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한 끼의 무게
결혼의 진정한 시작을 알리는 이벤트는 상견례가 아닐까 싶다. 양가의 부모님이 서로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어떤 가정에서 자란 아이인지 보는 것. 더 나아가 단 한 번의 식사로 내 자녀의 평생의 삶을 약속하는 중차대한 일이 바로 상견례가 아닐까. 사실 상견례를 가기 전에 미리 상대의 부모님께 찾아서 인사하고 암묵적인 허락을 받는 것으로 상견례를 준비하는 것이다.
아직 나의 자녀는 아직 결혼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결혼할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궁금하다. 상견례 날짜를 잡는 것부터 진짜 결혼 준비가 시작되는 것이다. 양가의 공식적인 만남 이후로, 각자의 자녀를 통해 차례로 결혼을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스드메와 신혼집, 신혼여행부터 혼수까지 말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 상견례라는 절차가 별거 아니라고 치부하기엔 그 무게가 꽤 나가는 것이다. '그냥 식사한 번 하는 거지 뭐.'라고 생각하더라도, 마음속에 일어나는 부담은 별 수 없이 올라온다.
나의 부모님도 상견례를 어디서, 어느 날 할 것인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셨다. 기싸움은 아닌데, 날짜와 장소를 누가 먼저 정하느냐에 대한 문제가 두 분에게는 중요한 것이었다. 부모님은 약혼을 한 뒤에 결혼을 하셨는데, 결혼 날짜는 신부 측에서 정하고 약혼 날짜는 신랑 측에서 정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와 그는 약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상견례 날짜와 장소를 누가 정하느냐의 문제가 엄마에게는 예민한 것이었다. 내가 엄마는 아니라서 그 마음을 다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상견례의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 '내 딸이 받게 될 사랑'을 가늠하시는 것 같았다.
그 마음을 첫째 딸을 한 해 먼저 시집보낸 어머니는 아셨던 걸까, 몇 번이고 내게 언제 어디서 하면 좋겠는지 물으셨다. 나아가 그 날짜와 장소를 두 사람이 상의해서 정하라는 말씀도 하셨다. 어머니의 배려와 마음은 너무 고마운 것이었지만,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 상견례의 장소와 날짜를 정하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었다. 나의 부담감은 고스란히 그에게로 돌아갔다. 그가 내게 어디서 하면 좋을지 물어볼 때마다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런 건 자기가 부모님이랑 상의해서 정하는 거 아니야?"라고 타박을 놓았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이런 것을 결정하는 것이 그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그는 무엇이든 결정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그와 살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물건 하나 사는 것도 그는 몇십 번을 곱씹어 생각하고 결정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옷 한 벌을 사는 것도, 이어폰 같은 소품을 사는 것도, '적당한 때'인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인지를 곱씹어 보는 사람인 것이다. 그의 이러한 성향은 자라온 환경이 완벽하게 뒷받침해주어 형성된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날 때부터 목회를 하셨다. 아버님은 평생을 목회활동을 하시면서 넉넉하지 않은 생활을 하셨다고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그는 어릴 때 천장이 없는 화장실을 사용한 기억, 방 한 칸을 칸막이로 나눠서 누나와 생활했다는 기억을 전해 들어 알게 되었다. 그러니 물건 하나 사는 것이 그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작은 물건을 사는 것도 어려우니, 그의 가정에겐 외식이나 여행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는 어렵게 고심해서 적당한 한정식 집에 상견례를 예약했다. 마땅한 곳이 없을까 여러 곳을 찾아보았지만, 결국 그의 누나가 상견례를 했던 그 식당에 예약을 한 것이다. 그는 누나의 상견례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에 해외에 나간 것도 아닌데 그의 매형이 외동이라 자신이 나가기 미안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집안 분위기는 그런 걸 많이 따지는 문화도 아니었다. 명절 때마다 아버지의 고향이나 어머니의 친지들에게 인사하러 가지 않는 분위기, 누나의 상견례 때 굳이 참석을 요구하지 않는 분위기, 나의 첫인사 때도 잠자는 형님을 깨우지 않는 분위기, 그 모든 것이 그의 집안 분위기이다.
상견례는 한 끼의 식사로 끝나는 단순한 절차가 아니었다. 서로의 가정 문화를 살피고, 어떤 환경에서 자라온 것인지 확인하는 자리인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형님을 시집보내면서 아주버님의 아버지를 보셨다고 하셨다. 결혼할 남자의 아버지를 보는 것이 신랑의 됨됨이를 볼 수 있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신부가 될 여자는 그녀의 어머니를 통해 보게 되는 것일까? 어쨌든 우리의 어색한 상견례는 적당한 한정식 집에서 시작하게 되었고, 매우 어색한 우리를 대신해서 형님 부부와 언니 부부가 대화를 나눠주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 날 결국 집에 돌아와 소화제를 먹었다. 상견례는 내게 너무 어색하고 불편한 자리였다. 나의 부모님과 그의 부모님, 형님 부부와 언니 부부가 모두 모여 식사하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닌 만큼 불편했다. 막상 그 자리에서 중요한 일이 오간 것은 아니었다. 멀리서 보면 그저 함께 모여 식사하는 자리였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식은땀이 흘러 어색하게 웃고 있는 내가 보이는 것이다. 나의 부모와 언니가 어떻게 보일지, 이를 통해 또 나는 어떻게 보일지가 계속 생각되어 음식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무얼 먹고 있는 건지 모르는 마당에 누군가 '이것 좀 더 먹어, 맛이 없니?'라고 물으면 그야말로 패닉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 지경에 이르면 마침내 식사는 끝이 난다.
집에 돌아와서 그와 나는 한동안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대화를 하면서 나만 그런 건 아니라는 동질감과 안도를 나누었다. 우리 서로 너무 어색하고 불안했다고, 고생했다고 마음을 나누면 무사히 하루를 마칠 수 있었다. 우리의 결혼을 향한 첫걸음은 그렇게 어색하고 불안하게 시작되었다. '처음'이 가지고 있는 그만의 매력이 있다. 날 것의 다시 오지 않을 설렘과 낯섦 속에서 희미한 웃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다가, 슬그머니 불안이 마음을 장악하기도 하는 것, 나의 상견례였다.
며칠 전 딸아이가 "엄마, 식구는 무슨 뜻이야?"하고 물었다. 딸아이에게 '식구'의 의미를 설명하다 머릿속을 관통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견례는 너무 상투적인 이벤트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왔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와 나는 서로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갈 때, 식사 때에 맞춰서 갔었다. 그도 나의 부모님과 첫인사를 할 때 식사를 하였고, 나 또한 그의 부모님에게 첫인사를 갈 때 식사를 하였다. 우리 모두에게 '식사'는 '한 끼'를 넘어선 의미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동안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가족을 '식구'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상견례를 하는 것이 단순히 한 끼의 식사를 하는 것 같아도, 우리는 이제 아들과 딸을 나누어 '식구'가 된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이제 드디어 공식적으로 '식구'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