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으로 순댓국을 추천해요
분명히 처음엔 우리도 스드메와 웨딩플래너 따윈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그와 스냅사진도 찍으러 다녀온 것이었다. 그런데 나와 그도 뚝심이 없는 보통의 사람이었다. 주변의 걱정 어린 관심과 애정 어린 잔소리 덕분에 웨딩플래너와 계약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 우리의 팔랑귀를 그때 알아봤어야 했다.
소개받은 웨딩플래너는 마치 자신의 웨딩을 준비하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드레스를 고르러 가는 것, 스튜디오를 정하고 메이크업할 미용실을 정하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것인지 몰랐다. 나는 '잘 알아보지 않는', '인터넷 검색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나만 몰랐었는데, 예비 신부들이 가입하는 다음 카페가 있었다. 그곳에서 각종 정보를 서로 공유하며, 어느 스튜디오와 미용실의 작업이 좋은지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다. 예비신부들의 경험담이 쏟아지고, 그곳에서 받은 정보들을 토대로 예비신부들은 미리 자신만의 리스트를 뽑아놓고는 했다. 나조차 몰랐던 나의 성향이 여기서 빛을 드러냈다. 나는 그 모든 일을 하지 않았다. 다음의 그 카페 이름을 아직도 알지 못한다. 가입해서 정보를 검색하고, 다른 이의 경험담을 읽어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나만의 리스트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생각만 해도 고구마 백만 개를 먹은 듯이 답답해졌다. 웨딩플래너는 이런 나를 보며 기함을 하며 말하였다. "어머, 이런 신부님은 정말 처음이에요!"
대충 몸에 맞으면 될 일이고, 나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웨딩플래너의 추천이 더 믿을만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검색해서 알아보고 싶지 않은 내 핑계이다. 나는 인터넷에서 이것저것을 비교하며 검색하는 그 모든 행위를 정말 싫어한다. 이런 나 때문에 신랑이 될 그는 다음의 카페에 가입을 했다고 했다. 예비 신랑이 가입해서 검색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고 그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었다. "하고 싶은 사람이 하는 거지 뭐."라는 내 말에 그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야 말았다.
그런 내게도 드레스를 고르는 날이 다가왔다. 그와 나는 드레스를 고르며 어떤 드레스를 입고 촬영을 하고, 본식에서는 어떤 드레스를 입을지 골랐다. 커튼 속에서 난생처음 드레스를 입고 사랑하는 그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정말 어색하고 쑥스러운 일이었다. 이상하게 보이면 어떡하지, 이런 옷은 처음 입어보는데 안 어울리면 어쩌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정말 고맙게도 커튼이 걷어질 때마다 그는 너무 예쁘다고 칭찬해주었고, 그의 칭찬 덕분에 나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지금도 드레스를 입어볼 때마다 손뼉 쳐 주었던 그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매번 같은 리액션으로 반응하지 않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택한 드레스를 입고 웨딩 촬영을 마쳤다. 그 당시에는 사진작가님이나 촬영을 도와주시는 이모님에게 따로 준비할 것이 없었다. 요샌 촬영을 도와주시는 스튜디오 분들을 위해 도시락을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쓸데없는 에너지 소비가 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곳에서 우리도 행복해하며 하루 종일 사진을 찍었고, 우리의 촬영을 도와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했다. 하지만 촬영이 다 끝난 뒤에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드레스컷의 필름이 통째로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으니 액자를 하나 더 받거나 촬영을 다시 하는 것 중에 선택하라고 하였다. 촬영을 다시 하라니, 생각만 해도 정말 암담한 일이었다.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나와 그는 하루 종일 해야 하는 그 일을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액자를 선택했고, 우리의 촬영에 함께 해 준 친구들의 사진으로 액자를 채웠다. 액자를 받고 나서 그와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친구들이 찍어준 사진이 더 낫지 않아?" "그러게, 이것마저 안 찍어줬다면 우린 이 드레스컷이 아예 없을 거야."
결혼을 준비하러 가는 동네는 청담, 그 주변이었다. 스튜디오와 드레스샵, 미용실은 왜 모두 청담과 압구정에 있는 걸까? 그곳에서 사진 촬영과 선택, 드레스를 픽업하고 미용실에 갈 때마다 우리는 낯선 거리에서 한참을 헤매었다. 우리는 연애를 하는 동안에 종로거리를 수십 번 거닐었지만, 한 번도 강남으로 내려가진 않았었다. 그와 나는 설렁탕과 순댓국의 뜨거운 국물에 행복해했고, 편의점의 원플러스 원 음료에 만족해했다. 그런 우리가 청담동 골목길을 걷고 있으니 맞지 않는 옷을 걸친 기분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곳에서도 순댓국집을 찾아 골목을 헤매었고, 마침내 우리의 맛집을 찾아내었다. 우리의 맛집이 생긴 덕분에 청담동에 갈 때마다 넉넉한 마음으로 길을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나의 결혼 준비의 팔 할은 청담동의 순댓국이다. 매우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이 꼭 결혼식 같다. 화려하고 반짝이는 결혼식 뒤엔 정말 치열하고 팍팍한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 스테이크, 각종 뷔페 음식으로 시작한 우리의 결혼식이지만, 매끼 그런 음식을 먹으며 일상을 살아낼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결혼을 준비하는 그즈음 감명 깊게 읽은 책의 저자 목사님과 통화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었다. 우연치 않은 기회에 어색함과 무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드렸고, 그분은 내게 신신당부를 하셨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결혼식을 위해 기도하지 말고, 결혼식 이후의 삶을 위해 기도하세요."라고 말이다. 당시엔 알아채지 못했던 그 말에 이제는 고개를 끄덕이고 무릎을 치게 된다. 화려한 식을 위해 준비하러 갈 때마다 순댓국은 내 속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뜨끈하고 진한 순댓국 같은 일상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결혼을 맞이하는 마음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