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뭐예요?

이 질문은 시험이 아니었는데.

by 은소리

어릴 때부터 달리기를 잘 못했다. 운동신경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달리기만 못한 것이 아니라, 철봉이나 배구 혹은 배드민턴과 같은 스포츠도 못했다. 나이가 들면서 이 상태로 늙어가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다니며 선배들을 따라 자전거를 배우고, 엄마와 함께 수영 수강권을 끊었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가르쳐 준 선배들 덕분에 반나절 만에 두 발 자전거를 탔다. 한두 시간 정도 신나게 호수공원을 돌았다. 내 인생에 두 발 자전거를 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그 날의 쾌감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일상생활에서 자전거를 타지 않았더니 몸은 금방 잊어버렸다. 몸으로 익힌 것은 잊을 수 없다고들 하는데 완벽한 예외가 있는 모양이다.


수영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와 언니와 자유형과 배영을 넘어 평형까지 수강을 하였더랬다. 분명히 물에서 자유롭게 자유형을 했고, 물에 떠다니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그뿐이었다. 더 이상 수영을 다니지 않자, 내 몸은 금방 수영하는 그 모든 방법을 잊어버렸다. 수영 센터를 다니지 않더라도, 결혼한 이후 수영할 일이 종종 생겼었다. 그런데 번번이 꾸역꾸역 튜브를 찾아 매달렸다. 첫째 아이는 물을 무서워해서 반드시 튜브와 함께 물놀이를 한다. 그런 아이의 튜브를 끝에서 살짝 잡으며, 마치 아이를 위한 것인 양 함께 한다. 하지만 진실은 내가 물에 빠질까 봐 무서워서였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체육은 아예 손을 놓았었다. 고등학생 때 내신 준비를 철저하게 한 편이었다. 다른 과목은 수행평가와 함께 시험을 준비해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체육은 실기가 70~80% 를 차지하고 있어서 아무리 집필을 잘 보더라도 좋은 성적을 받기 어려웠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체육과목은 아예 시험공부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리 시험 성적이 좋더라도, 수행평가와 합산하여 계산해보면 형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게 몸을 쓰는 일은 그러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사라지는 일이었다.


사람마다 잘하는 일이 다 있는 법이니까, 혹 스포츠를 조금 못하더라도 상관이 없었다. 또 내겐 몸을 쓰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운동을 잘하거나 가르쳐야 할 일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필요가 없으니 노력을 하지 않게 되고, 관심이 없으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누군가 "잘하는 운동이 뭐예요?"라고 물을 때면, 그저 배시시 웃어넘기곤 했다. 게다가 딱히 음악이나 미술을 잘하지도 못했다. 엄마 손에 이끌려 어릴 때부터 배운 피아노를 뚱땅거릴 뿐이지, 음악을 잘하거나 소질이 있지 않았다. 미술도 체육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미술 선생님은 내게 "너는 미술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아."라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이렇게 되니 '아, 나는 예체능에 소질이 없나 보다'라고 스스로 단정 짓게 되었다.


가족들과 함께 필리핀에 가서 살 때, 학교 캠퍼스 안에서만 지내다 보니 딱히 할 일이 없었다. 학교 기숙사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밖으로 나간다고 해도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안전하게 뛰어놀 공간은 학교 안의 농구코트가 제격이었다. 농구장에서 아이들과 달리기를 하다가, 농구공을 튕겨보게 되고, 한 두 번 공을 가지고 놀다 보니 슛을 해보게 되었다. 그렇게 남편과 농구를 시작하다가 급기야 옆집 선교사님의 자녀들과 내기 경기를 하게 되었다. 농구 규칙을 잘 알거나, 농구를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운동이 함께 하다 보니 즐겁고 재미있어졌다.


필리핀에 거주하면서 여자 어른의 옷을 잘라 딸아이의 옷으로 만들어 주었다. 여성 원피스를 받아 반으로 잘라 여아 투피스를 만들었다. 손바느질로 치마 안에 고무줄을 넣고 밑단을 만들었다. 첫째 아이는 그렇게 만든 옷을 받아 들고 무척 기뻐했었다. 미술은 하지 말라고 하셨던 그 날의 선생님이 떠올랐다. 괜스레 선생님을 찾아 내가 만든 옷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쑥쑥 올라왔었다.


누군가 내게 취미나 특기가 무엇인지 물어볼 때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딱히 잘하는 게 없는 것만 같아서, 누군가에게 말하기엔 능력이 보잘것없는 것만 같아서 대답을 피했다. 내게 가장 만만한 무기는 '독서'였다. 하지만 그런 대답을 할 때면 괜스레 창의적이거나 생산적인 활동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도 무언가 예체능의 활동이 취미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동경하였었다. 나의 동경하는 마음 깊은 곳에는 '잘해야 한다'는 기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취미나 특기라고 말하는 것이 마치 명함을 내미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온 것이다.


개인의 취미활동에 명함이 필요한 것이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스스로 즐겁게 할 수 있는 행위라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취미가 되는 것이 아닐까마는 내 생각은 너무 고루했다. 취미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에 따른 마땅한 성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누군가 "취미가 뭐예요?"라고 물을 땐, 뭔가 적당한 답변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면접관의 질문처럼 말이다. 스스로 즐겁기 위해 시작한 일에 '성과'를 요구하려니 버거웠고 자신이 없었다. 더욱이 예체능 영역에서 내 삶의 전반에 딱히 좋은 성과를 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못하는 것', '거리가 먼 것'으로 분류해버렸다.


나의 고루한 성과주의 덕분에 인생의 즐거움을 놓칠 뻔했다. 자전거를 다시 타보고, 수영을 다시 배우고, 이상한 그림을 그려보고, 천을 잘라 옷을 만들어보고, 엉망진창으로 노래를 부르더라도. 그 안의 즐거움에 속에 누릴 수 있는 기회조차 잡지 못할 뻔했다. 농구를 잘 알아야만 농구공을 튕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제단을 할 줄 알아야 옷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의 고지식함과 고루함, 편협한 고정관념 때문에 수많은 기회와 선택을 처음부터 하지 않으려 했다. 아무런 성과가 없더라도 스스로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제대로 알지 못하더라도, 즐거움과 호기심에 이끌려 시작하다가 본격적으로 뛰어들어도 그만인 것이다.


필리핀에서 나는 농구를 즐겨하는 아줌마였다. 아이 둘을 데리고 농구장에 나가 아이들의 씽씽이를 타고 노는 철없는 아줌마였다. 농구공을 튕기며 뛰어다닐 때, 씽씽이를 타고 농구장을 휘젓고 다닐 때를 잊을 수가 없다. 자유함을 가로막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일 때가 있다. 그 누군가 말하기 전부터 겁을 먹고 시작조차 해보려 하지 않는 내 마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