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되어도, 아무것도 아니어도, 헤매어도, 길 위에 있더라도.
길을 잃었다. 매일 아침이면 쓰고 싶던 글이 길을 잃었다. 그동안 잘해왔다고 믿었던 일의 성과도 길 위에 흩어졌다. 일상의 길들 위에서 힘차게 나아가던 발걸음이 멈춰서 버렸다. 어디서부터 다시 걸어야 하는 걸까.
남편을 만나 결혼한 뒤에, 남편이 제일 먼저 무얼 하고 싶냐고 물었었다. 그 당시 단 한 번도 휴학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단호하게 "휴학!"이라고 대답했다. 학생의 신분으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호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호사를 누릴 여유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시간과 환경,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허락이 된다면 마음껏 누리고 싶었다. 남편은 흔쾌히 내게 그 호사를 누리라고 해주었다. 나는 그런 결정을 내려준 남편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현하며 휴학을 누리다 못해 수료에 그치고 말았다. 삶의 길에서 선택의 결정권이 내게 있었던 적이 별로 없었다. 시간과 환경에 쫓기다가 휩쓸려 달려가기 일쑤였다. 그렇게 달려다가 보면 멈출 수 없어서 계속 길 위에 있었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한 것은, 내 안에 터져버릴 것 같은 이야기들을 풀어낼 곳이 필요해서였다.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보니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이 쌓여만 갔다. 넘치고 넘쳐서 그만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저 아무것도 아닌 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돌아보게 된 나의 어릴 적 모습, 아이를 통해 발견하게 된 나의 상처들에 대해 적었다. 나의 이야기였지만 조망해보니 조금은 객관적인 모습으로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두 편을 써 내려가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상처가 수면 위로 올라왔고, 담담하게 직면해보았더랬다. 분명 상처였던 기억이었는데 그 안에서 다시 회복을 경험했더랬다.
평생 들추어내고 싶지 않았던 그 모든 이야기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니 속이 시원했다. 나 자신에게 거리끼고 부대끼는 것들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스스로에게 부대끼는 이야기가 있어서, 떠올릴 때마다 피하고 싶어 진다면 그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편안하지 않은 그 모든 기억 앞에 서 있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어쩌면 그만큼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상처 위에 딱지가 앉고, 딱지가 떨어져 나가 흔적만 남게 된 오래된 시간이 말이다.
20년 8월 14일 첫 글을 썼다. 12월 31일까지 약 57개의 글을 썼다. 할 말이 쌓여있는 사람처럼, 써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처럼 차곡차곡 모았다. 나의 시작은 그저 속에 쌓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쓰면 쓸수록 자꾸 이상한 욕심이 생겼다.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이 이야기를 타인이 공감해주길, 필력도 소재도 특별하지 않은 이 글이 주류의 관심을 받길, '인정' 말이다. 나를 치료하는 글쓰기였지만 타인의 공감과 인정이 함께 가고 싶은 욕심이 불일 듯 일어났다. 마치 타고난 글쟁이인 것처럼 포장하고 여기저기 공모전에 글을 내고, 결과를 기다리면서 내심 떨리기도 했다.
목적을 잃은 글쓰기가 계속될수록 이야기는 산으로 갔다. 내 이야기를 하려 했던 건데, 그 안에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 진짜 내 목소리가 아닌 적이 많았다. 포장하고 싶었고, 메시지를 담아 그럴듯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런 욕심이 커질수록 쥐어짜는 기분이 들었다. 내 안에 생성된 진짜 이야기가 아니라, 하도 쥐어짜서 말라 비틀어버린 것이 되어버렸다. 말라비틀어져 퍼석이는 이야기를 마주 대하는 것이 괴로웠다. '그놈의 인정이 뭐길래 이런 말도 안 되는 글쓰기를 하고 있단 말인가', 회의감이 들었고 글쓰기를 멈췄다.
첫 마음을 잃어, 그 방향성을 놓치고 나니 길 위에 덩그러니 남아버렸다. 애초에 가졌던 목적을 다잡든지, 새로운 키로 길을 나아가야 했다. 이대로 그냥 놓아버리기엔 나를 보듬어주었던 그 모든 글들에 대한 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던 책들도 보기 싫어졌고, 무언가를 쓰고 싶은 마음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멈췄다. 어차피 지속해야 할 강제성이 있는 것도 아니니, 무언가 말하고 싶었던 욕구보다 인정받고 싶었던 욕심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었다.
온전히 나를 돌아보고 직면하고자 시작했던 일이 다른 것들로 뒤덮여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모든 글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써야 한다'는 생각과 '타인의 인정'이 우선순위를 바꿔버렸다. 솔직히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주류가 되고 싶었다. 일전의 글에서 나는 무척 애매한 경계에 있어서 당분간 그 애매한 상태로 있겠다 했지만, 실은 합리화였다. 애매한 경계에 있어도 빛이 났으면 했다. 누군가는 알아봐 주길, 인정해주길, 공감해주길 바랐다.
잃어버린 길 위에 너무 많은 길이 놓여있다는 것이 가장 큰 아이러니이다. 어쩌면 '길을 잃었다'는 것은, 누군가 내 손을 잡아주길 기다린다는 완곡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길 위에 길은 언제나 있다. 그저 발을 떼고 한 걸음을 나아가기 어려울 뿐이다. 아무것도 아닌 휴학조차 스스로 결정하지 못해 허덕거릴 때,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말해줬던 그 시절 남편의 말처럼 말이다. 수많은 선택지와 미로처럼 꼬여버린 길들 위에 덩그러니 놓인 나의 글에게 손을 내밀어보았다. 무엇이든, 무엇이 아니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