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결혼해줄래?

소박해서 좋아

by 은소리

결혼 준비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상견례도 끝났고, 웨딩촬영도 마쳤다. 급기야 허니문으로 향할 여행지도 골랐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뭔가 준비가 다 된 것 같지 않았다. 결혼식을 위해 식장과 식당까지 선택하고 난 뒤에 그에게 말했다. "그런데 프러포즈는 안 할 거야?"


애초에 연애를 시작할 그 당시부터 우리는 결혼이 전제되어 있었다. 결혼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연애는 서로에게 불필요한 것이었다. 연애를 하려고 만난 것이 아니었으니, 우리 사이에 이 모든 절차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니 만난 지 4번째에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던 것이다. 그렇게 한 계단씩 밟아 올라가 보니 결혼식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상견례를 마치고 결혼식을 위한 드레스를 고르고, 웨딩촬영까지 마치고 나니 정말 결혼이 실감 났다. 양가의 합의로 결혼식 날을 잡았다. 가난하고 소박한 우리의 연애답게, 결혼식도 그의 교회당에서 하기로 했다. 그리 넓지 않은 작은 교회당, 마땅한 신부대기실도 없는 그곳에서 마침내 결혼을 하기로 한 것이다.


물이 흐르듯 절차를 밟아나가던 그에게 나는 딴지를 걸었다. 아무리 잠자코 기다려도 그가 프러포즈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차피 연애를 시작한 것도 내 쪽이었으니, 프러포즈가 어찌 되든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내겐 중요한 문제였다. 사실 만남을 시작하게 된 것이 나의 적극적인 의사표현 덕분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프러포즈만은 그에게 반드시 받고 결혼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의 오기는 이상한 지점에서 발동이 걸렸다. 내게 그의 프러포즈는 잠자코 기다릴 문제가 아니었다. 경박스럽게도 나는 그에게 프러포즈를 재촉하기에 이르렀다. 나의 재촉에 그는 "조금만 기다려봐, 생각 중이야."라고 나를 다독였다.


여자에겐 남자와 다른 또 다른 감각이 있는 모양이다. 그날 그는 내게 명동에서 만나자고 했다. 집에서부터 이상한 감각이 발동되었다. '어, 왠지 오늘인 것 같은데.'라는 생각에, 차분히 화장대에 앉아 곱게 화장을 했다. 예쁜 옷을 차려입고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명동에서 그를 만나 함께 남산으로 올라갔다. 남산타워 아래에서 그와 나는 나란히 앉았다. 커피를 시키고 앉아있으니 어마어마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제법 쌀쌀한 날씨와 격한 바람 덕분에 우리는 더 이상 앉아있을 수 없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그는 그곳에서 프러포즈를 할 생각이었는데 도저히 바람 때문에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너무 추워하는 나 때문에 커피를 마신 뒤에 황급히 길을 나섰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는 프러포즈를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 오늘이 아닌가 보네.' 아쉬움과 함께 그와 남산을 내려왔다.


이미 커피를 마신 뒤라 어디에 들어가기가 애매했다.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도 그는 자꾸만 커피숍을 가길 원했다. 나는 이미 프러포즈의 마음을 접은 뒤였다. "커피는 이미 마셨잖아. 왜 자꾸 커피숍에 또 가자는 거야? 밥 먹으러 가자." 눈치 없는 내 말에 그는 길을 서성였다. 한 참 동안 명동을 돌다가 그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밥은 나중에 먹기로 했다. 아무리 밥을 이야기해도 그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또 커피에 돈을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와 나는 함께 명동에 하나 남은 민들레영토로 들어갔다. 나는 남산에서부터 너무 추웠었는데, 명동을 몇 차례 돌고 나니 몸이 더 얼 것만 같았다. 꽁꽁 언 몸과 손을 녹이며 차를 마셨다. 그런 내게 그가 편지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그의 편지는 작은 상자가 무엇인지 말해주었다. 그는 몇 차례 고민하고 고심하며 단 한 번뿐인 프러포즈를 멋있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고 했다. 마땅한 아이디어도 생각나지 않았고, 돈도 없었다고 했다. 그가 편지와 함께 내민 상자에는 그가 인턴쉽으로 미국에 다녀왔을 때 그의 어머니를 위해 사온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프러포즈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아들을 위해 자신이 받은 목걸이를 내미셨다고 했다. "이 목걸이를 주면서 프러포즈하면 어떻겠니?"라고 말씀하셨고, 그는 그 목걸이와 손편지를 내게 내민 것이었다. 가난한 우리의 연애는 이처럼 푸르게 빛나는 프러포즈로 이어졌다.


결혼한 뒤, 종종 사람들이 어떤 프러포즈를 받았는지 물을 때마다 어머니의 목걸이를 받았다고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빛나는 어머니의 목걸이로 프러포즈를 받았노라 이야기하면 사람들의 눈이 그때처럼 푸르게 빛이 났다. 나는 그 날 목걸이를 받고 한참을 울었다. 그의 정성과 어머니의 마음이 고마워서, 얼마나 고민했을지 고스란히 느껴져서 한동안 펑펑 울었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어머니께 목걸이를 받아 내게 프러포즈해줘서 정말 고마워. 자기가 프러포즈를 위해 돈을 쓰지 않아서 정말 고마워." 그리고 마침내 그는 잔뜩 눈물이 고인 눈으로 말했다. "나랑 결혼해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