어 다녀서 나의 퇴원 시기는 빨라졌다. 이 모든 수술과 회복을 거치는 동안 그는 경연장에 갔었다. '나는 가수다'의 녹화장에서 자신도 한 번 카메라에 스치길 바라면서 말이다. 아, 무심하고 비정한 남정네여! 병원 복도를 걸어 다닐 때, 녹화하느라 바쁜 그에게 간간히 녹화장의 분위기를 알리는 메시지가 왔다. 무척 신나 하는 기분과 함께 말이다.
아무리 결혼을 앞두고 있다 한들, 첫눈에 반한 남자와 미래를 꿈꾼다 한들 현실은 변하지 않는 법이다. 어릴 때 자주 듣던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이야기는 정말 동화에서나 나올 수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사랑하는 것으로 나의 모든 것이, 현실과 아픔까지 달라질 수는 없는 법이다. 나의 맹장수술도 현실의 한 복판에 있었고, 그럼에도 우리의 연애는 진행 중이었다. 내가 그를 사랑하고 연애를 하고 있다고 해서 그가 나의 간호를 담당한 것은 아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가 녹화장에 간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삶과 나의 삶에 일정한 간격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서로 간에 바람이 통하게 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글이 생각난다.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서로의 삶을 인정하고 거리를 둘 줄 알아야 더 건강하게 오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퇴원하기 전날 하룻밤 병간호를 하러 병원에 찾아왔다. '이 무심한 남자 친구야! 여자 친구가 병원에서 수술을 하는데 한 번을 안 와보니!'라는 내 성화에 못 이겨서 말이다. 곰 같은 덩치의 그는 간이침대에 누워 나의 아픔을 함께해주었다. 당시에는 너무나 서운하고 못마땅했었는데, 지금은 너무 적당한 거리였구나 싶다. 더욱이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간단한 수술에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너무 판타지가 아닌가!
무심한 그는 나의 병실에서 하룻밤의 고생으로 연애의 대가를 치렀다. 덕분에 나는 세상에서 제일 아프고 불쌍한 여자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싶다. 그는 그가 그토록 원했던 프로그램 녹화방송에 참여할 수 있었고,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했다. 관심과 사랑, 인정과 격려를 받고 싶어서, 내 일에 그를 끌어들이고픈 욕구가 치밀어 오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사실 두고두고 이 일에 대해 남편에게 놀리듯이 이야기한다. '너는 정말 무심한 남자였어!'라며 말이다. 그런데 정말 솔직히 돌아보면, 그 당시 우리의 거리는 관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거름이었다. 나의 서운함과 속상함은 불쑥 찾아오는 불청객이었다면, 그 날 우리의 거리는 서로를 위한 태도의 첫걸음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게 불청객은 강한 인상을 주기 마련인지라 서운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