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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소리 Dec 21. 2020

어차피 애매함 투성이라면

게으른 자의 변명

  애매한 것들이 자꾸 달라붙는다. 나는 정확하고 확실한 사람인데, 자꾸 애매한 것들이 내게로 온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그것들이 내게로 와서 달라붙는다. 그 애매한 모든 것이 나의 정체를 표현하는 것들이 되어버릴 것만 같아 두렵다. 아뿔싸, 단순 명료하게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 애매모호함이 바로 나라니.


  애매한 글쓰기, 애매한 공부, 애매한 경력, 애매한 나이. 무엇 하나 완벽하게 해 놓은 것이 없다. 시작은 번지르하게 해 놓고 공부를 끝맺지 못했다. 나의 석사학위는 수료에서 멈췄다. 솔직히 말해서 대학원 시절 내내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겉모습만 대학원생이었지, 공부를 위해 투자한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학위 논문을 쓸 자신이 없었다. 결혼을 핑계로 훌쩍 대학원을 떠났다. 몇 차례 담당 교수님으로부터 복학을 재촉하는 전화가 왔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 이후로 논문이라면 치를 떨게 되었다.


  애매한 경력도 마찬가지이다.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학원 강사와 과외를 끊임없이 해왔지만, 정규 학교의 근무 경력은 거의 없다. 중등 2급 정교사 자격증을 취득해 놓고, 부산으로 이사를 가면서 취업과 거리가 먼 '아기 엄마'의 삶을 살았다. 두 아이의 독박 육아라는 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육아를 책임지고 살아가다 보니 경단녀가 되었다. 학원강사나 과외를 찾아볼 수 없었다. 첫째는 어린이집으로 보육을 보냈어도, 당시 여기저기 기어 다니기 바빴던 둘째를 맡길 데가 없었다. 기왕 집에 있는 김에 임용시험이라도 준비해볼까 했지만 그마저도 포기했다. 어디 임용시험이라는 게 '임용시험이나 준비해볼까'하는 마음으로 되는 것이었던가.


  애매한 글쓰기도 주류에 들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글이 술술 잘 읽히더라, 내용이 참 따뜻하다는 주변의 공감과 주류의 인정 사이의 거리는 너무나 멀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밀린 숙제를 마쳐야 하는 사람처럼 여기저기 공모전에 글을 내었다. 결과는 번번이 애매모호했다. 완전히 심사에서 탈락한 것도 있었고, 입상은 했지만 수상을 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애매한 나의 나이는 또 어떠한가. 이놈의 나잇대는 '학부모'와 자꾸만 허리가 휘어지시는 부모님 사이에 껴있다. 나만 돌보면 되는 나이에서 자녀를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하는 나이를 지나, 부모님의 안위를 살펴야 하는 나이가 찾아왔다. 아이를 돌보는 일조차 버거워서 헉헉 거리는데 양가의 부모님을 살펴야 한다니, 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나잇대가 된 것이다.


  무엇하나 정확하게 내밀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 이 나이쯤 되었으면 내밀 수 있는 명함 하나 있을 법 한데, 이곳저곳 다니기 바빴다는 핑계로 경력은 단절되었다. 결혼을 핑계로 학업도 중단되었고, 좋아라 하는 글쓰기는 비주류에 있는 것만 같다. 이 애매모호함들 속에 둘러싸여 그토록 치열하게 살았던 청춘의 결과는 모두 어디로 도망갔는지 허탈해진다. 애초에 치열하게 살지 않았던 것일까, 결과를 내기엔 아직 채워지지 않은 그 무엇이 있는 것일까.


  학창 시절 썩 좋아하지 않았던 과목은 영어였다. 단어를 암기해야 하는 것이 고역이었기 때문이다. 의미 없는 단순 암기를 제일 싫어했는데, 단어를 외워두지 않으면 그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어떻게든 단어를 외워야 했기에 별의별 방법을 다 써보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외국어를 찾기 시작했다. 제2 외국어 하나쯤은 구사할 수 있어야 경쟁력을 갖춘 사람이 되는 시대에 살았었다. 영어를 제외하고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까지 맘에 드는 언어는 다 한 번씩 공부했었다. 중국어와 일본어는 왠지 도움이 될 것만 같아서, 프랑스어는 그냥 이름만으로도 멋지니까. 그런데 나의 외국어 공부는 끝을 맺지 못했다. 멋지게 시작했지만 끝도 그처럼 원대하고 멋지지 못했다. 제대로 된 끝맺음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애매함은 처음부터 내가 자초한 것이었다. 나를 바라보는 '내 모습'과 나만 모르는 '내 모습' 사이의 거리가 이제야 인지되었다. 시작만 해두었지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그저 애매하게 남아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글쓰기만은 이렇게 꾸역꾸역 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 내 손을 떠난 것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내세울 것이 못되더라도' 해야겠다. 


  어차피 애매함에 둘러싸여 있는 거라면, 그럼 이 속에 완벽하게 있어봐야겠다.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해도, 주류가 되지 못한다 해도, 애매한 나이로  명함 없는 경력을 쌓으며 보통의 삶을 살아야겠다. 가장 보통의 삶, 애매모호함의 한가운데에서 깊은 호흡을 해야겠다. 노는 듯이 글을 쓰고, 세월의 끄트머리를 향해 걸으시는 부모님과 생의 앞으로 나아가는 아이들 사이에 적당히 보폭을 맞추며 걸어야겠다. 무심히 걷다가 세월의 흐름에 맞춰 뛰기도 하고, 문득 쏟아지는 때 아닌 것들에 흥겨워하기도 하고, 적당히 울고 웃다 보면 이 보통의 삶이 주는 선물을 알게 되거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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