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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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소리

아무렇지 않게 웃고, 밥을 먹고, 수다를 떨던 그 날. 다른 날과 다름없는 공기와 온도에 별다를 것 없이 평범한 보통의 그 날. 일상의 쳇바퀴 안에서 숨을 고르며 멈춰 설 때가 있다. 분명 몇 번이고 확인하며 들어선 길목인데, 하염없이 낯설고 캄캄해질 때가 있다.


나이를 먹어가면 갈수록 지워지는 여러 이름이 있다. 이전에도 여러 번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이십 대를 지나 서른을 맞이하고 나니 사회적 위치가 달라졌다. 결혼의 언약을 통과한 이후에는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 3의 세계가 열렸다. 그에 따라 나이에 걸맞은 위치와 함께 태도와 행동이 요구되기도 한다. 이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되거나, '나이 값을 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한 살씩 나이를 먹어가는 것도 서러운데, 그 값을 해야 한다니. 내가 먹고 싶어서 떠먹는 것도 아닌데, 돈을 주고 사 먹는 것도 아닌데, 그 값을 제대로 해야 한다니. 아, 서럽고 억울하다. 이 세상엔 개인의 선택으로 얻어지지 않는 몇 가지 있다. 가족, 나이와 같이 날 때부터 운명처럼 개인과 같이하는 것들 말이다. 단 한 번도 선택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태어나보니 내 옆에 가족이 있거나 없다. 한 해가 지날수록 '나이를 먹겠다'라고 나선 적이 없는데, 한 살씩 어김없이 먹게 된다. 꼭 이렇게 중요한 문제에 개인의 선택을 떠난 경우가 종종 있다. 선택이라는 자유를 떠나 마땅한 '책임감'만 남긴 채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놈의 책임감이 누군가에겐 너무 버겁고 어렵다. '왜, 하필, 내게, 나에게만, 어째서'와 같이 알 수 없는 이유를 납득하기 위해 애쓴다. 기를 쓰고 노력하다가 손을 놓아버리기도 하고, 노력하는 끝에서 숨을 헐떡이기도 한다. 개인의 삶이란 이처럼 아주 원초적인 것부터 이미 온전히 제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말했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인생이란 것은 애초에 그런 것이다.


그런 삶 속에 '기쁨'과 '행복'을 선택하며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수많은 길들 사이에서 선택하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었던가.'라고 말이다. 어쩌면 이런 나의 생각은 '정신승리'에 맞닿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선택하고 결정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만족하는 것 말이다. 그렇게 하나씩 선택하며 길을 찾아 나아가다가, 문득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과 집중, 결정과 만족 사이에서 질문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정말 괜찮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