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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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소리

괜찮지 않았다.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이었는데,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괜찮지 않아.'라고 인정해버리면, 그간 선택했던 모든 것들이 허사가 될 것만 같았다. 고심해서 결정한 길들이었다. 치열하게 싸우면서 나아간 길이었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한 번 결정하면 뒤를 돌아보지 않는 성격인 탓이다. 선택한 것에 그 누구의 탓을 하기 싫어하는 성향인 탓이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며 나아가고 싶어 하지 않은 탓이다. 그렇게 원인을 찾으면 찾아갈수록 마음이 답답해졌다. 결국, 내 잘못이라는 이야기인가. 선택을 한 것도, 결정을 내린 것도, 집중하며 나아간 모든 발걸음도 다 내가 한 일이니 말이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찾으려 하면 할수록 동굴을 깊이 파고 있는 것 같았다. 파내려 갈수록 동굴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되었다.


하루는 독박 육아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후배와 통화를 했다. "너 저녁은 챙겨 먹는 거야? 남편은 언제 퇴근하는 거야?"라고 묻는 내 질문에, 그녀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언니, 저 그래도 잘 챙겨 먹어요! 남편도 일찍 퇴근하는 편이고요." 손이 많이 가는 두 아이를 데리고 고생할 그녀가 걱정되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걱정하는 말들을 한바탕 늘어놓았다. 수많은 걱정과 위로가 뒤섞여 무슨 말인지 모를 즈음, "언니, 그냥 존버 하는 거예요. 지금은 그 말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네요. 그 말이 지금 제 상황을 찐으로 표현한 말인 것 같아요."라고 웃으며 마무리를 지어 주었다. 아, 존버라니. 아, 웃음과 함께하는 존버라니!


인생에서 존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이 얼마나 되려나. 취준생, 육아맘, 수험생, 직장인, 우리 모두가 그냥 지금의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 안에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만족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아니면 반대로 자신의 선택과 결정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정신승리 말고,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될까. 개인의 인생을 뒤돌아보는 가장 기본적인 단계는 '인정'이 아닐까 싶었다. 자신의 현재 삶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존버'라는 그녀의 말이 존경스러웠다. 그녀는 자신의 길을 알고 있었다. 그 길에서 자신이 내린 선택과 결정을 '만족'과 '불만족'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그저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의 나에게 이 길이 최선이든, 최선이 아니든, 잘하든, 못하든, 그냥 순수하게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길에 눈을 돌리기도 하고, 이 모든 것이 '너 때문'이라고 탓하기도 하고, 스스로에 대한 실망으로 동굴 속에 들어가기도 한다. 만족스럽지 않은 이 길에 서 있는 것이 다 '너 때문'이라고 말할 때, 이 길을 말고 다른 길을 선택했어야 했다고 말할 때, 나는 고작 이것밖에 안돼서 여기 서있는 것이라고 말할 때, 개인의 일상이 개인과 함께 철저하게 무너진다.


힘차게 걸었던 개인의 일상이 무너질 때, 개인의 존재가 함께 무너진다는 것이 덜컥 겁이 났다. 그때 내가 선택할 수 없던 것들에 대한 원망이 쉽게 스며든다. '애초에 이런 환경이 아니었다면', '조금만 더 어렸더라면'과 같은 돌이킬 수 없는, 애초에 어쩔 수 없는 것들을 곱씹게 된다. 그렇게 쉽게 스며든 마음의 원망은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라서 회복 탄력성을 갖기 어려워진다.


살아가면서 개인의 삶은 '인정투쟁'의 한가운데 놓인다. 운명처럼 만난 나의 부모님에게, 형제자매에게, 친구와 선생님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끝없는 투쟁을 한다. 투쟁의 한가운데 만족함을 누리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실은 작고 작은 투쟁의 실패가 쌓여서 '괜찮지 않다.' 끝없는 이놈의 투쟁 가운데 자신 스스로에게 '인정'을 받는 삶은 얼마나 될까. 나 자신의 '인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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